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신용평가 "종합 경쟁력은 한국 우세…정치 환경·생산성 리스크 주목"
[메가경제=주영래 기자] 미국의 조선업 부흥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한국과 일본 조선사 간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은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슬로건 아래 2050년까지 최대 250척의 국적 상선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자체 건조 능력이 부족한 미국이 동맹국 조선소 참여를 허용하면서, 실질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양자 대결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발간한 '한-일 조선 경쟁력 비교' 보고서를 통해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미국 시장 내 실질 경쟁구도는 한국과 일본으로 압축될 것"이라며 "우수한 조선 경쟁력과 대미 진출 등을 바탕으로 한국 조선사가 미국 시장 내 우위를 점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 |
| ▲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인도한 초대형 LNG 운반선.(사진=HD한국조선해양.) |
한국 조선사의 가장 큰 경쟁력은 고난도 선박 설계 능력이다. 특히 LNG선 시장에서 한국은 2024년 기준 65.6%의 점유율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2019년 이후 LNG선 건조 실적이 전무한 상황이다.
이는 화물창 설계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구형 탱크가 갑판 위로 돌출된 '모스형' LNG선을 건조해왔다. 안전성은 우수하지만 용적 효율이 낮아 대형화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한국은 선체 내부 공간을 활용하는 '멤브레인형'을 중심으로 발전시켜 시장 표준을 장악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일본의 LNG선 설계 역량 부족이 친환경 추진선 시장에서도 열위로 이어지고 있다"며 "친환경 추진선의 글로벌 잔고 구성 상 LNG 추진선이 약 68%를 차지하는 만큼, 친환경 추진 기술의 근간은 LNG선 설계 역량"이라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조선업계가 1990년대 설계 표준화로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면서 신규 설계 역량이 퇴보했다"며 "도쿄대의 조선해양공학과가 1998년 환경해양공학으로 개명하는 등 고급 인력 배출 기반까지 약화됐다"고 설명했다.
생산 능력에서도 한국이 압도적이다.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3사의 최대 건조능력은 연간 1,020만CGT(선박 건조량 표준단위)로 일본 주요 3사(184만CGT)의 5.5배에 달한다.
도크 규모도 한국이 평균 최대길이 617m, 최대폭 126m로 일본(506m×73m)을 크게 앞선다. 이에 따라 한국은 20,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까지 건조 가능하지만, 일본은 중소형 선박에 제한된다.
다만 단기 수주 여력에서는 일본이 우위를 보인다. 한국 조선사들은 이미 2028년 납기 물량까지 대부분 확보해 신규 수주 시 2029년 납기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일본은 2027년 이후 납기 여유가 있어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일본 조선사가 중기적인 건조 여력을 확보하고 있어 미국향 수주 영업을 적극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LNG선 건조 기술 및 실적이 열위하기 때문에 중형 벌크선, PCC선, 탱커선 등으로 수주 선종이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요 안정성 측면에서는 일본이 한 수 위다. 일본 조선사의 수주잔고 중 자국 선주 비중은 37.1%로 한국(9.2%)의 4배에 달한다. NYK, MOL, K-Line 등 세계적 해운사와 글로벌 6위 컨테이너 선사 ONE이 든든한 배경이다.
일본 선주들의 신조 투자 규모는 연평균 180억달러로 세계 2위 수준이다. 한국(70억달러)과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종합상사와 금융기관이 연계된 SPV(특수목적법인)나 선박 리스사들이 활발하게 신조 투자에 나서는 구조적 차이가 작용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일본 조선사가 우수한 해운 산업을 바탕으로 내수 기반을 확보하고 있어 업황 완충력이 비교적 뛰어나다"며 "조선 업황 하락에 따른 수주 급감기에 고정비 부담을 커버할 수 있는 내수 물량 확보 구조는 사업 안정성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조선사들은 미국 현지 투자로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한화오션은 필리 조선소를 인수하고 50억달러를 투자해 연간 20척 이상 생산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HD현대는 에디슨 초에스트 오프쇼어(ECO)와 공동건조 파트너십을, 삼성중공업은 비거 마린 그룹과 함정 정비·수리(MRO)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반면 일본은 2010년 이후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등 대형사들이 상선 부문에서 철수하면서 조선 역량이 중형사 중심으로 재편됐다. 대규모 현지 투자 여력이 크지 않다는 평가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한국의 적극적인 대미 투자 행보가 향후 미국발 수주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미국의 조선 여건 상 장기적으로는 현지 건조 요구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만 한국 조선사의 미국 진출에는 변수가 적지 않다. 가장 큰 불확실성은 관련 법안의 의회 통과 여부다. 'Ships for America Act' 등 주요 법안은 아직 계류 중이며, 지난해 12월 국방수권법(NDAA)에서는 당초 한일 조선소 우선 협력 조항이 '동맹국 조선소'로 완화되기도 했다.
미일 군사동맹 관계도 변수다. 1960년 체결된 미일안보조약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SM-3 Block IIA 등 방산 공동개발 경험도 풍부하다. 정부 주도 발주에서 정치적 고려가 일본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지 생산 리스크도 만만찮다. 미국의 해양 엔지니어 평균 연봉은 1억4,500만원으로 한국(8,400만원)의 1.7배, 용접공 임금은 9,000만원으로 한국(4,700만원)의 2배에 달한다. 숙련공 부족 문제까지 겹치면서 생산성 관리가 수익성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현지에서의 높은 제조원가 부담을 고려할 때 수주 선가가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면 원가 상승분을 흡수하지 못해 수익성 저하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며 "현지 건조 효율성 확보가 해외 진출의 성공 여부를 좌우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종합 경쟁력 한국 우세, 시장 진입 규모는 유동적"
나이스신용평가는 "한국 조선사가 뛰어난 설계 및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LNG선 등 고부가선의 수주가 가능하며, 이미 2028년 납기 슬롯까지 대부분 채운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 선주를 대상으로 선가 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법안 시행 여부 및 자국 내 이해관계 조정 등으로 국내 조선사의 시장 진입 규모가 변동 가능하다"며 "미-일 우호적 관계 등이 향후 미국 내 사업 기반 및 신용위험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2026~2040년 상선 신조 시장 규모는 약 800억달러로 추정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이 중 한국이 접근 가능한 유효시장은 494억달러 수준으로 분석된다. 중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한일 양자 경쟁 구도에서 이 시장을 나눠 갖게 될 전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한국의 기술력 우위가 명확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일본의 내수 기반과 미일 관계, 한국의 현지 생산성 관리 능력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며 "법안 구체화 과정을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