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잘 안 쓰지만 초고층빌딩을 가리키는 마천루(摩天樓)란 단어는 영어단어 'skyscraper'에서 비롯됐다. 하늘을 긁을 만큼 높이 치솟은 건물이란 의미다.
마천루가 즐비한 풍경은 현대 대도시의 상징과 같다. 성공과 부를 과시하는 당당한 모습이며, 특정 지역의 랜드마크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이유 때문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현대 건축공법이 나오기 이전부터 인류는 높은 건축물을 짓고 싶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지금은 소실됐지만 신라 선덕여왕 때 지어진 황룡사 9층 목탑은 81m, 아파트 20층 높이였다고 추정된다. 645년에 지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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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빌딩 전경 (사진 = 메가경제신문 DB) |
한반도에서 최고 높이 건축물 기록은 이로부터 1324년이 지나서야 갱신된다.
1969년 서울 중구에 지어진 한진빌딩은 82.3m에 23층 높이다. 천삼백년 만에 가장 높은 건물 기록을 세웠지만 바로 이듬해 타이틀을 넘겨주게 된다.
바로 정부서울청사가 1970년 올라섰기 때문. 19층, 84m 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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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빌딩 전경 (사진 = SK디앤디 제공) |
1971년 서울 종로구엔 '대한민국 최초 마천루'란 수식어가 종종 붙는 삼일빌딩이 세워진다.
삼일빌딩은 114m, 31층 높이로 1978년까지 최고층 빌딩 타이틀을 갖는다.
삼일빌딩이 국내 최초 마천루라고 불리는 까닭은 건축가 김중업에 의해 처음 '커튼월' 설계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유리를 사용한 빌딩 외벽의 마감을 뜻하며, 철골구조, 엘리베이터와 함께 마천루의 상징이다.
당시 삼미그룹이 사옥으로 쓰기 위해 발주한 건물이며, 2020년엔 리모델링 후 SK네트웍스, SK렌터카, SK매직 등이 새 사옥으로 쓰도 있다.
당시 삼일빌딩은 세간의 화제가 됐음은 당연하다. 1970년 6월 5일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대지 568평 값을 뺀 순 건축비만 13억원"이 들었다. "일본 동경의 가스미가세끼(36층) 빌딩과 새로선 무역센터(42층)에 이어 동양 제3위의 고층 건물"이라고 소개한다.
삼일빌딩의 타이틀은 일본과 관련이 깊은 롯데그룹에 넘어간다. 마찬가지로 서울 중구에 롯데호텔 본관이 38층, 138m 높이로 1978년 완공된다.
옛 반도호텔과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던 부지를 롯데그룹이 인수했다.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인 애비뉴엘, 쇼핑몰 영프라자 등이 이어져 롯데타운을 이룬다.
과거 산업은행 부지였던 현재 롯데호텔 신관은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1988년 개관한다. 롯데호텔 신관에 대한 허가가 내려진 날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롯데호텔 신관 허가 후 궁정동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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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전경 (사진 = 메가경제신문 DB) |
1985년부터 2003년까지 대한민국 최고층 빌딩 기록은 마천루 하면 떠오르게 마련인 63빌딩이 유지한다.
대한생명 사옥으로 계획된 63빌딩은, 이름처럼 63층이 아니라 60층이며, 249.6m 건물이다.
여의도의 상징 같은 마천루였고, 서울의 랜드마크기도 했다.
전쟁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한강의 기적' 시대 상징 같은 건물. 지금도 한강 너머 황금빛으로 빛나는 63빌딩은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다.
건축법은 높이 200m 이상 또는 50층 이상 건물을 초고층빌딩으로 규정하고 있다.
1990년대 63빌딩을 내려다볼 수 있는 300~400m 건물들이 계획되긴 했지만,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사실상 백지화된다.
63빌딩이 2003년까지 최고층 마천루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63빌딩 이전까지 초고층빌딩은 주로 오피스, 상업용 건물이었다. 하지만 2003년 목동 하이페리온 이후 주상복합건물 초고층 시대가 열린다.
목동 하이페리온이 69층, 256m, 2004년 올라간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가 69층, 263.7m, 2011년 부산 해운대 아이파크 타워가 72층, 292.1m, 역시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가 80층, 300m의 기록이다.
2014년엔 인천 연수구에 포스코타워 송도가 65층, 305m 높이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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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타워 전경 (사진 = 롯데월드 제공) |
그러다 2017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가 123층, 554.5m 높이로 올라서며 당분간 이 기록이 깨지긴 쉽지 않을 거 같아 보인다.
제2롯데월드라고도 불리는 롯데월드타워는 故 신격호 회장의 30년 기대가 녹아 있다.
롯데그룹이 인근 부지 8만7603제곱미터를 사들인 건 지난 1988년이다. 부지 매입 당시부터 세계적인 랜드마크 타워를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비행 안전에 대한 위협 논란이 공군에서 개진되며 롯데월드타워는 허가 단계부터 지리한 공방을 지속한다. 이명박 정권 들어 첫삽을 뜨게 됐지만, 이후에도 논란은 한동안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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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 GBC 부지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제공) |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역시 초고층빌딩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2014년 10조5500억원을 들여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7만9341제곱미터를 사들인다.
이곳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짓고 본사와 곳곳의 계열사를 집중시키는 한편, 숙박시설, 문화·관광시설, 판매시설 등을 건설해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아우토슈타트처럼 만들 계획이었다.
아우토슈타트는 폭스바겐그룹의 본사면서도 박물관과 브랜드 전시관 등을 연계한 자동차 테마파크로, 연 200만명 이상 방문하는 명소다.
GBC의 핵심은 높이 105층 규모의 초고층 마천루다. 계획대로라면 롯데월드타워가 갖고 있는 최고층 타이틀이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이 계획은 현재 불투명해지고 있다.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정의선 회장이 취임하며 현대차그룹이 GBC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105층 규모가 아니라 70층, 50층 마천루로 계획을 변경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풍문이다.
그런가하면 지난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며 상암동 초고층빌딩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의 과거 재임기였던 2009년 당시, 이 일대에 2015년 완공 목표로 133층, 640m 높이 초고층빌딩 건립이 추진됐던 것이다.
GBC와 상암동 초고층빌딩 건립과 관련해 인근 지역주민들의 목소리가 강하게 터져나오고 있는 점도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초고층 랜드마크 건립 이후 주변 부동산가격의 동반상승을 기대하는 요구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정보를 공유하며 지자체나 관련 기업, 관계기관, 정부 등에 다양한 채널을 동원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마천루는 역시 현대사회 인간들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메가경제=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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