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조 외국인 자금 쟁탈전…삼성·하나증권 필두로 글로벌 브로커리지 합종연횡
대만 35%·일본 68% 유동성 쫓는 K-증시…수익 한계 극복과 모니터링 공백은 숙제
[메가경제=박성태 기자] 코스피 지수가 8000선 고지를 앞두고 랠리를 이어가는 가운데, 여의도 증권가에 전례 없는 '글로벌 혈투'의 막이 올랐다.
1992년 외국인 직접투자가 허용된 이후 30년 넘게 한국 자본시장을 옥죄어 온 낡은 규제의 빗장이 마침내 풀리면서다.
'파란 눈의 동학 개미'로 불리는 해외 비거주 개인투자자를 선점키 위해 대형 증권사들이 앞다투어 글로벌 핀테크 플랫폼과 동맹을 맺으며, 1300조 원 규모로 불어난 외국인 투자 자금을 정조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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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 내용에 맞게 AI 제작 |
이 혈투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금융당국의 '외국인통합계좌(Omnibus Account)' 규제 전면 개편이다.
통합계좌는 해외 투자자가 국내 증권사에 개별 전용 계좌를 열거나 인적 사항을 사전 등록할 필요 없이, 현지 외국 증권사 계좌를 통해 일괄적으로 한국 주식을 실시간 매매할 수 있는 제도다.
2017년 도입됐으나 까다로운 개설 주체 제한과 촘촘한 즉시 보고 의무 탓에 8년간 단 한 건의 개설 사례도 없었던 유명무실한 족쇄였다.
이러한 ‘갈라파고스 규제’는 그동안 글로벌 자본 시장에서 한국 증시를 소외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글로벌 경제 매체 블룸버그(Bloomberg)는 "한국의 엄격한 자격 요건과 불투명한 가이드라인이 글로벌 수탁은행과 비거주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심각하게 가로막고 있다"고 혹평했다.
글로벌 지수 산출 기관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역시 매년 시장 접근성 평가에서 한국의 '투자자 등록 및 계좌 개설' 항목에 마이너스(-) 등급을 매기며 선진국(DM) 지수 편입의 최대 걸림돌로 꼽았다.
결국 자본 이탈의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올해 1월을 기점으로 개설 주체 제한을 폐지하고 보고 주기를 대폭 간소화하면서 판이 뒤집혔다.
규제의 댐이 무너지자 여의도 증권가는 곧바로 글로벌 플랫폼과의 합종연횡에 돌입했다.
삼성증권은 지난 12일, 전 세계 170여 개국 460만 계좌를 보유한 미국 나스닥 상장사 ‘인터랙티브 브로커스(IBKR)’와 손잡고 혁신금융서비스 기반의 통합계좌를 공식 오픈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앞서 하나증권이 지난해 10월 홍콩 엠퍼러증권과 제휴해 중화권 투자자를 선점한 데 이어, 올해 3월 일본 캐피털 파트너스 증권과도 계좌를 개설하며 아시아권 전역으로 영토를 넓히고 있다.
중소형 및 타 대형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들의 반격도 매섭다. 메리츠증권과 키움증권은 글로벌 전역에서 2300만 명의 투자자를 거느린 모바일 증권사 ‘위불(Webull)’과 잇달아 파트너십을 맺고 연말 출격을 준비 중이다.
KB증권은 다음 달 정식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있으며, 미래에셋과 NH, 신한 등도 관련 시스템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며 글로벌 브로커리지 선점 경쟁은 그야말로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한다.
증권업계가 이토록 사활을 거는 이유는 통합계좌가 끌어올 '자본의 퀀텀점프' 잠재력 때문이다. 현재 국내 증시의 외국인 거래 비중은 20~25%대 박스권에 갇혀 있다.
반면 하나증권 고연수 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일찍이 빗장을 푼 대만은 외국인 거래 비중이 35%까지 상승했고 일본은 68%에 달한다.
초기에는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형 우량주에 자금이 집중되겠지만, 점차 코스닥과 중소형주로 온기가 퍼지며 K-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를 해소할 거대한 유동성 공급처가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특히 글로벌 조세 전문 기관인 WTS 글로벌(WTS Global)은 "통합계좌 규제 완화로 글로벌 수탁은행들의 결제 계좌 개설이 용이해지면서, 배당소득세 조세조약 혜택을 받기 위한 행정적 낭비가 획기적으로 사라졌다"고 짚었다.
이는 세금과 환율 리스크 탓에 ETF 등 간접 투자에만 머물던 파란 눈 개미들의 막대한 자금이 개별 종목 직접 투자로 쏟아져 들어올 거대한 고속도로가 열렸음을 시사한다.
다만, 이 화려한 랠리 이면에는 증권가와 금융당국이 풀어야 할 묵직한 과제가 남아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거대 글로벌 증권사와의 수수료 분배(Revenue Sharing) 구조 탓에 쏟아지는 거래대금만큼 온전한 수익을 챙기기 어렵다는 '속 빈 강정' 우려가 존재한다.
한국투자증권은 삼성증권의 이번 서비스 오픈에 따른 연간 브로커리지 수수료 증가율을 5.5% 수준으로 보수적으로 추정했다.
더 큰 뇌관은 금융당국의 감시망 공백이다. 계좌 보고 주기가 분기별, 월 1회로 대폭 느슨해지면서 숏셀링이나 시세 조종 등 글로벌 투기 자본의 이상 거래를 적기에 차단하기 어려워졌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글로벌 자본을 안방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30년 묵은 족쇄는 깨부수었지만, 그 거센 파도를 통제할 실시간 감시 인프라와 펀더멘털 방어 체계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이번 글로벌 혈투의 최종 승패를 가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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