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의 확장판이 공개됐다. 그동안 건강보험 대상이 되지 않았던 희귀병 치료 약제비, 검사비, 병실료 등에 의료보험이 적용되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로 건강보험 지출이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이라 자칫 건강보험 운영에 필요한 재원 또한 급속도로 고갈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재정악화 막는데만 치우치면 국민들의 건보료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우려의 불식과 건보재정의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문 케어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
정부가 지난 10일 내놓은 ‘제1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에 따르면 2017년 62.7%였던 건강보험 보장률을 2022년 70%까지 확대키로 하고 올해부터 5년간 41조5800억원 상당의 재원을 부담한다. 2017년 ‘문 케어’를 발표할 당시보다 6조4500억원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이 경우 올해 3조1630억여원, 내년에 2조7200억여원 등 2023년까지 매년 건보 당기수지 적자는 9조 5100억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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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를 건보 재정 적립금과 건보료율 인상 등으로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기준 20조5000억원 규모의 건보적립금에다 연간 3%대 중반의 건보료율 인상으로 재원 마련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여기에다 노인 진료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노인외래진료비 정액제 적용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상향할 방침이다. 감기 등 비교적 간단한 질환 환자가 상급 종합병원에 갈 경우 진료비 부담을 올리는 방안과 불법 의료기관에 대한 제재도 대폭 강화해 불필요한 건보재정 누수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노력을 통해 2023년까지 건보적립금을 11조1000억원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 같은 정부의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재정전문가들은 건보재정의 급속한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재정 전문가들은 “정부가 건보재정 상태를 지나치게 안일하게 판단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번 정부의 예측과 달리 국회예산정책처가 201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은 2026년 모두 소진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전문가들의 우려에 타당성이 있음을 뒷받침해준다. 앞서 정부가 발표한 보장성 강화 방안과 함께 재정절감 대책을 병행한다고 해도 2027년이면 누적적립금이 4조7000억원에 불과할 것이라는 게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이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또 다른 추계자료에는 정부가 매년 보험료를 3.49%씩 인상한다 하더라도 2027년에는 누적 적립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돼 정부가 밝힌 누적적립금 10조원 유지 목표는 절대 달성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타나 있다. 한 대학교수는 “적립금이 소진되는 시기를 조금 늦출 뿐이지 보험료 인상압박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결국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10년 내에 닥칠지도 모를 건보재정의 고갈 위기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특히 현 정부는 앞으로 닥칠 여러 가지 상황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먼저 노인 의료비 증가를 제대로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노령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이 앞으로 5년간 176만명이나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의료비 증가율이 정부가 예측하고 있는 연평균 8%보다 훨씬 더 커질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평균 진료비는 일반 국민에 비해 3배나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의료 혜택을 늘리면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될 작은 불편에도 병의원을 방문함으로써 과잉진료 등으로 보험료 지급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세밀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또 직장인의 보험료 인상과 기업이나 고용주들의 보험료 부담 증가에 대한 대비책도 필요하다. 막상 건보료가 오르면 직장인들의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월 4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의 건보료는 올해 25만8400원 수준이지만, 2026년에는 최대 37만2400원까지 상승할 수도 있을 것이라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직장인의 건보료 절반을 부담해야 하는 기업이나 사업주는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가뜩이나 힘겨워 하는 이들에게 엎친데 덮친 격의 이중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건보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는 지역 가입자들의 부담 또한 가중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는 안정적이면서도 수혜율이 높은 훌륭한 제도로 전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후손들에게 한결 나아진 건강보험 혜택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재정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에 늘어나는 혜택만큼 부담 또한 가중된다는 것을 국민들이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꼼꼼한 재원 마련 방안 없이 선심을 베푸는 듯한 정책을 쏟아내 놓고, 대비책도 없이 시행된다면 건보재정의 파단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재정건전성 대책을 정교하게 짜고 비급여의 급여화정책 속도를 조절해야 기금고갈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꼼꼼한 재정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다음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행정을 펼친다면 ‘문 케어’는 건보재정 파탄의 단초가 될 수밖에 없다. 돌다리도 다시 한번 두드려볼 때이다.
이동구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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