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 보수·즉각 보고 '결정타'
산업계 책임 기준 재편 신호탄
[메가경제=박제성 기자] 두산에너빌리티가 과거 원전 품질 논란으로 공공사업 입찰 제한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던 법정 다툼 끝에 제재를 벗어나면서, 원청 책임 범위를 둘러싼 산업계 기준에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대재해 및 품질 이슈를 계기로 원청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판결은 하청업체 과실에 대한 원청의 책임 인정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에 대해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는다.
![]() |
| ▲두산에너빌리티가 생산한 가스터빈 이미지[사진=두산에너빌리티] |
사건의 발단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한빛 5호기 '원자로 헤드 관통관' 용접 과정에서 당초 사용돼야 할 니켈 기반 특수합금 대신 스테인리스 소재가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
원전 핵심 설비의 품질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논란은 빠르게 확산됐고, 발주처인 한수원은 해당 공정에 대해 강도 높은 책임 추궁에 나섰다.
용접 작업 자체는 하청업체가 수행했지만, 한수원은 원청인 두산에너빌리티 역시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2024년 두산에너빌리티에 대해 공공사업 입찰 참가 제한 처분을 내리며 제재 수위를 높였다. 이는 향후 수주 경쟁력에 직격탄이 될 수 있는 조치로 업계에서도 파장이 컸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처분이 과도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의 판단은 회사 측 손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갔다. 지난해 5월 대구지방법원은 한수원의 제재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두산에너빌리티의 청구를 인용했다.
이후 한수원이 항소했지만 같은 해 10월 대구고등법원 역시 이를 기각했고, 추가 상고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원청의 사전·사후 대응’이었다. 재판부는 단순히 하청업체의 부실 시공 사실만으로 원청에 중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따지기보다, 해당 사실을 인지한 후 원청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에 법원은 주목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문제 발생 직후 이를 인지하고 발주처에 즉시 보고했으며, 이후 용접 부위 전수 조사를 진행하는 등 후속 대응에 나섰다.
또한 재판부는 하청업체들이 용접 품질 문제를 은폐하고, 허위 진술을 했다는 점도 중요하게 판단했다.
즉, 원청이 사전에 모든 문제를 인지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었으며, 문제가 드러난 이후 대응 과정에서는 일정 수준의 관리 책임을 다했다고 본 것이다.
특히 두산에너빌리티가 사후 조치 과정에서 3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해 하자 보수를 진행한 점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향후 공공계약 이행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기업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결과적으로 입찰 제한 처분은 과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최근 강화되고 있는 ‘원청 책임 확대’ 흐름 속에서 예외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통상 안전·품질 문제 발생 시 원청 기업에 보다 엄격한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정책과 판례가 형성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례에서는 하청업체의 고의적 은폐와 원청의 적극적인 사후 대응이 결합되면서 책임 범위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판단이 내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원청 책임의 판단 기준이 보다 정교해질 것으로 본다.
단순히 하도급 구조라는 이유만으로 일괄적인 책임을 부과하기보다, 사전 관리 체계와 사후 대응 수준, 그리고 문제 발생 과정에서의 고의성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기준이 재정립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원청 기업이 모든 리스크를 무조건적으로 떠안는 구조에서 벗어나 책임의 범위를 보다 합리적으로 나누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다만 동시에 내부 통제와 품질 관리 체계를 얼마나 철저히 갖추고 있는지가 더욱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