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경제=황성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에 대한 고율 관세 부활 카드를 꺼내 들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수출 구조를 가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에 더해 칩스법 폐지 가능성까지 언급되면서 보조금 지원 불확실성 역시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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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
◆트럼프 100% 고율 관세 선언…국내 업계 '비상'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 반도체와 칩에 대해 100%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했다. 단, 미국 내 생산 기업은 관세가 면제된다. 반도체가 자동차와 함께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효자 품목’인 만큼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특히 이번 관세율은 트럼프 1기 시절 철강·자동차에 매겼던 25%의 4배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에도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주도하며 관세를 주요 무역 무기로 사용했다. 2기 재임 초부터 반도체를 포함한 전략 품목에 대한 고율 관세 부활을 시사한 것은 중국 견제와 제조업 리쇼어링(해외로 이전했던 생산 설비나 공장을 자국으로 다시 이전하는 것)을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이미 반도체를 국가안보 핵심 품목으로 지정해 자국 내 생산 확대를 추진 중이며, 이번 조치는 해외 생산 의존도를 줄이고 대미 투자를 압박하기 위한 성격도 짙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1419억달러로 전년 대비 43.9% 증가했다. 이는 전체 수출의 22%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 기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15%만 부과해도 단순 계산으로 연간 수천억~수조원대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특히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생산 거점이 대부분 국내와 중국에 있어 관세 회피가 사실상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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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이천 공장. |
◆ 삼성·SK 관세 직격탄…칩스법 폐지로 보조금 불확실성 극대화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는 국내 생산 비중이 절대적이어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SK하이닉스 역시 미국 내 패키징·테스트 라인은 있지만 메모리 칩 생산은 국내와 중국 우시에 집중돼 있어 상황이 비슷하다. 장비·소재 기업 역시 미국향 수출 비중에 따라 피해 규모가 달라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가 실제 부과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미국 내 판매량이 줄고, 글로벌 고객사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될 수 있다”며 “관세 회피를 위한 현지 생산 확대나 물류 거점 재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관세 부활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칩4 동맹’을 비롯해 한국·대만·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관세를 무기로 자국 내 설비 투자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미국 외 유럽·동남아 등 새로운 수출 시장 공략이나 북미 전용 생산라인 마련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관세뿐만이 아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발의한 칩스법은 미국 내 반도체 제조시설 건설·운영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수혜를 받아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칩스법 폐지를 시사하면서 보조금 축소 또는 폐지 우려가 커졌다. 지원이 사라질 경우 국내 기업들은 계획했던 미국 투자 비용을 전액 자체 조달해야 해 부담이 급증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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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7차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韓·美 정상회담서 관세·보조금 문제 논의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는 업계 의견을 수렴해 미국 정부와의 협상 채널을 가동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오는 2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첫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변화하는 국제 안보·경제 환경 속에서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 발전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들은 관세 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반도체, 배터리, 조선업 등 제조업 분야 협력뿐 아니라 첨단 기술·핵심 광물 분야의 경제안보 파트너십 강화 방안도 협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세 정책 지속 여부는 미국 내 정치·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조치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 결집을 위한 단기 카드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장기화되는 한 관세 압박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AI·전기차 등 신산업 확대로 반도체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은 관세 리스크 관리와 장기 투자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관세 정책은 단순히 수출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차원을 넘어,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투자 방향과 생산 거점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변수”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 대응뿐 아니라 5~10년 후 공급망 시나리오까지 고려한 전략적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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