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트·클라인·세자르·모야 명작 한자리에…34년 국제 교류사 품은 지그재그 아트센터

문화 / 박성태 기자 / 2026-09-12 12:28:43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데이미언 허스트 특별전 및 이브 클라인·아르망 등 신사실주의 거장 200여 점 망라
1992년 동백아트센터부터 시작된 프랑스 현대미술 교류 1차 사료 유럽서 대거 발굴
소비사회와 물질주의 해부하는 입체적 전시… 오는 11월 30일까지 전 국민 관람후기 공모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의 정석… 지역 사립미술관이 제시하는 문화 분권 해법

[메가경제=박성태 기자] 부산 해운대 엘시티에 위치한 지그재그 아트센터(JigZag Art Center)가 영국 현대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특별전을 비롯해 이브 클라인(Yves Klein), 세자르 발다치니(César Baldaccini), 아르망 페르낭데스(Arman Fernandez), 패트릭 모야(Patrick Moya)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명작을 대거 선보이며 지역 사립미술관이 주도하는 문화 권력 분권화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단순한 해외 명작의 일회성 유치를 넘어, 1992년부터 34년간 축적해 온 '니스 화파(École de Nice)'와의 글로벌 교류사를 지역의 독자적인 지식 자산으로 전환하는 거대한 지적 실험이 본격화된 것이다.

 

 

 

▲ 지그재그아트센터에 전시된 작품의 작가들 [사진을 모아 AI로 편집]



허스트와 신사실주의의 미학적 조우… 소비사회를 해부하다

 

지그재그 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특별전은 데이미언 허스트의 40년 예술 세계 중 '소비사회와 죽음'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를 핀셋처럼 집어내어 밀도 높게 관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센터는 현대인이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약을 격자형으로 배치해 의학과 과학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물질주의를 꼬집은 ‘알약(Pills)’ 시리즈와, 인간의 해골 위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헛된 욕망(바니타스)을 대치시킨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 2007년 에디션 프린트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번 전시가 더욱 입체적인 깊이를 지니는 이유는 1958년 이후 프랑스 남부 니스를 중심으로 자생한 신사실주의 경향의 작품 200여 점을 망라한 '1958-2025 지그재그 컬렉션'과의 미학적 융합에 있다.

텍스트 회화의 선구자인 벤 보띠에(Ben Vautier), 조각의 경계를 허문 사샤 소스노(Sacha Sosno) 등 니스 화파 거장들의 작품이 허스트의 문제의식과 호흡을 맞춘다.

이브 클라인과 세자르, 아르망 등으로 대표되는 신사실주의가 폐자동차나 버려진 사물을 집적하고 해체하며 소비사회의 모순을 고발했다면, 그 철학적 뼈대가 21세기 데이미언 허스트로 직결되며 현대미술의 거대한 연대기를 완성하고 있다.

 

 

▲ 지그재그 아트센터에 전시된 패트릭 모야의 전시품 [사진=박성태 기자]


유럽 1차 사료로 입증된 34년 교류사…동백에서 지그재그까지

 


지그재그 아트센터가 구축한 컬렉션의 토대는 막대한 자본으로 명작을 수입해 온 단편적 결과물이 아니다. 그 뿌리는 1992년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문을 연 동백아트센터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특히 1995년 12월부터 1996년까지 5개월간 3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던 ‘에콜 드 니스(École de Nice)’ 부산 전시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확장됐다.

당시의 파격적인 기획은 변방으로 여겨지던 지방 도시의 한 민간 미술 공간이 어떻게 유럽 현대미술의 심장부와 직접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최근 유럽 현지에서 발굴된 객관적인 1차 사료들은 이 공간의 역사적 권위를 완벽하게 뒷받침한다. 패트릭 모야의 프랑스어 전기에는 1995년 도쿄 메구로미술관에서 열린 에콜 드 니스 전시가 1996년 한국으로 옮겨진 핵심 배경으로 '한국인 갤러리스트 이수정(Sue Jong Lee)'의 기여를 명시하고 있다.

