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 경제가 날로 활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모처럼 귀가 쫑긋해질 정도의 대규모 사업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이름하여 ‘반도체 비전 2030’이다. 이 계획은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최강의 지위를 확실히 굳히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대강만 보아도 삼성전자만의 사업 계획을 넘어 반도체 코리아의 원대한 꿈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분야 석권을 위해 목표연도까지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시스템 반도체라 불리는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확장을 위해 연구개발(R&D)에 73조원, 첨단 시설을 갖추는데 60조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고 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https://megaeconomy.co.kr/news/data/20190426/p179565886853067_339.jpg)
사업이 성공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칠 긍정적 파급효과도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이 구상이 완성되면 전문 인력만 1만5000여명을 채용하게 될 것이라 밝혔다. 국내 반도체 생태계의 긍정적 변화에 따라 파급되는 연쇄 효과까지 감안한 간접고용 유발 효과는 42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게 삼성전자 측의 분석이다.
삼성전자의 새로운 비전은 장기간에 걸친 숙고의 결과물인 듯 보인다. 그걸 대변해주는 것이 올 초 있었던 청와대 행사다. 지난 1월 기업인들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반도체 경기에 대한 우려섞인 질문을 던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시인하면서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것”이라고 답해 이목을 끌었다. 최태원 SK 회장이 “삼성이 이런 얘기하는 게 제일 무섭더라”라고 반응했을 만큼 모종의 복안이 있음을 암시하는 발언이었다. 그 해답이 바로 시스템 반도체였던 것이다.
비메모리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를 점하는 분야다. 더구나 비메모리는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될수록 다방면에 걸쳐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뿐이 아니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메모리에 비해 가격 변동성이나 시장의 부침도 상대적으로 덜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그간 메모리에 집중해온 것은 대규모 설비투자를 토대로 한 대량생산 체제의 강점을 활용하는데 보다 용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메모리 시장은 삼성전자가 더 큰 꿈을 펼치기엔 너무 좁은 무대가 됐다.
비메모리 분야가 삼성전자에게 전혀 낯선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도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업체(파운드리)로서 일정 부분 시장을 점유해왔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당분간 파운드리로서의 역할에 집중하면서 점차 팹리스(설계) 분야까지 아우르는 시스템 반도체 최강자로 부상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정보 저장 용도로 쓰이는 메모리와 달리 논리와 연산 및 제어 기능을 수행하는 비메모리 반도체는 각종 전자기기에서 두뇌를 구성하는 주요 부품이다.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나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디지털 카메라의 이미지센서 등에서 핵심 부품 역할을 수행한다. 현재 글로벌 비메모리 설계 시장에서 CPU 칩은 인텔이, AP 칩은 퀄컴이, 이미지센서 칩은 소니가 장악하고 있다. 파운드리 분야에선 대만의 TSMC가 절반에 육박하는 시장을 점유한 채 최강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비메모리는 쓰임새가 많은 만큼 종류도 수천가지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다. 그로 인해 인텔 등 유수의 팹리스들은 분야별로 축적된 나름의 기술력을, 거대 파운드리는 다품종 생산 체제를 강점으로 내세우며 글로벌 시장에서 저마다 일가를 이루고 있다. 삼성전자 혼자만의 힘으론 목표 기간 안에 반도체 코리아의 위상을 확립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마침 정부도 문 대통령의 관심 속에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달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메모리 반도체 편중 현상을 완화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이로써 조만간 정부의 관련 대책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처럼 정부와 대기업이 공조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아 반갑다. 기왕이면 삼성전자와의 긴밀한 소통을 거쳐 기업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한 뒤 그것들을 정책에 반영해주기를 기대한다.
구체적 대안은 세제 지원, 규제 해제, 전문인력 양성, 협력업체와의 상생 방안 등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범정권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대표필자 편집인 류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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