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폭력 증언 넘치는데 가해자들은 거듭 부인...협회, 가해혐의자 영구제명 철퇴

스포츠 / 이승선 / 2020-07-07 00:56:25

[메가경제= 이승선 기자]국가대표와 청소년 대표로 뛴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의 고(故) 최숙현 선수가 전 소속팀에서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 선수와 경주시청에서 함께 뛰었던 동료들이 용기를 내 가해자들의 충격적인 폭행 내용을 폭로했다.


하지만 국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가해자들은 관련 혐의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나서면서 또다른 공분을 사고 있다.


최 선수에게 폭행·폭언한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감독과 선수 2명 등 3명은 6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상임위원회의 트라이애슬론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 분야 인권 침해 관련 긴급 현안 질의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과 선수들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과 선수들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최 선수는 경주시청 소속일 때 감독과 팀닥터 등으로부터의 폭언과 폭력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가 2일 입수한 녹취록에는 소속팀 관계자가 고인에게 심한 욕설은 물론 폭행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충격적인 음성들이 담겼다.


하지만 이날 상임위에 나온 서 김규봉 감독은 감독으로서 관리·감독이 소홀했던 부분에만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한다고 말했으나,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 의혹에 대해서는 거듭 부인했다.


남자 선수는 미래통합당 이용 의원으로부터 "(고 최숙현 선수에게) 사죄할 마음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폭행·폭언 의혹을 부인하면서 "사죄할 것도 그런 것도 없는 것 같다. 죽은 것은 안타까운 건데"라고 답하기도 했다.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 유망주였다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故 최숙현 선수에게 폭행·폭언한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감독과 선수 2명 등 3인방이 국회에서 관련 혐의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그래픽= 연합뉴스]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 유망주였다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故 최숙현 선수에게 폭행·폭언한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감독과 선수 2명 등 3인방이 국회에서 관련 혐의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그래픽= 연합뉴스]


상임위에 앞서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최 선수 동료들의 추가 피해 증언에서도 폭행·폭언의 당사자로 지목된 여자 선수 A씨 역시 "폭행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용 의원이 함께 출석한 남자 선수 B씨를 포함해 경주시청 감독, 선수 3명을 향해 "고인에게 사죄할 마음이 없느냐"고 다시 묻자 김 감독과 A 선수는 이구동성으로 "마음이 아프지만,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고 최숙현 선수가 무차별로 맞을 때 대체 뭘 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과 임오경 의원의 질의에도 김 감독은 "폭행한 적이 없고, 선수가 맞는 소리를 듣고 팀 닥터를 말렸다"며 이미 공개된 녹취록과 선수들의 추가 피해 증언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김규봉 감독은 오후에 이어진 보충·추가 질의 시간에도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 의혹을 일관되게 부인했다.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안영주 스포츠공정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안영주 스포츠공정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이날 고 최숙현 선수가 가해자로 지목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감독과 선배 선수 2명에 관한 징계를 심의했다.


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위원들은 이날 오후 4시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모였다. 심의 결과 위원회는 최숙현 선수에게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 김규봉 경주시청 감독과 여자 선배를 영구제명하기로 했고, 남자 선배는 10년 자격정지 징계를 결정했다.


대구지검은 최 선수 사망 사건과 관련해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검찰은 사건을 맡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양선순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아동학대 전담 검사 4명과 수사과 전문 수사관 5명 등 모두 14명으로 수사팀을 확대했다.


또 특별수사팀에 피해자지원팀을 별도로 만들어 유족 심리치료와 범죄피해 구조금, 생계비 등을 지원하고 법률 지원도 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를 해 모든 의혹을 밝힐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앞서 이날 오전에는 최숙현 선수와 경주시청에서 함께 뛰었던 현역 선수 2명이 고인이 당했던 폭행 이외에 자신들이 겪은 폭행도 추가로 폭로했다. 둘은 최 선수가 남긴 녹취 파일에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았던 주장 선수의 폭행, 폭언 사례도 증언했다.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 선수들과 이용 의원 등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피해실태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 선수들과 이용 의원 등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피해실태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을 찾은 두 선수는 "가혹행위는 감독과 팀닥터만 한 게 아니다. 주장 선수는 선수들을 항상 이간질하고, 폭행과 폭언했다"며 "같은 숙소 공간을 쓰다 보니, 24시간 주장의 폭력과 폭언에 노출됐다. 제삼자에게 말하는 것도 감시받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감독의 폭행과 팀닥터의 성추행 문제도 제기했다.


두 선수는 2016년 콜라를 한 잔 먹어서 체중이 불었다는 이유로 20만원 정도의 빵을 먹게 한 행위, 견과류를 먹었다는 이유로 폭행한 행위, 2019년 3월 복숭아를 먹었다고 감독과 팀 닥터가 술 마시는 자리에 불려가서 맞은 장면 등을 증언했다.


또한 "팀닥터라고 부른 치료사가 자신을 대학교수라고 속이고, 치료를 이유로 가슴과 허벅지를 만지는 등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며 "팀닥터는 '최숙현을 극한으로 끌고 가서 자살하게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추가 혐의를 제기했다.


두 선수는 "경주시청에서 뛰는 동안 한 달에 열흘 이상 폭행당했다"고 '악몽 같았던 시간'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으로 추가 피해자의 기자회견을 도운 미래통합당 이용 의원은 "고 최숙현 선수 사건으로 신체적, 정신적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음에도 동료 선수들이 당시 상황을 직접 증언하고자 큰 용기를 냈다"며 "선수들을 반드시 지켜드릴 것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체육계의 고질적인 폭력이 또다시 불거졌다. 오랜 기간 상습적으로 폭력에 시달리던 국가대표 출신 23세 선수의 억울한 죽음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폭력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문화연대, 체육시민연대 등 40여개 스포츠·시민단체가 6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가혹행위 속에 세상을 떠난 고(故) 최숙현 선수에게 애도를 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화연대, 체육시민연대 등 40여개 스포츠·시민단체가 6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가혹행위 속에 세상을 떠난 고(故) 최숙현 선수에게 애도를 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증언한 2명 이외에도, 경북 경주시청 전·현직 선수의 추가 피해 진술이 잇따르고 있다.


경북지방경찰청은 지난 3일부터 광역수사대 2개 팀을 전담수사팀으로 편성해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전·현직 선수를 대상으로 위법 행위를 수사하고 있다.


김규봉 경주시청 감독이 근무한 2013년부터 최근까지 활동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전·현직 선수는 27명이다. 이들 가운데 현재까지 약 15명이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들은 김 감독이나 운동처방사, 선배 선수로부터 폭행당했다고 진술했다. 다만 일부 선수는 피해가 없었다고 말했고 일부는 면담을 거부했다.


지옥같은 폭력 증언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가해자는 부인하고 있다. 최 선수의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폭력의 전말이 낱낱이 밝혀지고 가해자들이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할 수 있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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