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경제=이동훈 기자] 영화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추는 창이다. 앙드레 바쟁의 말처럼 영화는 현실을 재현하기도 하고, 현실을 비판하기도 하며, 현실을 상상한다.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현대오일뱅크 폐수 방출 의혹’은 영화 ‘삼진토익영어반’처럼 환경 보호와 기업의 경제 활동 사이에서 발생하는 책임 소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편집자 주]
![]() |
▲ 영화 '삼진그룹 토익 영어반'1991년 발생한 낙동강 페놀 무단 방출 사건을 소재화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네이버영화] |
이종필 감독의 영화 ‘삼진토익영어반’은 1990년대 본격적으로 국내에 불던 세계화 열풍에 영어 토익 점수가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대리 승진을 위한 입사 8년차 고졸 말단 여직원들의 도전기를 담고 있다. 고아성 (이자영 역), 이솜 (정유나 역), 박혜수 (심보람 역) 등 신진 여자 연기파 배우들이 주연하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와 성차별주의를 꼬집었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드물게 극장 흥행(관람객 약 157만명)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1년 제 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작품상을 수상하는 쾌거도 달성했다.
이 영화는 1991년 경상북도 구미시의 구미공업단지 안의 두산전자에서 3월 14일과 4월 22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페놀 30톤과 1.3톤이 낙동강으로 유출된 사건을 다뤘다. 이 사건은 당시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 두산전자에는 30일 간의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단 단순 과실일 뿐,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20일 만인 4월 9일 조업 재개가 허용된다.
그러나 조업 재개 후 2주 뒤인 4월 22일 오후 12시 경, 약 2톤의 페놀 원액이 또 다시 낙동가에 유입되는 2차 유출이 발생했다. 두산전자 64일 간의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졌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해당 사건 이전에도 정화 비용 500여만 원을 아끼기 위해 페놀을 정화하지 않고 버린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그리고 31년이 지난 2022년 환경부가 HD현대오일뱅크에 환경법 위반 관련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고액인 1509억 원의 과징금을 사전 통지한 일이 알려지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검찰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는 2016년부터 5년 동안 동안 페놀과 페놀류가 함유된 폐수 130만 톤가량을 공장 내 굴뚝을 통해 대기 중으로 증발시켰다고 한다.
현대오일뱅크는 폐수를 냉각수로 재활용했는데, 200도 이상인 고온의 배기가스에 폐수를 분사해 가스를 냉각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독성물질이 포함된 폐수가 증발됐다는 것이 검찰 측 설명이다.
검찰은 위 두 가지 방법을 통해 현대오일뱅크가 폐수 총량 자체를 줄였고, 이로 인해 약 450억 원을 아낄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의정부지검은 2023년 8월11일 현대오일뱅크 전현직 임원 7명과 법인을 폐수 및 유해물질 배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 |
▲ 현대오일뱅크 [사진=연합뉴스] |
반면 현대오일뱅크는 공업용수 재활용 과정에서 어떤 환경오염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메가경제와의 통화에서 재차 강조했다. 회사 측은 당시 성명서를 통해 “이미 사용한 공업용수에서 불순물을 제거한 재활용수를 폐쇄 배관을 통해 대산공장 내 계열사 설비로 이송·사용했다”며 “방지시설을 통해 적법한 기준에 따라 최종 폐수로 방류하였기 때문에 국민건강과 공공수역을 비롯한 환경에 어떠한 훼손이나 위해도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메가경제에 “같은 법인 내의 공업용수 재활용과 다른 법인 간의 공업용수 재활용을 구별하는 이유나 실익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재활용 과정에서 나오는 배출가스에서 오염물질이 측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배출가스로 오염물질을 배출했다고 하면서 같은 법인 내 공업용수 재활용까지 제재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매우 억울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건은 올해 공판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삼진그룹 토익 영어반'의 배경인 1991년 발생한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은 70%가 넘는 대구시민들에게 고통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물고기들이 떼로 죽으면서 깨끗하던 낙동강이 죽음의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이다. 페놀은 일반적으로 습진, 염증 등 피부 손상과 출혈을 일으키지만, 심할 경우 폐경색과 농성기관지염, 괴사가 있을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대기업이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인식에서 대기업의 손해는 국민의 몫이 되는 불합리한 현실을 비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처럼 승진과 진실의 딜레마 속에서 결국 마을 사람들과 공익을 위한 신세대 여주인공들의 정의심이 승리하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