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View] ‘노동 가동연한 65세’ 판결의 의미

칼럼 / 류수근 기자 / 2019-02-22 11:46:22

지난 21일 대법원이 노동 가동연한(稼動年限)을 65세로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사람이 몸을 움직여 일할 수 있는 연령의 한계를 65세로 높였다는 얘기다.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노인의 기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어서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말하는 노인이란 생물학적 개념 이상의 의미를 지닌, 사회·경제적 의미의 노인이다.


노동 가동연한 상향조정은 사회변화에 부응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노인들의 수명이 연장되고 체력이 이전보다 향상된데다,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독거노인 및 일하는 노인이 증가한 점도 이번 판결의 바탕이 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이번 대법원 결정 자체에 담긴 의미는 제한적이다. 인간의 건강수명이 길어지면서 노동을 할 수 있는 한계연령도 높아진 만큼 손해배상금액 산정시 일실수입(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경우 얻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입)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결정의 취지다. 이번 결정은 3년여 전 인천의 한 수영장에서 사망한 4세 어린이의 가족이 수영장 운영업체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나왔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결정이 미치는 파장은 손해배상 사건을 넘어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대법원도 30년만에 노동 가동연한을 5년이나 끌어올리면서 그 같은 파장을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영향을 받기 쉬운 것이 근로자의 정년이다. 노동 가동연한이 65세로 높아졌으니 정년 또한 그에 맞춰 5년 더 연장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보다 큰 설득력을 얻게 됐다.


문제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데 있다. 정년 연장 논의는 자칫 청년일자리 문제와 맞물려 노소(老少) 간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청년실업률이 10%를 넘보는 현 상황은 정년 연장 논의 자체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년 연장 논의는 고통을 감내하며 거쳐가야 할 통과의례다. 우리 사회가 노인인구 14% 이상의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노인인구 20% 이상)를 향해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오히려 논의가 늦었다고 할 수 있다. 독거노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소득 1분위 가구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고, 그 결과 사회 전반의 빈부격차가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정년 연장은 절실히 필요하다.


이번 판결은 이제 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는 신호탄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정년을 어떤 방식으로 늘릴 것인지를 두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 여기엔 정부와 정치권, 기업, 각종 이익단체 등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궁극적 논의 주체가 될 노·사·정의 대화다. 범위를 더욱 구체화하면 그 대상은 노·사로 좁혀질 수 있다.


대화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정년 연장 안건이 근로자의 육체적 능력만을 기준 삼아 논의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서 일부 언급했듯이 정년 연장이 지니는 사회·경제적 의미까지 충분히 감안해가며 논의가 이뤄져야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제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원만한 대화를 위해서는 장년층과 청년층 각각의 양보가 수반돼야 한다. 우선 장년층은 정년 연장의 혜택을 입는 대신 관리직 배제와 임금 삭감 등을 일정 정도 감수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는 청년층의 불안감을 달래는 한편 기업주의 정년 연장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청년층은 청년층대로 장년층과 경쟁관계가 아닌 호혜적인 상생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인식을 지닐 필요가 있다. 일자리 문제에 있어서 청년층과 고령층이 경쟁관계가 아니라 호혜적 관계에 있다는 것은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정책 입안 및 관련법 개정 등을 통한 지원에 힘써야 한다.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뒤 공공기관 및 공기업을 통해 선도적으로 정년 연장을 유도해나가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공무원연금제도와 공기업의 과도한 복지 등도 손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공공기관·공기업 근로자들에게 정년 연장의 혜택만 부여한다면, 정부가 혹독한 임금피크 등을 감수해야 하는 민간기업 근로자들을 설득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정년 연장에 수반될 국민연금 의무가입 및 수급개시 연령의 연장 등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문제다. 원칙론을 말하자면 정년과 동시에 연금을 수령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적 괴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국민연금 의무가입 및 수급개시 연령을 점진적으로 늘려가기 위해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려는 노력도 차근차근 펼쳐나가야 한다. 지난해 노인 인구 14.3%를 기록하며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정년연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버렸다.


대표필자 편집인 류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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