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재벌그룹’이라 불리는 대기업들의 창립기념행사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워낙 조용히 넘어가다 보니 외부인들은 창립기념일이 언제인지 알기조차 어려운 시절이 됐다. 일간신문에 전면광고를 내는 것은 기본이고, 대대적으로 기념행사를 열고, 회장님들이 ‘훈시’를 하고, 그것이 다시 뉴스가 되던 일은 이제 옛일이 되어버렸다.
최근의 현상은 ‘재벌’에 대한 거부감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벌 기업들의 과도한 내부거래와 회장님들의 제왕적 군림 및 지배 등등 부정적 이미지가 그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https://megaeconomy.co.kr/news/data/20190502/p179565891553064_321.jpg)
실제로 최근 대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창립기념일을 조용히 넘기고 있다. 22일 창립 81주년을 맞은 삼성도 별도의 행사 없이 기념일을 보냈다. 이를 두고 계열사들의 중심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해체한 것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전실 해체 이후 각 계열사가 개별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다 보니 이전과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얘기다.
삼성의 미전실 해체는 박근혜 정권 말기에 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여파로 이뤄졌다. 삼성이 최순실 일당에게 금품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한 일로 국회 청문회장에 불려나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 자리에서 미전실 해체를 약속했다. 최순실과의 유착에 결정적 작용을 한 것이 미전실이라는 세간의 눈총이 그 배경이었다.
이달 말부터 줄줄이 창립기념일을 맞는 SK와 롯데, 현대중공업 등 다른 대기업들도 비슷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이들 기업 어디도 그룹 차원의 창립기념 행사를 따로 치르지 않는다. 구광모 회장 체제로 거듭난 LG도 예외가 아니다.
이처럼 분위기가 바뀌게 된 데는 현 정부의 코드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재벌 개혁을 넘어 그들에 대해 불필요할 만큼 적대감을 드러내곤 하는 일부 정부 인사들이 대기업들의 행동을 위축시킨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다소 떠들썩하게 의기투합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기업들의 활력도 떨어진 듯 여겨진다. 대대적인 창립행사가 덤으로 가져다주던 지역경제 활성화의 반짝 효과가 사라진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러다 중앙 사령탑이 사라진 여파로 그룹 차원의 큰 그림이 실종되고, 그 결과 기업의 투자마저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부정과 부패를 엄히 다루되 공연히 기업들의 기를 꺾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각살우의 위험을 진지하게 되새겨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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