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선 진출자 중 최연소·100% 국내파…아시아권 남성 성악가 1위 첫 사례
"음정·박자만 아닌 '곡 이해' 집중했다"…만 22세로 병역면제도 확정
"단역부터 차근차근 해나갈 것…언젠가 '피가로' 역할 정말 해보고 싶어"
심사 참가 조수미 "심사위원들, 김태한 우승 거의 만장일치 동의"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2000년생 바리톤 김태한이 세계 3대 클래식 경연대회로 꼽히는 대회에서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오르며 또 한 명의 ‘K-클래식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김태한(22)은 4일(현지시간) 새벽 벨기에 브뤼셀 보자르에서 발표된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 대회 결과 최종 순위에서 1위로 호명됐다.
김태한은 1988년 이 대회에 성악 부문이 신설된 이후 한국은 물론 아시아권 남성 성악가로서 첫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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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한(바리톤)이 4일(현지시간) 발표된 세계 3대 성악 경연대회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사진은 지난 2일 열린 결선 무대. [출처=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영상] |
벨기에 왕가가 주관하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폴란드의 쇼팽 피아노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음악 경연대회로 꼽힌다. 매년 피아노·첼로·성악·바이올린 부문 순으로 돌아가며 개최된다.
한국은 첼로 부문으로 열린 지난해 대회에서 우승한 최하영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K-클래식’의 위세를 또 한 번 확인시켰다.
역대 한국인 우승자로는 홍혜란(성악·2011년), 황수미(성악·2014년), 임지영(바이올린·2015년), 최하영(첼로·2022년) 등 네 명이 있다.
결선에는 김태한 외에 정인호(31·베이스), 다니엘 권(30·바리톤) 등 3명이 진출했고, 결선 진출 자 중 유일한 베이스인 정인호도 5위로 입상에 성공했다.
12명 중 6위까지가 입상자에 해당하는데 한국은 성악 부문에서는 처음으로 2명이 동반 입상하는 기록도 세웠다.
성악 부문으로 치러진 올해 대회에선 본선 무대부터 한국인 참가자가 최다를 차지하며 초반부터 현지 매체의 주목을 받았다. 본선 진출자 64명 중 18명이 한국인 성악가였다.
우승자에게는 향후 열리는 시상식에서 벨기에 마틸드 왕비가 직접 시상하며, 2만5천 유로(약 3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김태한은 이번 우승으로 한국 남성 성악가들의 ‘경력 단절’ 요인으로 꼽히는 병역도 면제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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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현지시간) 벨기에에서 열린 '2023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성악가 김태한이 수상 발표 후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태한은 우승 직후 취재진에게 “이번 콩쿠르 준비를 위해 ‘음악에 잠겨’ 살았던 것 같다”며 “무대를 즐긴다는 마음으로 임하기에 부담감은 전혀 없었고 행복하게 노래했다”고 소회를 전했다.
“슈퍼스타가 되고 싶다”고 당차게 말한 그는 “세계 각국을 돌며 노래하는 오페라 가수가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태한은 또 “9월부터 베를린국립오페라극장의 ‘영 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됐는데, 조연, 단역부터 해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나가려고 한다”는 계획과 함께,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피가로 역할을 가장 해보고 싶은 역할로 꼽았다.
그는 성악을 시작할 때부터 “음정, 박자만 익히는 데 국한하지 않고 시를 분석하고, 시인에 관해 공부하는 등 곡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공부를 많이 했다”며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대회에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성악가 조수미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의미를 더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조수미는 결과 발표 뒤 취재진과 만나 “김태한이) 나이가 어린데도 노래를 들었을 때 가슴에 와닿는 공연을 했던 것 같다”고 평가하며, “나도 콩쿠르에서 여러 번 우승했는데, 내가 우승한 것보다 더 기쁘다”고 흐뭇해 했다.
조수미는 또 김태한의 1등에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모두) 당연하다고 했다. 다들 거의 만장일치로”였다고 전하면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나이가 굉장히 어린데도 진정성 있게 노래를 한 게 심사위원들에게 큰 감동을 준 것 같다”며 “원더풀 퍼포먼스였다”고 김태한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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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3대 성악 경연대회인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태한. [그래픽=연합뉴스] |
총 12명이 진출한 이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 무대는 지난 1일부터 사흘에 나눠 진행됐다. 결선 진출자는 최소 3곡에서 6곡을 부르고, 두 가지 이상 언어 및 오페라 아리아 1곡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지난 2일 결선 무대에 오른 김태한은 오케스트라 협연에 맞춰 바그너의 ‘오 나의 사랑스러운 저녁별이여’로 시작해 베르디의 ‘돈 카를로’ 중 ‘오 카를로 내 말을 들어보게’까지 총 네 곡을 선보였다.
특히 마지막으로 부른 베르디의 곡을 이탈리아어가 아닌 ‘불어 버전’으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벨기에가 불어권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전달력을 극대화한 탁월한 전략이었다는 평가다.
김태한은 2000년 8월생으로 이번 대회 12명의 결선 진출자 중 최연소이자 작년 9월 독주회에 갓 데뷔한 성악계 샛별이다.
그는 또 100% 순수 국내파다. 처음엔 록 가수가 하고 싶어 음악을 시작했다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록밴드는 캐나다의 섬41(Sum 41)이다. 중학교 때는 밴드부로 활동했다.
중3 때부터 성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그는 선화예고와 서울대 음대를 나왔다. 직전 4년간 나건용 교수를 사사했다.
현재는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스튜디오에서 김영미 교수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김태한은 2021년 국내에서 개최된 한국성악콩쿠르, 한국성악가협회 국제성악콩쿠르, 중앙음악콩쿠르에서 각각 2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보였다.
지난해엔 스페인 비냐스·독일 슈팀멘·이탈리아 리카르도 잔도나이 등 3개 국제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해외로 무대를 넓혔다.
문화체육관광부 박보균 장관은 '2023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김태한에게 축전을 보내 축하와 격려의 뜻을 전했다.
박 장관은 축전을 통해 “이번 수상은 K-클래식의 글로벌 영향력을 각인시킨 강렬한 장면이었다”며 “김태한 님의 빼어난 감수성과 집념, 음악적 투혼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라고 축하했다.
이어 “이번 우승을 통해 K-클래식의 지평이 더욱 속도감 있게 넓어질 것으로 확신한다”며 “앞으로 김태한 님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전 세계 각지에서 더 많은 이들을 위로하기를 국민들과 함께 응원하겠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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