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리비아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쫓겨난 나라가 됐다.
유엔총회는 7일(현지시간) 긴급 특별총회를 열어 우크라이나 부차 등에서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정지하는 결의안을 찬성 93표, 반대 24표, 기권 58표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앞으로 스위스 제네바 소재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결의안을 제기하거나 표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발언권도 잃게 됐다.
5개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유엔 산하 기구에서 자격 정지된 나라는 러시아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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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 회의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정지하는 결의안에 대한 표결 결과가 나오고 있다. 유엔은 이날 긴급특별총회에서 찬성 93표, 반대 24표, 기권 58표로 결의안을 가결했다. [뉴욕 AP=연합뉴스] |
이로써 러시아는 지난 2011년 반정부 시위대를 폭력 진압한 리비아에 이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쫓겨난 두 번째 나라라는 국제적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번 결의안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부차에서 드러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을 계기로 미국이 추진했으며, ‘심각하고 조직적인 인권침해를 저지른 나라는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정지할 수 있다’는 유엔 규정을 근거로 표결이 이뤄졌다.
CNN에 따르면, 결의안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저지른 ‘중대하고 조직적인 인권침해 및 남용’(gross and systematic violations and abuses of human rights)과 ‘국제 인도법 위반’(violations of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 보고에 대해 이사회가 ‘심각한 우려’(grave concern)를 갖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이날 표결 결과는 지난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2건의 결의안이 각각 141표와 140표의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었던 것과 비교하면 찬성표가 상당히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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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퇴출 [그래픽=연합뉴스] |
이날 투표에는 서방 국가들과 한국 등이 찬성표를 던진 반면 북한, 중국, 이란, 시리아는 반대표를 행사했고, 인도, 브라질,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등은 기권했다.
반대표와 기권표, 아예 표결에 불참한 나라를 모두 합치면 193개 유엔 회원국의 절반을 넘는다.
자격정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명목상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쿠즈민 차석대사는 결의안 채택 직후 “불법적이고 정략적인 조치”라고 반발하며 곧바로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끼슬리쨔 우크라이나 대사는 “해고된 후에 사표를 낼 수는 없다”며 러시아의 행동을 비판했다.
표결에 앞서 린다 토마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러시아는 인권 존중을 촉진하는 것이 목적인 단체에서 권위있는 지위를 가져서는 안 된다. 그건 위선의 극치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며 “러시아의 인권 이사회 참여는 이사회의 신뢰를 손상시키고 유엔 전체의 권위를 약화시킨다. 그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지적하며 결의안 지지를 요청했다.
세르게이 끼슬리쨔 주유엔 우크라이나대사는 “지금 세계는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 우리는 우리의 여객선이 치명적인 빙산을 향해 위험한 안개를 뚫고 가고 있다는 것을 목격한다. 인권위원회 대신 타이타닉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야 하는 것 같다”고 비판하며 “우리는 오늘 이 위원회를 침몰로부터 구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서의 행동은 ‘전쟁 범죄와 반인륜적 범죄’에 해당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러시아의 행동은 도리를 벗어났다(beyond the pale). 러시아는 인권침해를 저지르는 나라일뿐 아니라 국제 평화와 안보의 토대를 흔드는 나라”라며 결의안에 찬성할 것을 호소했다.
끼쓸리쨔 대사는 또 결의안 찬성은 “선택이 아닌 의무”(not an opotion, it is a duty)라며 “반대표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 그리고 스크린 위의 빨간 점(a red dot)을 의미한다. 죄없는 사람의 피를 잃은 것처럼 붉은”(Red as the blood of the innocent lives lost)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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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겐나디 쿠즈민(오른쪽) 주유엔 러시아 차석대사가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긴급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 결의안에 대한 표결 결과가 나온 뒤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다. 쿠즈민 차석대사는 자격정지에도 러시아가 명목상으론 이사국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지만 "불법적이고 정략적인 조치"라고 반발하며 이날 곧바로 탈퇴를 선언했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
이에 맞서 겐나디 쿠즈민 주유엔 러시아 차석대사는 “위험한 선례”(a dangerous precedent)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회람한 문서에서 미국을 비롯한 반대세력이 세계에 대한 통제권을 보존하고 국제관계에서 ‘인권 신식민주의 정치’를 지속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선보이는 연출 장소, 즉 극단적 연극 공연을 할 시간이나 장소가 아니다”라며 “조작된 사건에 근거한 우리에 대한 거짓 혐의를 부인한다"며 부결을 촉구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47개국으로 구성된 유엔 인권위원회는 2006년 일부 회원국의 열악한 인권 기록으로 인해 신뢰를 잃은 위원회를 대체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러나 새로운 위원회는 곧 비슷한 비판에 직면했다. 인권 남용국이 자신과 그들의 동맹국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연합뉴스 외신종합>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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