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라면서 일자리는 왜 없어?

칼럼 / 이동구 / 2019-01-29 14:27:00

“취업도 못한채 무슨 낯으로 고향의 부모님과 친지,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겠습니까? 사람노릇 못 한지 오래됐습니다.”


취업을 못한 청년들의 한숨이 올 설에도 여전하다. 지난 1~2년을 일자리를 찾느라 생고생했는데도 변변한 직장을 찾지못한 좌절감과 죄책감에 명절이 다가와도 고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버팀목이 돼 줬던 아르바이트나 인턴 자리조차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파산 신청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등 믿었던 수출마저 흔들리고 있다. 연말 연초 발표된 각종 경제지표로 인해 새해에도 제상황이 좋아져 취직하기 쉬워질 것이란 전망은 찾기 어렵다.


통계청이 새해 초 발표한 지난해의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집권 2년여 동안 호전된 게 거의 없다. 전체 고용률은 66.7%로 변함이 없었고, 실업률은 3.8%로 0.1%포인트 상승했다. 청년층 실업률은 0.3%포인트 하락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9.5%나 된다. 이를 반영하듯 졸업시즌을 맞은 대학가는 취업을 못한 졸업생들의 한숨 소리로 활기가 없다. 지난해 각종 공공 분야에 일자리를 늘린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대학가에선 체감하기 어렵다. 올 졸업생 중 정규직 취업자는 열에 한 명 정도라니 암울하기 짝이 없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여 동안 고용동향은 호전된 게 없다. 특히 청년층 실업률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여 동안 고용동향은 호전된 게 없다. 특히 청년층 실업률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사진= 연합뉴스]


성장이 없으니 일자리가 늘어날 리 만무하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의 우리 경제 성장률은 2.7%로 2012년(2.3%) 이후 6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민들이 느끼는 그대로다. 체감경기를 가장 잘 반영한다는 건설분야의 투자(-4.0%)는 외환위기 이후 20년만에 가장 부진했다. 설비투자(-1.7%)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9년만에 최저였다. 수출은 4.0% 증가해 5년만에 최고였지만 4분기만을 두고 본다면 2.2% 증가에 그쳐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는 게 확연했다. 그야말로 투자, 수출, 고용 등 경제 관련 수치들이 일제히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기업이 고용을 늘릴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


새해 들어 수출엔 이미 경고등이 켜졌다. 1월 20일까지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6% 줄었다. 특히 반도체는 지난달 8.3%에 이어 이 달에는 28.8%나 감소했다.


기업들의 파산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지난해 서울 회생법원을 포함한 전국 14개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기업은 807곳으로 한해 전의 699곳보다 15%나 늘어났다. “기업 못해 먹겠다”는 탄식이 현실이 됐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 자영업자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 경제는 무역의존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68% 이상이다. 수출이 꺾이면 경제전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출 환경은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어려워질 게 뻔하다. 미·중 무역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 등으로 세계의 수출 환경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평균 성장전망치를 당초보다 0.2%포인트 낮은 3.5%로 예측했다. 특히 우리의 전체 수출 가운데 34%를 차지하는 중국경제의 침체가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런 통치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각종 경제지표에서 양호한 성적을 남겼다. 미국은 지난해 2분기 경제 성장률이 2014년 이후 최고인 4.1%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성장률도 애초 2.5% 정도일 것이라는 전망을 벗어나 3%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실업률 또한 3.7%대로 2010년 이후 가장 낮다.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세계 각국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유치로 제조업을 활성화하고 고용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해 온 결과이다.


일본에서는 5년 전만 해도 주택 가격 폭락과 일자리 부족으로 취업 낭인이 속출했었다. 하지만 2012년 제2기 아베 신조 정권이 출범한 이후 상황이 반전돼 여기저기서 일자리가 넘쳐난다. 일본의 지난해 실업률은 2.4%로 25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실상 완전 고용상태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구직자 100명당 163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오히려 구인난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일본은 단기간에 어떻게 경제전반에 활력을 불어 넣었을까. 이유는 의의로 간단했다. 전문가들은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핵심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장시간 근로 대신 유연하고 효율적인 보상체계를 도입했다. 소득증가에만 방점을 둔 우리의 노동정책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기업에 대한 규제의 강도에서도 우리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우리는 주 최대 52시간 근로를 못박고 있으나 일본은 주간 규제가 없고, 월간, 연간 상한만 두고 있다. 로봇을 비롯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신산업 분야로의 투자를 유도하며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시간적인 여유와 정책적인 뒷받침이 유연하게 펼쳐지고 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 정책의 문제점으로 기업에 투자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점을 꼽았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기업이 투자로 생산을 이끌고, 일자리가 생기면서 개개인의 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활성화되도록 정부가 정책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현 정부는 분배와 규제에만 치중하면서 투자와 일자리 늘리는 것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을 비롯한 경제 전문가들은 한결 같이 이와 유사한 지적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도 최근 경제살리기 행보에 적극 나서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국내외의 급박한 경제상황에 비해 위기의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청와대 경제보좌관이라는 사람은 “일자리 없다” 탓하는 2030, 5060 세대에 “동남아로 나가라”는 식의 발언을 해 무리를 빚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여전히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매몰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 등의 부작용을 외면한 채 경기침체, 고용부진, 소득분배 악화 등의 책임을 대기업에 떠넘기고 친노동 정책을 이어간다면 올해는 정말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를 일이다.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는 데 동의할 국민은 없다. 일자리는 복지의 첫 걸음이다. ‘사람이 먼저’라는 주장이 계속 설득력을 가지려면 일자리부터 충분히 제공돼야 할 것이다.


이동구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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