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의 제왕’ 클린업조이, KRA컵 클래식·그랑프리 석권…저가 매입마의 반전 드라마
세계 최대급 전광판부터 힙합 페스티벌까지…경마공원, 경주 넘어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
[메가경제=심영범 기자]2016년 10월 한국경마는 경주로 안팎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국마사회가 미국에서 육성한 경주마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주 무대인 브리더스컵에 진출했고, 저렴한 가격에 도입된 외산마는 국내 최정상급 경주를 잇달아 제패했다. 경마공원에서는 영화 상영과 대형 음악 공연이 열리며 경마를 넘어선 문화 콘텐츠 실험도 시작됐다.
10년이 지난 현재 당시의 도전은 경주마 선발 기술의 성과와 말산업의 부가가치 확대, 경마공원의 문화·여가 기능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경주 성적뿐 아니라 말의 혈통과 기술, 공간 활용까지 한국경마의 경쟁력을 넓히려는 시도가 본격화한 시기였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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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KRA컵 클래식(G2) 우승마 클린업조이와 함완식 기수. [사진=한국마사회] |
◆ 케이닉스가 발굴한 J. S. 초이스, 세계 무대 첫발…닉스고 우승으로 이어진 도전
2016년 10월 1일 미국 뉴욕 벨몬트 경마장에서 열린 2세마 경주 ‘필그림 스테이크스(Pilgrim Stakes·미국 GⅢ)’에서 한국마사회 소유마 J. S. 초이스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 성적을 발판으로 J. S. 초이스는 마사회 소유마 가운데 처음으로 브리더스컵 출전권을 확보했다.
J. S. 초이스는 마사회가 2015년 미국에서 구매한 미국산 수말이다. 당시 구매 가격은 7만5000달러로, 원화로 약 9000만원 수준이었다. 마사회는 말을 도입한 뒤 미국 현지 조교사에게 훈련을 맡겨 경쟁력을 검증했다. 출전 세 번 만에 구매 가격에 맞먹는 상금을 확보하면서 투자 성과도 확인했다.
말의 잠재력을 찾아낸 기반에는 마사회가 자체 개발한 경주마 선발 기술 ‘케이닉스(K-NICKS)’가 있었다. 케이닉스는 우수 경주마의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다른 말의 경주 능력을 예측하는 기술이다. 아직 경주 성적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어린 말의 잠재력을 분석하고, 유망마를 조기에 선별하는 데 목적이 있다. J. S. 초이스는 기술을 활용해 발굴한 경주마의 가능성을 미국 현지 경주에서 확인한 사례로 꼽혔다.
J. S. 초이스는 같은 해 11월 4일 미국 산타아니타 경마장에서 열린 브리더스컵 주버나일 터프(GⅠ)에 출전했다. 미국의 대상경주 우승마는 물론 유럽의 강호까지 집결한 세계 정상급 2세마들과 경쟁했다. 미국의 명조교사 토드 플레처가 조련을 맡았고, 현지에는 한국 응원단도 찾아 경주를 지켜봤다.
결과는 13위였다. 우승권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한국마사회 소유마가 세계 정상급 경주 무대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남겼다. 국내에서 선발한 말을 해외에 내보내 경쟁력을 검증하는 방식이 한국경마의 새로운 성장 경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후 케이닉스 사업은 더 큰 성과로 이어졌다. 2021년 마사회 소유마 닉스고(Knicks Go)는 상금 600만달러 규모의 브리더스컵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같은 해 페가수스 월드컵까지 제패한 닉스고는 2021년 미국 ‘올해의 말’로 선정됐다. 한국마사회가 발굴한 경주마가 세계 최정상급 경주에서 실력을 입증한 것이다.
닉스고는 올해 1월 제주목장에 도착해 씨수말로 새 출발을 했다. 마사회는 국내 말 생산농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올해 닉스고의 교배 130두를 무상으로 지원한다. 해외 경주에서 거둔 성과를 국내 말 생산 기반으로 연결하려는 전략이다.
2016년 J. S. 초이스의 브리더스컵 진출이 해외 무대 도전의 출발점이었다면, 닉스고의 성공은 경주마 발굴 기술이 국제 경쟁력과 국내 말산업의 부가가치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1만4000달러에 데려온 클린업조이, 국내 최강마로 우뚝
2016년 서울 경마에서 가장 주목받은 경주마 가운데 하나는 클린업조이였다. 당시 서울 최고 레이팅마로 평가받던 클린업조이는 그해 초반 세 경주에서 연속 우승하며 강력한 경쟁력을 보였다. 그러나 대상경주에서는 좀처럼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전년도 그랑프리에서 3위, 2016년 7월 부산광역시장배에서 4위에 그치면서 ‘무관의 제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전환점은 10월 16일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열린 KRA컵 클래식(GⅡ)이었다. 국산마가 출전하지 않은 가운데 2000m 거리에서 서울의 최강 외산마를 가리는 경주가 펼쳐졌다. 클린업조이는 단승 배당 1.3배를 기록할 만큼 압도적인 우승 후보였다.
