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 장기금리 상한 '0.25%→0.5%' 사실상 금리 인상…'깜짝' 금융완화 정책 수정 배경과 전망

글로벌경제 / 류수근 기자 / 2022-12-21 09:26:34
물가 상승·엔저에 사실상 금리 인상…구로다 "금리인상은 아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금융 완화 정책을 일부 수정하며 사실상 금리를 인상했다.

일본은행(BOJ)은 20일까지 이틀간 개최한 금융정책 결정회의에서 예상을 깨고 현재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일부 수정하기로 결정했다고 교도통신, NHK.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 일본은행 북문. [AFP=연합뉴스]

일본은행은 그동안 단기금리를 마이너스로 하고 장기금리를 0% 정도로 억제한다는 기조 아래 장기금리는 ‘± 0.25% 정도’의 변동폭을 쫓도록 조절해왔다. 이날 단기금리는 시장의 예상대로 -0.1%로 동결했다. 그러나 장기금리 상한선을 변경해 금리 상승 여지를 넓혔다.

10년물 국채 금리는 0% 정도로 유도하되, 변동 폭을 기존 ‘± 0.25% 정도’에서 ‘± 0.5% 정도’로 넓혀 이날부터 적용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지난해 3월 장기금리 변동 폭을 ±0.2%에서 ±0.25%로 넓힌 이후 1년 9개월 만의 확대 조정이다.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빠르게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도 그동안 일본은행은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금까지 0.25%를 상한으로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해왔는데 이 기조를 일부 바꾼 것이다.

일본은행은 이번 조치가 금리 인상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일본이 장기간 이어진 초저금리 정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전 토대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장기금리 상한선을 0.5% 정도까지 높여 변동폭을 확대함으로써 시장 움직임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일본은행은 이날 또 장기 국채 매입 규모는 내년 3월까지 1개월에 7조3천억 엔(약 71조원)에서 9조 엔(약 88조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EPA=연합뉴스]

일본 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일본은행이 목표로 내세우는 2%를 7개월 연속 웃돌고 있는 상황 등을 감안해 정책 수정을 통한 인플레이션 억제를 우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행이 금리 상승을 허용하면서 이날 외환시장에서는 사실상 금융긴축에 해당한다는 해석에 엔화 강세가 가속화했고 주식시장에서는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장기 금리가 그동안 변동 폭 상한선(0.25%)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어 이 조치는 사실상 금리 인상에 해당한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보도했다.

하지만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금융정책결정회의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이 사실상 금리인상이라는 지적에 대해 “장단기 금리 조작이 더 안정적으로 기능하도록 한 것이지 금리 인상이나 금융 긴축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다만 “경기에는 플러스가 되지 않겠나”라고 예상했다.

그는 또 일본은행이 약 10년간 지속해온 금융완화 정책과 관련해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부작용을 웃돌고 있다“며 ”금융정책의 틀이나 출구 전략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일본은행은 구로다 총재가 취임한 2013년 이래 ‘이지겐(異次元‧이차원‧다른 차원)’이라고 칭해지는 ‘상식을 깨는’ 대규모의 금융완화 정책을 도입했다. 이어 2016년 이후로는 정책의 목표를 ‘양’에서 ‘금리’로 전환해 단기 금리를 마이너스 0·1%, 장기 금리를 0% 정도로 유도해 왔다.

미국과 EU 등 통화 긴축에 나선 주요국 중앙은행과 달리 일본은행이 금융완화·초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면서 일본 엔화는 약세를 보여왔다.

미일 간 금리 차 확대로 엔·달러 환율은 지난 10월 21일 달러당 151엔대 후반까지 오르는 역사적인 엔저를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이 150엔선을 넘은 것은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렇게 되자 일본은행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다.

엔저로 에너지와 원자재 등 수입 물가에 부담이 커지면서 일본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변동이 큰 신선식품 제외)는 전년 동월 대비 3.6% 올랐다. 이같은 증가율은 제2차 석유 위기에 수반한 인플레이션이 지속됐던 1982년 2월 이래 40년 8개월만에 최고치였다.

이는 일본은행이 목표로 삼은 물가 상승률 2%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여기에다 11월 이후에도 높은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교도통신은 ”대규모 금융완화는 경기를 살리는 것이 목표였으나, 엔저와 역사적 고물가를 유발하는 등 폐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주요국 중앙은행이 잇따라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일본 국채 금리도 상승 압력이 커진 상황이었다. 일본은행의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에 엔화 가치가 급등하고 달러화 가치는 급락했다. 달러지수는 올해 6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그동안 달러 강세는 해외 수익 비중이 큰 다국적 기업들에 부담이 돼 왔다.

일본의 장기 금리는 이날 오후 한때 0.460%까지 상승했으며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37엔대에서 8월 이후 최저인 132엔대로 급격히 떨어졌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닛케이225)는 장중 약 3% 급락했다가 만회해 전날보다 2.46% 하락한 2만6568.03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지난 10월 13일 이후 약 2개월 만의 최저 수준이었다.

닛케이는 ”일본은행이 사실상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외국과 금리차가 줄어들고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2013년부터 시작한 대규모 완화의 사실상 축소로 주택담보대출금리와 기업대출금리 인상으로 경기에는 역풍이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구로다 총재의 임기는 내년 4월 8일에 끝난다. 이에 따라 그가 재임중 약 10년간 추진해온 대규모 금융완화와 초저금리 정책도 변화를 맞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두 번째로 집권한 직후인 2013년 1월 정부와 일본은행이 발표한 공동 성명을 처음으로 개정할 방침을 굳혔다.

일본 언론은 이번 금융정책의 일부 수정이 내년 4월 이후 들어설 신임 일본은행 총재의 금융정책의 선택지를 늘려주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고 예상했다.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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