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판단 따라 오락가락하는 신용카드 정책

칼럼 / 이동구 / 2019-03-15 11:45:30

정부의 신용카드 정책이 오락가락이다. 신용카드 사용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올해 이후 폐지하겠다고 했다가 돌연 취소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또 연매출 500억원 이상의 대기업 대상 카드수수료를 인상한 것도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판단에 따라 즉흥적이고 땜질식의 처방을 내놓고 있는 데 따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올해 말로 종료하지 않고 연장되어야 한다는 대전제 하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납세자의 날인 지난 4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신용카드 소득공제처럼 어느 정도 도입 취지가 달성된 제도는 축소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불과 1주일만에 신용카드와 관련한 정부의 정책이 뒤바뀐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TV/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연합뉴스]

신용카드 소득공제란 연소득의 4분의 1을 신용카드로 사용할 경우 초과분의 15%를 300만원까지 과세 소득에서 빼주는 것으로 1999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자영업자의 세금탈루 방지 목적도 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신용카드 소득공제 대상자는 967만7324명에 공제 금액은 23조9346억원이나 된다. 연봉 5000만원인 직장인이 한해 동안 3250만원을 카드로 사용했다면 최대 49만5000원의 절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소득공제가 축소되거나 폐지된다면 국민 1000만명이 연간 수십만원의 세금을 더 낼 수밖에 없고, 정부는 쉽게 증세효과를 거두게 된다.


그러니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나 폐지 방침 및 검토 등에 직장인들의 반발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월급쟁이가 봉이냐, 월급쟁이에 대한 증세 아니냐”는 등의 항의성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납세자 단체의 소득공제 축소 반대운동에는 1만명 가까운 국민들이 동참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의 추경호 의원은 “소득공제 축소 또는 폐지 방침은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서민과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증세”라며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현행대로 3년 더 연장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신용카드 공제 여부로 혼란이 일자 정부는 “총리나 정부가 공제를 폐지한다고 말한 적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직장인을 비롯한 상당수 국민들이 앞으로의 신용카드 사용 여부를 고민하고 반발할 때 나온, “그런 적 없다”라는 정부의 아니면 말고식 답변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경제수장이라는 부총리의 발언이 그토록 가벼워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러니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과 억측은 더욱 심화되지 않을 수 없다. 당초 정부가 소득공제 축소 방안을 내밀었을 때 일각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공약이나 정책에 필요한 실탄을 마련하기 위한 것 아닌가”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신용카드 공제 축소가 “소상공인 전용 간편결제 시스템인 서울시의 ‘제로페이’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노림수”라는 말도까지 돌았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줄이면서 제로페이에 대해서는 40%의 소득공제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제로페이를 만들자 중소벤처기업부가 홍보예산을 60억원이나 배정한데 이어 소득공제율도 높이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로페이 사용액은 올 1월 기준 신용카드 사용액의 0.0003%에 불과할 정도로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신용카드 혜택을 줄이면서 활용도가 낮은 제로페이에 세제혜택을 늘린다는 것에 국민들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사실 신용카드 소득공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당초 3년 한시적으로 도입됐던 제도가 지금까지 8차례에 걸쳐 연장돼 왔다. 정부는 직장인이나 소상공인들의 반발에 부딪힐 때마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대책을 내놓은 게 아니라 공제율을 아주 조금씩 낮춰가는 땜질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니 이번처럼 폐지 이야기가 거론되니 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카드 수수료율의 기업 규모별 차등적용 등 정치적 판단에 따른 즉흥적 결정이 노골화되다 보니 국민의 불신은 더욱 커지게 됐다. 지난해 말 대기업 가맹점에 대한 카드 수수료를 인상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달 초 현대·기아차 그룹은 신한·삼성·롯데·국민·하나카드 등으로 차량을 구입하려는 고객에 대해서는 카드사용을 거부키로 방침을 정했다. 이들 카드사 3000여만명의 회원들은 현대·기아차를 구입할 경우 현금결제나 다른 카드를 이용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금융당국이 소규모 가맹점 수수료를 연간 1조4000억원 깎아주는 대신 연매출 500억원 이상의 대형 가맹점에 대해서는 수수료율을 인상키로 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책은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이 아우성치자 문재인 대통령이 카드 수수료 인하방안을 지시한 데 따라 급조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조치가 알려지자마자 판매부진 등으로 경영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이에 응할 수 없다며 카드 거래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대기업이라고 다 여유가 있는 게 아닌데 대통령이나 정부, 정치가들의 선심성 결정으로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꼴이 된 것이다.


현대·기아차뿐 아니라 이마트 등 대형유통업체와 홈쇼핑업체들의 아우성 또한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카드업계 최대 조직인 신한카드노조는 카드 수수료를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정부와 지주사들을 상대로 투쟁할 것을 선언하며 산별노조 전환을 결정하기도 했다. 정부가 저소득층 소득을 끌어올린다면서 최저임금을 대폭 올림으로 해서 고용참사가 발생한 것과 유사한 정책 부작용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온 국민의 살림살이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정책만큼은 더 이상 정치적 판단으로 좌지우지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동구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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