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올해 노벨화학상은 리튬이온 배터리 발전에 기여한 3명에게 공동으로 돌아갔다. 일본은 화학상에서만 8명째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소재부품 강국의 원천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9일(현지시간)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존 구디너프(John Goodenough) 미국 텍사스대 교수, 스탠리 휘팅엄(Stanley Whittingham) 빙엄턴 뉴욕주립대 교수, 요시노 아키라(吉野彰) 일본 메이조대 교수(아사히카세이 명예 펠로 겸직) 등 3명을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왕립과학원은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이 IT혁신과 모바일 시대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에도 공헌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2019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자 3명. [출처= 노벨상위원회 홈페이지]](https://megaeconomy.co.kr/news/data/20191010/p179565997450966_182.png)
왕립과학원은 "가볍고 재충전 가능하며 강력한 리튬이온 배터리는 휴대전화로부터 노트북, 전기차까지 모든 제품에 쓰인다"면서 "1991년 출시된 이래 우리의 일상을 혁신했다"고 평가했다.
또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은 태양력과 풍력 같은 에너지를 다량으로 저장할 수 있어서 화석연료 없는 세상이 가능하게 한다"고 왕립과학원은 설명했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소형 경량으로 충전을 반복 사용할 수 있는 2차 전지로, 전기의 축적이 혁신적으로 개선돼 PC나 스마트폰 등 IT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전지다. 국제우주정거장과 일본의 소행성 탐사기 하야부사2 등에도 탐재됐다.
구디너프는 97세에 영예를 안게 돼 역대 최고령 수상 기록을 1년만에 갈아치웠다.
이전까지 최고령 수상자는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레이저 물리학자인 아서 애슈킨(당시 96세·미국)이었으나 구디너프가 한 달 반 가량 생일이 빨라 역대 최고령 수상자로 기록됐다.
![[출처= 노벨상위원회 홈페이지]](https://megaeconomy.co.kr/news/data/20191010/p179565997450966_220.jpg)
1922년생인 구디너프 교수는 현재도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의 기계공학·재료공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벨위원회는 그가 리튬 배터리의 용량을 2배로 늘림으로써 더 강력하고 유용한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구디너프는 기자회견장과 연결된 전화 통화에서, 다른 두 수상자도 같은 공을 세웠다며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출처= 노벨상위원회 홈페이지]](https://megaeconomy.co.kr/news/data/20191010/p179565997450966_474.jpg)
휘팅엄은 석유파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 개발에 몰두, '이황화 티타늄'(TiS2)을 이용해 에너지를 고도로 담을 수 있는 소재를 개발했는데, 이것을 당시 리튬이온 배터리의 양극재로 썼다.
휘팅엄이 개발한 소재를 양극재로, 금속 리튬을 음극재으로 결합하면 2V(볼트) 전지가 가능해졌다.
구디너프는 황화 금속(이황화 티타늄)보다 산화 금속을 사용하면 더 높은 전압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산화코발트(cobalt oxide)를 양극재로 이용해 2배나 높은 전압을 발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음극재로 사용된 금속 리튬은 강력한 반응성으로 폭발 위험이 커 상용화가 쉽지 않았다.
![[출처= 노벨상위원회 홈페이지]](https://megaeconomy.co.kr/news/data/20191010/p179565997450966_390.jpg)
화학기업 아사히카세이(旭化成) 명예 펠로인 요시노는 1985년 구디너프의 양극재를 기초로 하여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상용화했다. 그는 배터리의 음극재로 반응성이 강한 금속 리튬 대신 석유 코크스(petroleum coke)를 사용해 가볍고 여러 번 충전할 수 있는 배터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휘팅엄이 리튬이온 배터리의 개념을 정립하고, 구디너프가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요시노는 상용화에 기여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요시노의 노벨 화학상 수상으로 일본은 2년 연속 일본 국적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지난해에는 혼조 다스쿠 교토대 특별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일본 국적자의 노벨상 수상은 이번이 25명째다. 요시노는 화학상을 받은 8번째 일본인으로 기록됐다. 그동안 일본은 물리학상 9명, 생리의학상 5명,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을 배출됐다. 일본 출신이지만 다른 나라 국적을 보유한 수상자 3명을 포함하면 일본 출신 노벨상 수상자는 28명으로 더 늘어난다.
일본은 2014년(물리학상), 2015년(생리의학상), 2016년(생리의학상)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17년에는 일본에서 태어난 영국인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요시노는 이날 화학기업 아사히카세이 도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설마, 설마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첫소감을 꺼낸 뒤 "흥분하고 있다. 훌륭한 일이며 놀랐다. 아내는 힘이 빠져 주저앉을 정도로 놀랐다"며 "다양한 분야에서 젊은이들이 연구하고 있다. 커다란 격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벨화학상은 저변이 넓어 장치(디바이스) 쪽은 좀처럼 노벨상 수상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다. 설마했습니다"고 덧붙였다. 요시노는 "올해 노벨상이 리튬이온 전지와 환경 문제를 수상의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 기쁘다"고 강조했다.
교토대 대학원 졸업 후인 1972년 아사히카세이에 입사한 그는 아사히카세이에서 배터리 기술개발 담당부장, 이온 2차전지 사업 추진실장 등을 거친 샐러리맨 출신으로 대학이 아닌 기업에서 연구에 매진했다. 박사 학위(오사카 대학)는 2005년이 돼서야 취득했다. 이 회사에서 계속 연구에 몰두한 뒤 2017년부터 메이조(名城)대 교수직도 겸하고 있다.
그는 리튬이온 전지에 대해 "1981년 개발에 관한 기초 연구를 시작했다. 실제로 개발될 때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며, "개발한 리튬이온 전지는 3년간 전혀 팔리지 않았다"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나 자신은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벽에 부닥쳐도 어떻게든 된다는 유연함'이 신조라는 요시노는 어린이들에게는 "어릴 적에는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아 장래를 결정하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며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으로부터 '촛불의 과학'이라는 책을 받아 읽은 뒤 화학이 재미있어졌다"고 말했다.
노벨상 5개 부문 중 생리의학, 물리, 화학 등 과학 3개 분야는 최근 수십 년에 걸친 연구 동향과 발전을 확인할 수 있는 잣대다. 이중 화학상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게 노벨상이기 때문이다.
노벨화학상은 1901년 첫 수상자 이래 그동안 111차례 수상자를 발표했고, 공동 수상자들이 여러 차례 나오면서 수상자 수는 184명이다.
수상자는 총상금 900만크로나(약 10억9천만원)와 함께 노벨상 메달 및 증서를 받는다. 올해 상금은 수상자 3명이 나눠서 받는다.
시상식은 노벨의 기일인 오는 12월 10일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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