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움' vs '유동성 확보', 롯데케미칼 "협력은 지속"
[메가경제=이동훈 기자] 롯데케미칼이 고부가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의 핵심 소재 독점 기술을 보유한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 ‘레조낙’ 지분을 전량 매각하며 업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최근 롯데케미칼이 겪고 있는 심각한 재무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마저 팔아야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31일 업계와 메가경제 취재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지난 28일 보유하고 있던 일본 소재기업 레조낙 지분 4.9%를 2750억원에 매각했다.
레조낙은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으로, 특히 인공지능(AI) 메모리로 불리는 HBM의 핵심 소재인 NCF(Non-Conductive Film)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또한, 고성능 반도체에 필수적인 TIM(Thermal Interface Material) 분야에서도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반도체 패키징은 반도체 칩의 전원 공급, 신호 연결, 열 방출, 보호 등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반도체 제품의 성능과 안정성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
일본 정부는 2022년 반도체 연합체 ‘라피더스’를 설립하는 등 시스템 반도체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으며, 첨단 패키징 시장 선점을 위해 레조낙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에 많은 반도체 장비기업들이 레조낙과의 협업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성장동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롯데케미칼도 2020년 두차례에 걸쳐 레조낙의 전신인 쇼와덴코 지분 4.9%를 약 2000억원에 확보했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등에 특화한 특수화학회사인 쇼와덴코와 사업 교류를 통해 기술력과 고객망을 확보하려는 투자였다.
그러나 롯데케미칼은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석유화학 업황 악화로 재무 부담이 커지면서 핵심 사업 경쟁력 강화와 재무 안정성 확보를 위해 레조낙 지분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악화된 석유화학시장 환경 속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진행하며 비효율 사업 및 자산 매각을 중심으로 재무구조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6일 롯데케미칼 인도네시아 지분 49% 중 25%에 대해 주가수익스왑(Price Return Swap, 이하 PRS) 계약을 맺어 6천 5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법인 지분 40% 활용해 확보한 6천 600억원을 더해 총 1조 3천억원의 유동성을 마련했다. 지난달에는 파키스탄 법인을 979억원에 매각했다. 레조낙 지분 매각도 이 일환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AI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레조낙의 기업 가치는 더욱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롯데케미칼의 이번 결정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롯데케미칼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스스로 놓아버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롯데케미칼 측은 추가 유동성을 확보한 측면이란 입장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메가경제와 통화에서 “이번 매각과 그간 확보한 배당금을 합쳐 약 800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며 “지분 매각 후에도 레조낙과의 사업 협력은 지속적으로 이어간다”고 전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도 “최근 국내 비효율 기초화학 라인을 셧다운하는 등 고부가 사업구조로의 전환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며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전 사업 분야에서 리스트럭처링을 추진중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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