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곧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제출 시기는 이번 달 하순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정부는 지난 달부터 추경 카드를 언급한 뒤 지금까지 군불때기 작업을 벌여왔다. 그러더니 지난 10일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 규모를 흘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날 홍 부총리는 기재부 출입 기자들에게 “추경 규모가 7조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를 향해 미리 신호를 보낸 셈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추경에 완강히 반대하는 분위기를 의식, 간보기를 했다고 볼 수도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https://megaeconomy.co.kr/news/data/20190412/p179565883410988_798.png)
정부의 추경 편성을 무작정 탓할 수는 없다. 때론 추경이 국가경제에 특효약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추경은 비상한 수단이다. 비상한 만큼 재정 건전성 훼손이라는 부작용도 커 남용해서는 안 되는 비상약이다. 정부 스스로 본예산의 오류를 인정하는 행위인 만큼 정부의 능력에 대한 신뢰 훼손도 감수해야 한다.
경제 상황으로 볼 때 추경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고 판단된다. 곳곳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음이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4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고용 상황은 환란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경기지표들도 고점이 어디였는지를 공식 논의해야 할 만큼 역대 최장기인 9개월 째 동반 하락을 보이고 있다.
이대로 가면 우리 경제가 올해 2% 성장을 겨우 턱걸이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우리 경제가 고작 2.1%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 2.6~2.7%를 목표치로 설정한 우리 정부와는 크게 다른 판단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청와대와 정부의 인식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경제 흐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유지하고 있다. 정책 오류를 인정하기 싫어서라면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국가경제는 견실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경제가 올해 들어 개선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라는 등의 진단을 내놓았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이 정도니 ‘분식 통계’ 자료가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것이란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추경 편성을 위한 발걸음을 떼기도 전부터 스텝이 꼬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제가 견실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추경 카드를 들이미는 것은 애당초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다.
그 속성상 추경은 근거가 명확할 때에 한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상황 인식이 전제되고 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추경 카드가 먹혀든다.
야당의 반응을 되짚어 보면 답은 이미 제시돼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우선 경제정책 운용 과정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그 다음 정책 오류에 대해 시인하고, 방향 전환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서 대국민 설득에 나서는 게 옳은 순서다.
특히나 이번 추경은 1분기가 끝나기 무섭게 추진된다는 점에서 크게 비판받을 여지를 안고 있다. 본예산안의 잉크가 다 마르기도 전에 추경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아서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야당 대표 시절 주장대로라면 정부 스스로가 무능을 드러냈다고 공격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지난 정부에서도 숱하게 추경이 편성됐다지만, 이번처럼 이른 시기에 추경안이 제출된 적은 드물었다. 환란 및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편성된 추경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지난 회계연도 결산보고서가 5월말 국회에 제출된 이후에나 추경안을 내미는 게 상식처럼 여겨져왔다.
한국당은 진작부터 정부의 추경안 제출 움직임을 비판하고 있다. 추경안을 가져오려면 확실한 근거를 첨부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재해 관련 추경만 낸다면 초스피드로 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정책 오류에 대한 반성과 대안 제시 없이 경기 부양 명목으로 들이미는 추경안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리 있는 발언이다. 정부의 곳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적자 국채를 함부로 찍어낼 위험성은 없는지 감시해야 할 야당 원내사령탑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견제마저 없이 정부가 맡긴 돈 꺼내쓰듯 추경을 통해 정부 재정을 마구 집행하려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정부도 야당의 반대를 정치공세로만 몰아붙이면 곤란하다. 야당을 탓하기 이전에 지금의 정책 방향이 옳은지를 되돌아보고, 자가진단을 실시한 다음 그것을 근거로 국민들을 설득할 자세를 갖추는 게 우선돼야 한다. 정부가 순리대로 일을 풀어간다면 한국당 또한 무작정 추경에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표필자 편집인 류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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