간호사단체 "총선서 단죄할 것…단체행동 방식·수위 논의"
의료연대 "간호법 거부권 환영…17일 연대 총파업 유보"
복지부 "간호사 처우 개선은 국가가 책임…정책우선순위 갖고 추진"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인력의 업무 범위와 처우 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이에 간호사들은 “약속 파기 대통령에 정치적 책임 물을 것”이라고 반발하며 정치적 심판과 법 제정 재추진을 선언하고 준법투쟁 등 단체행동도 논의하기로 했다.
반면 간호법 제정안에 반발하며 17일 총파업을 예고했던 의사·간호조무사 단체 등은 간호법 재의요구권 행사를 환영하며 파업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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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대통령 고유권한인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2번째다. 사진은 윤 대통령이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서울=연합뉴스] |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2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간호법 제정안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어 회의 직후인 오후 12시10분께 재의요구안을 즉시 재가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국민 건강은 다양한 의료 전문 직역의 협업에 의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는 것”이라며 “이번 간호법안은 이와 같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또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재의요구권 행사는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주도로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20일 만이다.
대통령 고유권한인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두 번째다. 지난달 4일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첫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의료 전문 직역 간 입장은 극명하게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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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간호법 공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편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서울=연합뉴스] |
대한간호협회는 이날 국무회의 직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이 간호법을 제정하겠다는 약속은 증거와 기록이 차고 넘치는데도, 대통령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간호법 제정 약속과 공약을 파기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정하고 상식적이지 못한 불의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2023년 총선기획단 활동을 통해 단죄하고 파면하는 투쟁을 전개할 것을 선언한다”고 밝히는 한편, “거부권이 행사된 간호법은 즉각 국회에서 재의할 것을 정중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2년 간 국회에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심의의결된 간호법은 애석하게도 좌초되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의 진실과 역사적 맥락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기에, 그 진실의 힘과 지혜를 조직하여 다시 국회에서 간호법을 재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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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보건복지의료연대 소속 의료단체 대표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반면 간호법 제정안에 반발하며 총파업을 예고했던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단체로 이뤄진 보건복지의료연대(이하 의료연대)는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에 대해 400만 회원은 환영의 뜻을 밝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7일 계획한 연대 총파업은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깊은 고뇌 끝에 국회 재의결시까지 유보할 것"이라며 "법안 처리가 원만히 마무리될 때까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 내 간호 관련 내용을 분리한 것으로, 간호사, 전문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업무를 명확히 하고 간호사 등의 근무 환경·처우 개선에 관한 국가 책무 등을 규정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간호법 논란 초기엔 ‘의사 대 간호사’의 구도로 비친 경향이 있었지만, 점차 ‘간호사 대 간호조무사’ 그리고 ‘간호사 대 응급구조사 등 소수 직역’의 갈등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였다.
간호법 제정안 등의 국회 통과에 반발해 연대 총파업을 예고했던 ‘보건복지의료연대’에는 모두 13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각 직역의 반대 사유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간호법을 통해 간호사가 병원 밖 ‘지역사회’로 영역을 넓혀 자신들의 업무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의사단체들은 간호법이 간호사가 독자적으로 진료업무를 수행하고 단독 개원까지 가능하게 하는 법이라고 반대해왔다.
의료법에는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하에 진료의 보조’를 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간호법 초안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는 표현이 있었지만 반발과 갈등 끝에 빠졌다.
그럼에도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제정안의 ‘이 법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조항이 여전히 논란이 됐다.
의사들은 ‘지역사회’라는 표현이 간호사가 의료기관 밖에서 의사 지도 없이 단독 개원할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를 통해 간호사의 무면허 수술과 처방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한다.
간호조무사들도 간호법 조항에 반대했다. 우선 간호조무사의 자격을 ‘특성화고의 간호 관련 학과 졸업한 사람’, ‘고등학교 졸업자로 간호조무사양성소 교육을 이수한 사람’ 등으로 규정한 부분을 지적했다.
간호의 질을 높이려면 간호조무사들이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함에도, 고졸이라는 학력 제한이 규정돼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또 의원급 의료기관을 제외하고는 간호조무사가 ‘간호사를 보조’해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조항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장기요양기관과 장애인복지시설 등 의료기관이 아닌 지역사회 시설에선 간호조무사들이 간호사 없이도 촉탁의의 지도 하에 근무가 가능한데, 간호법이 시행되면 이들 시설에서도 간호사 없이는 간호조무사를 고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지역사회’ 표현 때문에 생긴 우려다.
간호법 거부권 행사를 대통령에 건의한 정부는 간호법안의 취지를 살려 고령화 시대에 받는 의료·돌봄 시스템을 구축하고 간호사 처우와 근무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간호사 처우 개선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며 “간호사 여러분들이 자부심을 갖고 의료 현장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달 간호법 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5명으로 낮추는 것을 포함한 간호인력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조 장관은 “간호인력 배치기준 강화와 근무강도 완화 방안 등 대책에 포함된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며, 간호사가 우수한 전문 의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의료연대는 이날 간호법 제정안과 함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선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은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인의 결격·면허 취소 사유를 ‘범죄 구분 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선고유예 포함)’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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