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경제사령탑, 국민 불안 키운다

칼럼 / 이동구 / 2019-04-01 09:27:04

경제 사령탑이 또 흔들리고 있다. 최근 일반인에게 판매가 허용된 액화석유가스(LPG) 차량 관련 정책이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모른 채 청와대와 여당의 협의만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다. 37년간 끌어온 민감한 경제 정책이 경제 사령탑인 경제부총리도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 결정됐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앞서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방안을 둘러싸고 벌어진 경제부총리 패싱 논란이 보름도 안 돼 재연된 것이다. 전임 김동연 부총리가 경제 정책을 둘러싼 청와대와의 불협화음으로 중도 하차한 것을 감안해 볼 때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주무부처의 충분한 검토 과정도 없이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이라 각종 부작용마저 우려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지난달 13일 국회를 통과한 LPG 차량의 일반 판매 허용 법안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5일 미세 먼지 대책을 지시하자 민주당과 총리실·산업자원부가 당정 협의를 통해 마련했고, 관련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이런 사실을 언론 보도를 접할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연간 3000억원의 세금 수입을 줄이는 중요한 국가 재정 사안이 경제부총리를 배제한 상태에서 추진됐다니 말문이 막힌다. 경제부총리로서는 바보가 된 느낌이었을 것이 뻔하다. 더구나 홍 부총리는 이달 초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방안을 두고 비슷한 상황을 겪은 터라 더욱 화가 났을 것이다. 여기에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추경 예산은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보름도 안 돼 문재인 대통령의 “미세 먼지 추경 검토” 지시가 나오는 바람에 체면을 구겼다. 앞으로 영이 제대로 먹힐지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경제부총리의 구겨진 체면과 함께 부작용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LPG 차량의 일반인 허용 여부는 1982년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논란이다. 택시나 장애인 차량에만 허용하는 LPG 차량을 일반인들도 사용하게 해달라는 여론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LPG가 가솔린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 차량 유지비가 줄어들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마다 환경문제, 세수감소 논란 등으로 찬반이 팽팽히 맞서, 이 문제는 역대 정부의 뜨거운 감자였다. 이런 사안을 충분한 검토 없이 속도전을 치르듯 추진했다면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연간 3000억원가량의 세수가 줄어들면 재정운용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LPG 가격 상승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온실가스 문제 등 각종 환경문제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국민 입장에서는 경제부총리의 정책패싱보다 더 불안하고 속터지는 것이 현 경제상황에 대한 청와대·정부 관계자들의 인식이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 탈원전, 근로시간 단축 등 친노동정책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따른 후유증으로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됐고 각종 경제지표도 악화되고 내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경제부총리의 인식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현장에서는 아우성인데 국가경제를 책임져야 할 컨트롤 타워는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 29일 통계청이 밝힌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생산·소비·투자 등 경제 3대 지표가 모두 감소했다. 현재와 미래의 경기를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와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에 비해 9개월째 동반하락했다. 이런 경우는 1970년 1월 이후 처음이다.


이달 들어 수출의 제1 주요 품목이자 그동안 국민을 먹여살려온 반도체, 휴대폰 등 전자부문마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반토막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지난달 26일 밝혔다. 소상공인 폐업자 수가 100만명에 이르러 서울의 빈 사무실 비율이 작년 4분기에 11.4%로 높아졌다. 2013년 6.4%에서 5년만에 거의 두배로 늘었다. 웬만한 불경기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던 이태원, 강남 등 서울의 대표상권들마저 상가 공실률이 20%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해외투자은행(IB), 한국은행 등 국내외 전문기관들은 잇따라 한국경제의 성장률 목표치를 낮추고 있다.


경제 상황이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국무회의에서 “세계 경제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우리 경제가 여러 측면에서 개선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앞서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9년 3월 최근 경제동향’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지만 상당수 국민들은 “현 실정을 모르는 유체이탈 화법”이라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경제 상황보다는 정치적인 고려를 우선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4·3 보궐선거와 내년 총선 때문에 부총리와 기획재정부 등을 무시하고 당·청 주도로 경제 현안을 밀어 붙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역으로 국가경제보다는 정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표를 더 의식한다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수십조에 이르는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도 없이 결정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치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국가 예산, 세금 등 각종 경제 정책이 뒤틀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내년도 정부 예산안 편성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500조를 넘길 것이라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국가재정 전반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윤희숙 한국개발원(KDI) 교수는 한 칼럼에서 “재정수지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일단 거둬들인 돈은 명확한 목표 하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국가 재정의 대원칙이 요즘 무시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0일에는 전직 경제 부처 장·차관 모임인 ‘건전재정포럼’이 “정무적 판단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배포했다. 경제 사령탑이나 대통령의 경제 인식과 현재의 국가 경제 상황이 얼마나 걱정스러웠기에 전직 장·차관들이 우려를 표시했을까. 국민들은 혼란스럽고 불안할 따름이다.


이동구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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