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시론] 대한민국이 사회적 자본 빈국인 이유

칼럼 / 박해옥 / 2019-04-01 09:41:50

지난달 22일 오전 11시 무렵,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일행이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묘역을 찾아갔다. 참배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 직전 황 대표 일행은 현충원 광장에서 열린 제4회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묘역 참배 당시 불미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 46용사의 묘역임을 알리는 표지석 양옆에 헌화자의 이름이 없는 조화가 한 개씩 놓여 있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또 다른 하나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보낸 조화였다. 누군가 이 조화들의 명판을 고의로 떼어낸 것이었다. 명판들은 각각 조화 바로 뒤 땅바닥에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뒤집힌 채 놓여 있었다. 한 한국당 당원이 한 짓이었다.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에 놓인 조화의 명패들이 땅바닥에 버려져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에 놓인 조화의 명패가 땅바닥에 버려져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명판 제거는 시비곡직을 따질 것도 없는 몰상식한 행위다. 그 같은 비매너에 대해서는 엄중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니,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 원인을 정치적 대립에 의한 적대감으로만 돌리는 건 너무 단순하고 편의적이다. 생산적인 비판과도 거리가 멀다.


그 같은 만행을 인정하거나 비호할 생각은 가을터럭만큼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해할 구석마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내겐 명패 제거가 현직 대통령의 연이은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 불참에 대한 비폭력적이고 상징적인 항의의 표시로 받아들여졌다.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 연평도해전 희생자 55인을 기리는 기념식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면 정파나 남북관계 상황에 상관없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행사다. 우선 대통령은 군통수권자이고, 천안함 46용사 등은 국가 수호의 의무를 이행하던 중 순국한 이들이다. 나아가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해 전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켜야 할 기관이다. 특정 철학과 이념을 지닌 자연인이기 이전에 엄중한 책무를 지닌 헌법기관이란 의미다. 천안함 용사 등은 대통령의 그 같은 책무를 위임받아 일선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유명을 달리한 호국영웅들이다.


더구나 문제의 사건들은 정전 상태에서 전쟁 상대국의 소행으로 다수가 희생됐다는 의미심장한 역사성을 지닌다. 우리가 두고두고 기려야 하는 역사적 사건들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거듭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 불참했다. 지난해의 경우 방문외교와 겹쳤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겠지만, 올해처럼 시급하지도 않았던 국내의 다른 일정을 이유로 이 행사를 외면한 건 정도가 아니었다.


기념행사를 수일 남기고 김연철씨를 통일부 장관 후보로 낙점한 것도 논란을 부를 만했다. 김 후보자는 천안함 폭침 사건을 언급하면서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 전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금강산 관광 도중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박왕자씨 피살사건을 “통과의례”로 칭한 적도 있다. 그가 통일부 장관직을 수행하는 일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그 같은 인물을 장관 감으로 지목한 대통령의 인식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군 장병들이 유사시 국가를 위해 선뜻 희생할 각오를 할 수 있을까. 군 통수권자로서도 국군 장병들에게 영토 수호를 위해 목숨 바칠 각오를 가지라고 말하기가 민망해지지 않을까.


대통령의 서해 수호의 날 행사 홀대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신뢰 축적을 방해한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면 주검으로라도 반드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믿음, 죽어가며 전장에서 쓴 손편지가 혈육들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국가가 영원히 자신을 기려주고 예우해 주리라는 믿음은 강군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미국의 누대 정부가 단 한명일지라도 더 실종미군을 찾기 위해 국가적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 최고의 예우로 미군 유해를 맞아들이는 것은 전 국민에게 그 같은 믿음을 심어주어주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들이다. 버락 오바마든 도널드 트럼프든 미국 대통령들은 소속 정당을 가리지 않고 미군 유해가 본국으로 송환될 때면 만사 제쳐놓고 공항으로 달려가 거수경례로써 극진한 예를 갖춘다. 그로 인해 형성된 믿음, 신뢰는 오늘날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행세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한 사회가 강건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다. 사회적 자본의 기본을 이루는 것은 잘 정비된 법과 제도, 관습 등에 의해 뒷받침되는 신뢰다. 앞서 말한 믿음들은 하나하나가 사회적 자본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사회적 자본이 빈약한 사회는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그런 사회는 선진 사회라 할 수 없다. 사회적 자본이 빈약한 곳에선 정의가 살아나지 못한 채 약육강식의 원시 생태계 원리만이 작동한다. 강자들은 각종 기득권을 누리며 어떻게 해서든 위험한 일을 기피하려 애쓴다. 그 결과 부유층이나 권력층 자녀들은 군 입대를 회피하고, 좋은 일자리를 부당하게 독·과점한다. 고관 자녀들의 병역 기피나 환경공단 등 공기업 임원의 낙하산 인사, KT 등 대기업의 연줄 채용도 그 같은 사례의 일부다.


사회적 자본이 빈약한 세상이라면 국가가 아무리 많은 경제적 부를 이루더라도 희망이 없다. 경제적 부가 공평하게 분배될 리 없고, 갈등과 대립이 끊일 수 없는 탓이다.


풍족한 사회적 자본은 통합을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특히 소중하다. 통합은 누구나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고, 정당하게 평가받으며, 잘못한 일에 대해 평등한 처벌을 받을 때 완성된다. 그런 사회라야 애국심이 싹틀 토양을 갖출 수 있다. 애국심은 사회통합의 결정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국심은 본디 내부적 통합과 외세 배제라는 이율배반적 가치를 동시에 지향하는 속성을 지닌다. 통합과 배제의 기능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은 애국심은 허상일 뿐이다. 따라서 대북 관계를 의식해 대통령이 서해 수호의 날 행사를 푸대접하면서 애국심을 강조한다면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다. 통합도 배제도 없는 애국심은 애시당초 성립될 수 없다.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순직 용사들에 대한 예우는 우리사회의 통합 능력과 사회적 자본의 확충 정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유감스럽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사회적 자본 빈국이라 할 수밖에 없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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