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 승계 찰스 3세 “가장 슬픈 순간…깊이 애도”
트러스 총리 “여왕은 바로 영국의 정신이었다”
美백악관 “우리의 마음, 英 국민에게로”…여왕 서거 애도
1999년 방한 때 안동 하회마을서 ‘생일상’ 한국과 인연
영국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이었고 영연방의 수장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로 서거했다.
영국 왕실은 8일(현지시간) 여왕이 이날 오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왕위 계승권자인 여왕의 큰아들 찰스 왕세자가 즉각 찰스 3세로서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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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 [AP=연합뉴스] |
앞서 이날 고령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건강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국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8일 정오가 조금 지나 왕실은 의료진이 이날 아침 여왕을 더 살핀 결과 건강이 염려스럽다고 발표했다.
왕실의 발표 이후 찰스 왕세자를 비롯한 왕실 가족들이 속속 밸모럴성에 모여들었고 BBC가 정규 방송을 중단한 채 여왕 관련 소식을 생중계로 전하는 등 영국 전역이 숨을 죽이며 여왕의 병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지난해 4월 70년 해로한 남편 필립공을 떠나보낸 뒤 급격히 쇠약해졌으며 10월에는 하루 입원을 하고 올해 초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했다.
올해 6월에는 재위 7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지만 최근에는 간헐적인 거동 불편으로 일정을 임박해서 취소하는 일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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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레자비스 2세 여왕 연보. [그래픽=연합뉴스] |
여왕은 예년처럼 밸모럴성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이었으며 지난 6일에는 웃는 얼굴로 신임 리즈 트러스 총리를 임명하며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7일 오후 왕실은 의료진의 휴식 권고로 여왕의 저녁 일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영국의 상징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국 최장기이자 세계 역사에서 두 번째로 긴 기간인 70년 간 재위하면서 영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은 현대사의 주요 인물이었다.
영국 정부는 ‘런던브리지 작전’으로 명명된 여왕 서거 시 계획에 따라서 절차를 진행한다. 이에 따르면 국장은 여왕 서거 후 10일째 되는 날에 치러진다.
여왕에게서 왕위를 승계한 찰스 3세 국왕은 이날 애도 성명을 통해 “친애하는 나의 어머니 여왕의 서거는 나와 가족 구성원들에게 가장 슬픈 순간”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소중한 군주이자 사랑받았던 어머니의 서거를 깊이 애도한다”며 “온 나라와 왕국, 영연방 그리고 전 세계인이 여왕을 잃은 상실감에 젖어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애도와 변화의 기간, 우리 가족과 나는 여왕에게 향했던 폭넓은 존경과 깊은 애정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받고 견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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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왕실 가계도. [그래픽=연합뉴스] |
왕실은 찰스 왕세자가 국왕 자리를 자동 승계해 찰스 3세로 즉위한다고 밝혔다.
찰스 3세는 이미 공식적인 영국의 국왕이지만 관례에 따라 대관식은 몇 개월 뒤 열릴 것으로 보인다.
찰스 3세 부부는 이날 밸모럴성에 머문 뒤 9일 런던으로 옮긴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우리는 밸모럴성에서 방금 들은 소식에 모두 충격을 받았다”며 “여왕 폐하의 서거는 국가와 세계에 큰 충격”이라고 말했다.
이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바위였다. 그 위에서 현대 영국이 건설됐다”며 “우리나라는 여왕의 통치하에서 성장하고 번영했다”고 추모했다.
트러스 총리는 “영국은 여왕으로 오늘날의 위대한 국가가 됐다”며 “여왕은 우리에게 필요한 안정감과 힘을 줬다. 그녀는 바로 영국의 정신이었고, 그 정신은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찰스 3세가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며 “영국인은 그를 지지하기 위해 국민으로서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새로 즉위한 찰스 3세 국왕과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인 질 여사와 공동 성명을 통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군주 이상이었다. 그는 시대를 규정했다"며 "지속적인 변화의 시대에 여왕은 영국인에게 안정과 자존심의 지속적 원천이었다"고 기렸다.
이어 "여왕은 전 세계인이 개인적이고 즉각적인 유대를 느낄 수 있는 최초의 영국 군주였다"며 "전 생애를 그들을 위해 헌신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982년 상원의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인연을 언급하며, "9·11 사태 이후 가장 암울했던 시기 미국의 편에 서서, '슬픔은 우리가 사랑에 지불하는 대가'라는 사실을 깨우쳐줬다"고도 회고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찰스 3세와도 지속적인 우정을 이어가길 기대한다면서 "전 미국의 염원과 애도가 영국의 슬픔과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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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 소식에 런던 시민들이 버킹엄궁 앞에 모여 추모하고 있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
1926년 4월 21일 런던에서 후에 조지 6세가 된 요크공 앨버트 왕자의 장녀로 태어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1952년 2월 6일 25세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인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예상보다 빨리 왕관을 물려받았다.
여왕의 재위 기간은 70년 214일로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63년 216일)을 훌쩍 넘어 영국 역사상 가장 길다. 세계적으로도 루이 14세 프랑스 국왕(72년 110일) 다음으로 두 번째다.
영국 여왕은 영국뿐 아니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까지 15개국의 군주이자 53개국이 참여한 영연방(Commonwealth)의 수장이고 신앙의 수호자이자 잉글랜드 국교회의 최고 통치자다.
여왕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나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특히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며 이러한 역할로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여왕은 윈스턴 처칠부터 리즈 트러스까지 영국 총리 15명을 거치며 2차 세계대전 이후 격동기에 영국민을 통합하고 안정시키는 정신적 지주였다. 또 대영제국 해체 이후 영연방을 묶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1997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당시 며칠간 조의를 표하지 않아 한때 비판도 받았으나 이후로는 대중적 인기를 되찾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한국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9년 4월 19일부터 22일까지 김대중 당시 대통령 내외의 초청으로 3박 4일간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여왕은 당시 한국 유교 문화의 정수인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고, 이 인연은 이후로도 두고두고 회자하며 한영 관계사에도 자양분과 같은 인연이 됐다.
1883년 한·영 우호통상항해조약을 맺고 수교한 이래 영국 국가원수로서는 첫 방한이었기 때문에 한영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혔다. 국민들도 ‘116년 만의 귀빈’에 큰 관심을 보이며 환영했다.
특히 73세 생일인 4월 21일 하회마을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담연재에서 안동소주 명인인 조옥화(2020년 별세) 여사가 마련한 성대한 생일상을 대접받고 축배를 드는 등 한국의 전통 환대를 경험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마련한 국빈만찬 답사에서 “오늘 보는 한국은 제가 왕위에 오른 1952년 당시 영국민이 알고 있던 한국과 많이 다르다”며 한국 국민들이 산산조각이 난 나라를 다시 세우고 세계 주요 산업국가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한국 측 인사들에게 방한 당시 환대를 기억한다며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947년 그리스 왕실의 피를 이어받은 필립 마운트배튼 대위(에든버러 공·올해 4월9일 99세로 별세)와 결혼했고, 슬하에 장남인 찰스 국왕, 장녀 앤 공주, 차남 앤드루 왕자, 3남 에드워드 왕자 등 3남 1녀를 두었다. <연합뉴스 종합>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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