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추경이란 오명부터 벗어야

칼럼 / 이동구 / 2019-05-01 09:01:54

선거를 의식한 정치 추경인가. 경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부실 추경인가.


정치권이 패스트트랙을 두고 사생결단을 하고 있는 사이 올해 국가·국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이 제출됐지만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 추경안이 발표된 지 사흘도 되지 않아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 경제의 1분기 성장률이 10년여만에 최저치를 기록해 정부가 경제상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경안을 서둘러 제출했다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이로 인해 제2의 추경안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정치 추경이란 논란이 일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달 22일 밝힌 올해 추경규모는 6조7000원이다. 470조라는 슈퍼예산을 편성·확정한지 4개월여만에 돈이 모자란다며 추경안을 내놓은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통제를 받던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고 1분기에 추경을 편성한 사례는 없다.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은 정부 예산을 시중에 풀겠다는 것이니 만큼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위한 ‘정치 추경’이란 의구심을 사고 있다.


추경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부는 미세먼지 대응 등 국민안전 분야에 2조2000억원을, 선제적 경기 대응 및 민생경제 긴급지원에 4조5000억원을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추경 재원은 전체 추경액 가운데 3조6000억원 정도를 적자 국채를 발행해 마련하겠다고 했다. 다시 말해 빚내서 돈을 추가로 뿌리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나라의 빚 규모, 즉 국가채무비율은 39.5%로 역대 최고치에 이르게 된다.


이뿐만 아니다. 이로 인해 지난해 국민이 부담하는 총 세금액 규모가 국내 총생산액에 비해 21.2%로 최고치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가 빚을 내면서까지 정부 지출 규모를 최대한 늘리고 있는 만큼 역대 정부와 비교해 국민에게 가장 높은 세금을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온갖 선심성 행정을 펼치는 동안 국민의 혈세나 빚은 늘어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정부 재정 확대를 통한 포퓰리즘이 만연하면서 경제가 점차 망가지는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 추경안을 두고 야권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단기성 경기부양 추경”이라 비난했다. 특히 한국당의 문 정권 경제실정백서 특별위원회는 “문 대통령이 3월초부터 추경편성을 지시한 것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때를 제외하고 처음 있는 일”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의 경우 “이번 추경은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사업 등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예산으로 그 대가는 미래세대가 치러야 한다”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대변인은 “정부의 원칙없는 추경은 국회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밝혔고, 정의당은 정책위원회 성명을 통해 이번 추경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이번 추경이 원칙도 없는 급조된 정치 추경이라는 비판에 힘을 실어주는 통계는 한국은행이 제시했다. 한국은행은 같은 달 25일 ‘2019년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402조6784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0.3% 감소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성장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로 추락했고, 설비투자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직후 수준으로 급감했다. 우리경제가 투자·소비·수출 등 실물경제 전분야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단기간에 경기가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골드만 삭스 등 다수의 해외금융기관들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수출이 하반기에도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런 지표를 반영했다면 정부의 당초 추경안은 이보다 훨씬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25일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오늘 국회에 제출하는 추경을 통해 투자, 수출 활성화 등의 경기대응 과제를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급상승하는 등 수출과 내수에 부정적인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전망은 정부의 추경이 터무니없이 잘못됐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당초 내년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사업에 필요한 추경을 생각했지만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경기부양에 필요한 더 큰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2차 추경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 경제 상황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등 민간경제 연구소 관계자들은 “정부가 최근의 경제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성급한 추경 편성을 결정했다”며 “경제 성장률 하락 방지를 위해서는 2차 추경이 불가피할 것”이라 전망했다.


정부의 추경안이 나온지 불과 며칠 사이에 경제 상황이 돌변하고 있는 것이다. 현 경제 사령탑이나 실무진들이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집권당이나 정치판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정부는 정치추경이란 오해를 불식시키고 경제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정책추진에 매진해야 한다. 정치권 또한 패스트트랙 등 정치 현안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국가경제나 민생경제에 폭넓은 관심을 쏟아야 할 때이다.


이동구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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