나아가 2002년 모야의 대규모 부산 개인전 현장 기록을 비롯해 이탈리아 미술 매체 ‘Exibart’, 스페인 작가 토니 카마라사의 공식 연보에도 동백아트센터의 국제 전시 이력이 뚜렷하게 보존돼 있다.

심지어 1995년 발행된 동백아트센터 명의의 '에콜 드 니스' 실물 도록이 네덜란드의 희귀 서적 시장에서 현재까지 유통되고 있음이 확인되면서, 30여 년에 걸친 이들의 글로벌 교류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공적 역사로 자리매김했다.

 

▲ 지그재그아트센터에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 [사진=박성태 기자]

시민 참여형 ‘관람후기 공모전’…"감상이 역사가 된다"

지그재그 아트센터는 이러한 축적된 지식과 해외 네트워크를 지역 시민들에게 환원하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텍스트 기반 문화 축제를 가동한다.

문화예술감상진흥위원회(공동대표 양재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이경신 부산발전시민재단 이사장) 주최 및 본 센터 주관으로 개최되는 ‘제1회 패트릭 모야 작품 관람후기 공모대전’이 그것이다.

패트릭 모야는 렘브란트의 명화를 재해석한 '모야의 해부학 강의'부터 3D 가상공간인 '모야랜드'까지 전통 회화와 디지털 메타버스를 넘나들며 현대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신사실주의의 주요 거장이다.

이번 공모전은 초·중·고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단순히 눈으로 작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관람객 개인의 삶과 융합된 생생한 감상을 4000자 이내의 에세이 형식으로 제출하는 방식이다.

연령 제한 없이 통합 심사를 거쳐 대상 1명에게 500만 원 상당의 상금 및 상품을 수여하는 등 총상금 2000만 원 규모로 치러진다. 접수 마감은 오는 2026년 11월 30일 오후 6시까지이며, 전문가들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12월 20일에 최종 수상작을 발표하고 12월 중 현장에서 대규모 시상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 공모전 첫 관람객에게 기념으로 모야 작품이 든 소형 액자를 증정했다. 이수정 관장은 한 가족이 바라보는 네 개의 시선에 예술이 주는 공감과 가족의 따뜻한 온기가 오롯이 담겼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진=지그재그아트센터 제공]



글로컬라이제이션의 정석…지역 사립미술관이 제시하는 문화 분권의 해법

 

수도권으로 문화 인프라가 블랙홀처럼 흡수되는 현실 속에서, 지그재그 아트센터의 행보는 지역 사립미술관이 지향해야 할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의 정석을 보여준다.

대도시 중심의 블록버스터 전시에 의존하지 않고, 34년간 끈질기게 파고든 '니스 화파'라는 특정 사조를 지역의 고유한 문화 자산으로 내재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변방의 니스에서 출발한 청년 예술가들이 파리의 고전적 권위를 흔들며 세계적인 사조를 만들어냈듯, 부산이라는 지역 거점 역시 새로운 예술 운동의 발원지가 될 수 있음을 구조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 지그재그 아트센터에 전시된 작품들 [사진=박성태 기자]

 


특히 과거 1990년대가 유럽의 명작을 수동적으로 들여와 시민들에게 '보여주던' 시대였다면, 이번 공모전은 관람객의 주체적인 해석과 사유를 텍스트로 축적하여 완전히 새로운 '지역 지식 자산'을 생산해 내는 거대한 전환점이다.

세계적인 거장들의 철학적 질문 앞에 지역 시민들이 직접 답을 써 내려가는 이 지적 실험은, 향후 축적된 텍스트를 재가공하여 글로벌 미술계로 발신하는 역방향의 문화 수출로 이어질 잠재력을 품고 있다.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창의적 인문학의 훈련장으로 진화하고 있는 지그재그 아트센터의 궤적은, 척박한 지역 문화 생태계가 스스로 자생력을 확보하는 가장 선명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 지그재그 아트센터 [사진=박성태 기자]

 

[ⓒ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오늘의 이슈

포토뉴스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