함완식 기수는 이날 평소와 다른 작전을 선택했다. 후미에서 달리다 직선주로에서 추입하는 방식 대신 출발 직후부터 선두권에 자리를 잡았다. 출발이 매끄럽지 않았지만 빠르게 위치를 확보했고, 비에 젖은 주로에서도 흐름을 주도했다.
직선주로에 들어서자 클린업조이는 선두로 치고 나갔다. 2위 언비터블을 7마신 차로 따돌리며 생애 첫 대상경주 우승을 차지했다. 통산 20번째 출전에서 거둔 10번째 우승이었다. 꾸준한 경기력에도 따라붙었던 무관의 꼬리표를 마침내 떼어낸 순간이었다.
클린업조이의 상승세는 연말까지 이어졌다. 12월 18일 시즌 마지막 대형 경주인 그랑프리(GⅠ·2300m)에서도 선두권을 유지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대통령배 2연패를 기록한 트리플나인과 그해 삼관마에 오른 파워블레이드의 추격을 따돌렸다. 국내를 대표하는 강자들을 연이어 제압하며 그해 최강마로 자리매김했다.
클린업조이의 이력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도입 가격이다. 이 말은 2013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2세마 경매에서 1만4000달러, 당시 약 1600만원에 매입됐다. KRA컵 클래식 우승 무렵에는 이미 80만달러 이상의 상금을 벌어들여 도입 가격의 50배를 웃도는 수익을 거둔 상태였다.
경주마의 가치를 매입 가격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우수한 말을 선별하는 안목과 체계적인 훈련, 경주 전략이 맞물리면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로도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클린업조이의 우승은 상징성이 컸다.
◆ 경주가 끝나면 영화관·공연장으로…경마공원의 새로운 실험
2016년 10월 렛츠런파크 서울에서는 경주가 끝난 뒤에도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다. 경마장을 단순히 경주를 관람하는 공간에서 가족과 젊은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여가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었다.
10월 15일 오후 7시에는 대형 전광판 ‘비전127’을 활용한 영화 상영 행사가 열렸다. 같은 해 9월 처음 공개된 비전127은 가로 127.2m, 세로 13.6m 규모로,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경마장 전광판으로 소개됐다. 마사회는 전광판 설치를 기념해 ‘무비 페스티벌’을 열고 영화 ‘나우 유 씨 미 2’를 상영했다.
경마 중계에 활용하던 대형 화면을 영화 콘텐츠에 접목해 관람 경험을 넓힌 것이다. 경주가 없는 시간대에도 시설을 활용해 방문객을 유치하고, 경마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 공간을 개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같은 달 29일에는 음악 축제가 열렸다. 2015년 첫 행사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 ‘렛츠런파크 뮤직페스티벌 VOL.2’에는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시즌5’ 우승자 비와이를 비롯해 스윙스, 박재범, 사이먼 도미닉, 그레이, 로꼬, 어글리덕 등이 출연했다. 경마공원이 대형 음악 공연을 개최하는 장소로 활용되면서 젊은 관객층과의 접점을 넓혔다.
이 같은 시도는 최근 가을축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10월 열린 가을축제에서는 드론 400대를 활용해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군마 레클리스의 이야기를 밤하늘에 구현했다. 포니랜드에서는 세계 말 12종을 소개하는 ‘살아있는 말박물관’이 열렸고, 비전127에서는 동물영화제가 관객을 맞았다.
10년 전 영화 상영과 음악 축제가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경마공원의 콘텐츠를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진 셈이다. 경주마와 경주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시설과 공간을 활용해 새로운 방문 수요를 창출하는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경마가 2016년 보여준 변화는 크게 세 갈래였다. 해외 경주마 선발과 육성을 통한 국제 경쟁력 확보, 저평가된 경주마의 잠재력을 성적으로 증명하는 사례, 경마공원의 문화·여가 기능 확대다. 당시에는 각각의 시도로 출발했지만 이후 경주마의 혈통 개량과 말산업 육성, 복합문화공간 조성이라는 방향으로 연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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