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View] 제로페이 '선한 취지' 살리려면 근본적 유인동기 모색해야

칼럼 / 류수근 기자 / 2019-05-04 02:14:35

취지가 좋은 정책이라고 모두 환영받는 건 아니다. 소상공인을 돕겠다는 '선한' 취지로 도입된 제로페이에도 모두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그 과정이 안정궤도 진입을 위한 성장통으로 그칠지 아닐지는 확신하기 이르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는 지난 2일 모바일 직불결제 카드 사용가능 가맹점을 전국 4만 3천여 편의점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이날부터 5대 편의점 뿐만 아니라 향후 74개 프랜차이즈로 순차적으로 서비스를 오픈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또한 어린이날인 5일부터는 대보유통에 위탁운영 중인 25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제로페이 결제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별도 보도자료도 냈다.


중기부는 그간 제로페이 사용에 가장 큰 불만으로 제기돼왔던 결제방법도 개선했다. 휴대폰으로 QR코드나 바코드만 보여주면 결제가 이뤄지는 ‘소비자 QR방식’을 일제히 도입했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QR카드를 사용하는 방법이 너무 번거롭고 느리다는 비판을 받았다.



제로페이는 가맹점과 소비자에 대한 가장 큰 혜택으로 각각 결제수수료와 연말 소득공제를 내세우고 있다. 이같은 내용을 강조하는 홍보 문구를 서울 지하철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사진= 스포츠Q DB]


편의점과 프랜차이즈로 가맹점이 확대됨에 따라 제로페이 참여 결제사와 공공기관의 소비자 혜택도 늘어난다. 네이버페이의 경우 제로페이로 5천원 이상 결제하면 1천원을 할인해주고, 우정사업본부는 신규가입자에게 10%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식이다.


제로페이는 지난해 6.13 지방선거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표공약 중 하나로 처음 제안됐다. 그 이후 지난해 연말 제로페이 시범사업이 실시됐고 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제로페이는 핀테크 기술을 활용한 계좌이체 기반 지급결제 플랫폼이다. 소비자가 스마트폰에 설치되어 있는 결제 앱을 통해 가맹점(판매점)의 QR코드를 인식하면 소비자의 계좌에서 가맹점의 계좌로 결제대금이 이체되는 방식이다.


계좌간 직접거래 방식이므로 최대 2.5%까지 부과되는 카드수수료를 제로 수준으로 낮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연간 매출액 8억원 이하의 소상공인에게는 0%이고, 8~12억원과 12억원 초과의 경우도 각각 0.3%와 0.5%로 저렴하다.


하지만 시범사업 실시 단계부터 제로페이 신청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 이후 중기부와 서울시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홍보 전략을 폈지만 이용자의 증가 곡선은 여전히 완만했다. 소비자나 가맹점 양측 모두로부터 ‘선한’ 취지만큼 달가운 반응을 얻지 못했다.


중기부가 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제로페이는 지난해 12월 20일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4개월 만에 가맹점 수가 20만 개(4월 28일 기준 20만 7307개)를 넘어섰고, 결제 실적도 매월 2배 이상씩 증가했다. 4월 28일 기준 일평균 결제실적은 6600건, 8418만원이었다.



중소기업벤처부는 지난 2일 제로페이의 새로운 결제방식을 발표했다. [출처= 중소기업벤처부]
중소기업벤처부는 지난 2일 제로페이의 새로운 결제방식을 발표했다. [출처= 중소기업벤처부]


하지만 신뢰 단계라고 보기는 여러모로 부족하다. 중기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소상공인의 사업체수는 약 314만개였다. 중기부와 서울시가 성과를 크게 내세우고 있지만 가맹점 수 20만개정도로는 갈 길이 멀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결제서비스 확대, QR코드 결재방법 개선, 부가혜택 추가 등은 제로페이의 확산에 어느정도는 기여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중기부와 서울시의 강한 의욕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나온 조치들로 제로페이의 활성화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월 ‘모바일 직불카드의 신속한 보편화를 위한 정책제언’에서 제기한 제로페이의 한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 위원장은 당시 ▲소비자들이 신용카드가 아닌 제로페이를 사용할 유인동기가 부족하다는 점, ▲제로페이의 직접적 수혜자인 가맹점에게도 유인동기가 많지 않은 점, ▲금융기관에게 제로페이는 손해라는 점 등 세 가지를 제로페이의 한계로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제로페이가 모바일 직불카드 도입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봤지만 그 한계도 직시했다.


무엇보다 소비자 입장에서 신용카드에 비해 누리는 혜택이 너무 적다는 것을 제로페이의 첫 번째 한계로 지적했다. 신용카드 대신 제로페이를 사용한다는 것은 신용카드의 최대 장점인 신용공여기능(후불결제 및 외상판매 시스템)과 각종 부가서비스를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다는 매우 설득력 있는 논리였다.


정부는 도입 당시부터 제로페이를 쓰면 연말정산에 큰 혜택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신용카드(최대15%), 체크카드(최대30%)보다 많은 최대 40%의 소득공제율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로페이 결제사와 공공기관의 소비자 혜택을 더 늘렸다고 발표했다.


허나 이정도로 신용카드가 주는 혜택과 견주기는 어렵다. 게다가 QR코드 결제방식을 간편하게 바꿨다고 하지만 신용카드보다 사용하기 편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신용카드는 신용공여에다 갖가지 부가혜택에 소득공제까지 받는다. 1999년 자영업자들의 세원 파악을 위해 도입된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일몰 기한이 도래할 때마다 반발에 부딪혀 일몰 연장 결정이 되풀이되며 소득공제도 이어지고 있다.



제로페이 가맹점 앱과 가맹점 홈페이지. [출처= 제로페이 홈페이지]
제로페이 가맹점 앱과 가맹점 홈페이지. [출처= 제로페이 홈페이지]


김 위원장은 제로페이가 가맹점에게도 유인동기가 별로 크지 않다고 봤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많이 인하된 상황에서 굳이 제로페이를 사용해야할 동기가 많겠느냐는 의문이다. 연매출 3억원 이하인 중소가맹점의 경우 카드수수료가 0.8%로 이미 0%대로 낮아졌고, 지난 11월 신용카드 수수료 개편으로 연매출 30억원 이하의 사업자까지 1%대의 수수료를 적용받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지적한 세 번째 한계는 ‘제로페이’의 지속 가능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제로페이는 사실상 ‘제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제로페이는 계좌이체를 통한 대금지급 방식이기 때문에 최소한 계좌이체 수수료가 발생한다. 하지만 소상공인을 돕는다는 취지 아래 연매출 8억원 이하의 가맹점에게는 수수료를 전혀 받지 않는다. 이는 “금융기관에게 손해를 감수하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중국의 알리페이나 위챗페이의 경우 0.5~0.6%의 수수료를 받고 있는 배경이다.


제로페이가 성공하려면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협조는 필수다. 이는 제로페이의 성공 여부에 두고두고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신용카드사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는 신용카드 사용을 줄이고 제로페이를 언제까지 묵묵히 도와줄 수 있을까?


김기식 정책위원장은 “무엇보다 정부가 직접 공공의 지급결제 수단을 제공하게 되면, 민간 사업자들이 참여하더라도 혁신의 유인동기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그 해법으로 정부가 제도적 환경을 구축·감독하고 유인책을 제공하되, 궁극적으로는 ‘민간시장 중심’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책 당국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소비자에게 신용카드보다 더 매력적인 이용동기를 제공할 수 있는가?” 여러 한계를 차치하고 제로페이의 성패는 이 질문의 답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필자 편집인 류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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