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경제=장익창 대기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내용의 여야 합의가 결국 불발됐다. 그러나 지난 1일까지 여야 합의 과정을 보면 야당이 자신들의 최대 지지기반인 한 줌의 노총 세력의 입김에 고개를 숙이며 무산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
▲ 중소기업대표들이 1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 법은 문재인 정부와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총선에서 압승한 후 급물살을 타2 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1년의 유예를 거쳐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올해 1월 27일까지 2년간 유예를 받은 후 확대 시행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사망 등 노동자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 법이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 확대 시행을 유예하는 법안과 관련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1월 국회 마지막 날인 2월 1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추진해 왔다. 국민의힘은 현장 준비가 너무 부족하다며 적용을 1년 만이라도 유예하자고 제안했다. 나아가 국민의힘은 대통령실과 공감대를 통해 민주당이 법 적용 유예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산업안전보건청 신설과 관련해 정부조직 신설이라는 준비기간을 감안해 2년 뒤 개청하자는 협상안까지 제시했다. 결국 국민의힘으로서는 유예를 이유로 양보할 것은 다 양보한 셈이었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도 이에 대한 수용 가능성을 비치면서 협상은 급물살을 탔고 지난 1일 민주당 의총 전까지만 하더라도 극적인 합의 가능성이 커 보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여당 제안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의총 당일 국회 본관 앞에서 민주노총·정의당·진보당 주최로 긴급 기자회견이 열리고 당내 강경파 의원들이 핏대를 높이며 유예 반대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고 한다. 결국 민주당이 최대 지지기반 중 하나인 양대노총 등 노동계 세력에 눈치만 보는 정당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은 전체 근로자 수를 감안하면 소수에 불과하다. 건강보험료를 기반으로 한 원천징수 기준으로 한국 임금근로자 수는 2100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노조에 가입된 조합원 근로자 수는 272만명이다. 각각 한국노총 112만명, 민주노총 110만명, 미가맹 조합원 48만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 조직률과 조합원 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전년 대비 조직률은 1.1%포인트 감소했고 조합원 수도 21만명이나 줄었다. 특히 이번에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3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노조 조직률은 0.1%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법은 곳곳에 허점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원칙적으로 안전보건관리자나 전담조직이 필요 없다. 그러나 20~50인 사업장 중에서 제조, 임업, 하수, 환경, 폐기업 등 5개 업종은 안전보건관리자 1명을 반드시 둬야 한다. 5개 업종은 가뜩이나 경기 상황도 좋지 않고 직원 월급 주기에도 빠듯해도 생산성과 연관이 적은 안전보건관리자까지 둬야 하는 실정이다. 중대재해 사고가 나면 사업주는 무조건 변호사를 구할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변호사 선임비만 해도 영세 자영업자가 쉽사리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고용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83만7000여개에 달하고 소속 근로자 수는 8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5인 이상 직원을 고용한 중소업체나 소상공인에 대한 기준이 1시간이라도 일한 근로자 수가 하루 5명, 한 달을 넘어가면 무조건 법 적용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법은 5인 미만의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업주가 법을 피하려고 4인 이하로만 축소해 사업을 영위하면 적용을 피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일자리 감소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감안하지 않은 정치권의 탁상행정으로 탄생한 불완전한 법이라는 질타는 이래서 쏟아진다.
노동자 안전은 정치 진영을 뛰어넘는 인권의 문제다. 2021년 국회 본회의 통과부터 3년 유예기간이 주어졌던 만큼 정부나 기업의 안일한 대응에도 귀책 사유는 분명히 있다. 한국경총에 따르면 이들 기업 10곳 중 8곳이 고용노동부의 컨설팅을 구경도 못 해 봤다고 하는 지경이다.
어느 사업주도 제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근로자가 다치거나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을 적용한 대형 사업장에서 이미 2년째 시행 중이지만 산재 예방 효과는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경제 6단체가 “2년만 유예하면 더 연장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내놓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코로나에 이은 복합경제위기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조금만 유예해 달라고 호소하는데도 민주당은 외면했다.
그러는 사이 지난 1월 31일 부산의 폐알루미늄 수거·처리업체에서 일하던 30대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같은 날 강원도 한 축산농가에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던 40대 하청업체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이들 사업장은 상시 근로자가 각각 10인, 11인이라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다. 우리 사업장에서도 중대사고가 나는 건 아닌지 사업주들은 노심초사해야 하는 가시방석 같은 상황의 연속이리라.
대다수 영세 기업과 소상공인은 고금리와 경기 침체에 따른 영업 부진 앞에서 연명하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중소기업들과 소상공인들은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이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에 따른 충격보다 강한 경영 부담과 근로자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한다. 문재인 정부 영향 아래 결정된 2018년 최저임금은 전년에 비해 무려 16.4%나 폭증한 7530원으로 결정됐다. 그리고 2022년 9160원까지 치솟았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에야 비로소 진정 국면에 들어서 2023년 최저임금 9620원, 2024년 9860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5.0%, 2.5% 인상됐다. 그렇지만 그 사이 폭등한 인건비 부담으로 식당과 커피숍 등에선 키오스크가 늘었고, 마트에도 무인 계산대가 확대됐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를 낳은 것과 같이 일자리의 안전을 위한다는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이 다시 한번 일자리 축소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 기간(2월 19~29일)에서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유예 법안을 다시 협상해야 한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사장이 구속되거나 10억 벌금을 물게 된다면 사업장은 망가지고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있어야 근로자가 존재한다. 일자리가 없어진 곳에 근로자 생명과 안전을 따지면 무엇 하겠나.
[ⓒ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