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경제=장익창 대기자] 민의의 전당인 국회. 그리고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 국회의원의 존재이유는 입법과 행정감시에 있지만 특혜와 특권만 누리고 할 일은 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어제와 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불체포 특권을 등에 업은 재판 지연과 방탄 논란이다.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사를 보면 21대 국회의원 94명이 범죄 전력을 갖고 있음이 드러났다. 전체 의석수가 300명이지만 의원직 상실이나 재·보궐 선거로 당선된 의원 17명을 제외한 283명을 조사 대상으로 해서만 나타난 숫자다. 무려 세 명 중 한 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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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본회의장 전경. [사진=국회] |
2023 사법연감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1심 평균 재판기간은 약 6개월이다. 대법원으로 3심까지 가도 약 19개월 정도에 마무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어떤가. 일반 국민들이 3심까지 마무리되는 동안 국회의원들은 1심도 채 안 끝나는 상황이 대다수다.
몇가지 예를 들자. '울산시장 선거 개입·하명수사' 사건과 관련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송철호 전 울산시장은 2020년 1월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1월 각각 징역 3년형이라는 1심 선고를 받기까지 무려 3년 10개월이 걸렸다. 태극 무궁화 2개, 치안감으로 경찰생활을 마감한 황 의원은 울산지방경찰청장 시절인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분 관계로 알려진 송철호 당시 울산시장 후보를 돕고자 상대 후보를 표적 수사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사이 사건 당사자였던 송철호 전 시장은 2022년 6월 임기 4년을 마쳤고 황운하 치안감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대전 중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황운하 의원은 1심 재판 결과에 불복해 지난해 12월 항소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공천에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달 11일 후보자 검증을 통해 황 의원에 대해 '적격' 판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황 의원은 민주당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있고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해 재선에 도전하는데 제약을 받지 않게 됐다.
조국 전 법무무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2020년 1월 재판에 넘겨진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은 3년8개월만인 지난 9월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가 확정됐다. 최강욱 의원은 유죄 확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이미 임기를 80% 채운 상태였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을 정체성으로 하는 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 횡령 등의 혐의로 2020년 재판에 넘겨져 민주당을 탈당한 윤미향 무소속 의원도 지난해 9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기까지 2년 5개월이 걸렸다. 상고심이 진행 중이지만 재판 속도를 보면 윤 의원은 임기를 다 채우는 데 아무 지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의원들이 행사하는 재판 지연 사유는 각양각색이다. 불체포 특권을 동원하고 의정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재판 불출석,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며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 무더기로 증인을 신청해 재판을 질질 끈다. 그런가 하면 재판에서 제시된 증거에 동의하지 않고 맡고 있던 변호사를 바꿔 다음 변호사가 선임될 때까지 재판을 연기시킨다.
정치인 관련 판결에 대한 재판부의 부담도 재판 지연의 한 요소로 꼽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재판 과정이 그 예다. 이 대표를 대상으로 하는 선거법 위반과 대장동 관련 재판에서 각각 재판부를 관할하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속 강규태 부장판사와 김상일 부장판사가 최근 잇달아 사표를 제출했다. 특히 강 판사는 1심을 6개월 이내에 끝내야 하는 선거법 재판 규정을 무시하고 16개월이나 끌다가 사표를 던져 뒷말만 무성하다. 최근 이 대표의 피습사건과 맞물려 선거법 위반 재판 1심 선고는 총선 전까지 나오기 어려울 전망이다. 선거법 재판이 이 정도니 이재명 대표와 관련한 다른 재판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지난해 기준 연봉은 1억 5500만원이다. 여기에 연간 5억 원이 넘게 지원되는 보좌진 수도 8+1(인턴) 등 9명이나 된다. 국민 혈세로 엄청난 세비와 인력 지원을 받고 각종 특혜와 특권을 누리고 있지만 진영 논리, 상식선을 벗어난 정쟁과 불체포 특권을 등에 업은 방탄으로 할 일은 하지 않는 생산성 바닥인 곳이 국회다.
한국보다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의원 보좌진이 많은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영토, 인구, 국력 등을 감안하면 한국의 경우는 지나치게 보좌진이 많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세계 10위권을 오르내리는 경제 대국, K컬처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지만 한국 정치는 삼류를 못 벗어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도무지 상식의 눈으로는 묵과할 수 없는 방탄과 재판 지연 행태는 부끄러운 우리 정치의 자화상이다.
각 정당들은 선거 직전에는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슬그머니 넘어간다.
이번 총선을 통해 특권을 줄이고 책임을 강화하는 혁신에 반대하는 정당과 국회의원 후보는 반드시 짐을 싸게 해야 한다. 정치 선진화를 가로막는 일이 더이상 벌어져서는 안 된다. 여야는 총선에 공천 기준을 대폭 강화해 후보를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정치 후진국 논란을 벗어날 수 없다.
대법원도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이 밝힌 대로 '신속한 재판'은 사법부의 중대 책임이자 의무다. 정치적 부담을 피해 재판을 미루다가 인사철이 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나 몰라라’는 식으로 사표를 내는 판사를 방치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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