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새 총리에 '한일 위안부 합의' 기시다 후미오 선출...'유권자 1위' 고노 다로 따돌려

국제 / 류수근 기자 / 2021-09-30 01:15:25
10월 4일 총리 취임... 온건파지만 역사문제 양보 가능성은 낮아

새 일본 총리 선거 결과는 역시 유권자의 목소리보다는 자민당 내 주요 파벌의 지지가 절대적이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상이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을 제치고 차기 일본 총리를 예약했다.

일본 NHK에 따르면. 기시다는 29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실시된 집권 자유민주당(자민당) 27대 총재 선거에서 결선투표 끝에 고노를 ‘257표 대 170표’로 눌렀다.

기시다는 우리에게는 2015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일 합의의 당사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 기시다 후미오 전 외부상이 29일 오후 도쿄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

기시다는 1차 투표에서도 2위인 고노를 1표 차이로 앞섰으나 유효표 과반 획득에 실패해 1·2위 후보가 대결하는 결선투표에서 나섰고, 고노를 87표 차이로 제치고 새로운 총재에 뽑혔다.

기시다는 이달 30일 총재 임기가 끝나는 스가 요시히데 현 총리의 뒤를 이어 자민당 당수로 취임하고, 이어 내달 4일 소집 예정인 임시 국회에서 제100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는 기시다 전 외무상. 고노 행정개혁담당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 노다 세이코 자민당 간사장 대행 등 4명이 입후보했다.

1차 투표에서는 국회의원표와 당원표가 382표 동수로 총 764표를 놓고 선거를 벌였다. 유효표 762표 중 기시다 256표(의원표 146표, 당원표 110표), 고노 255표(의원표 86표, 당원표 169표), 다카이치 188표(의원표 114표, 당원표 74표), 노다 63표(의원표 34표, 당원표 29표)를 각각 획득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넘긴 후보자가 없어 상위 1.2위로 압축해 열린 결선투표에서는 기시다와 고노 상위 2명으로 압축돼 결선 투표를 진행했다.

결선투표는 국회의원 1인 1표와, 47개 광역지자체인 도도부현(都道府県)에 1표씩 배정된 47표 등 모두 428표로 치러졌다.

2차 투표 결과 기시다는 257표(의원표 249표, 도도부현표 8표)를 얻은 반면, 고노는 170표(국회의원표 131표, 도도부현표 39표)에 그쳤다.

이번 총재 선거는 코로나19 방역 실패 등 스가 정권의 실정으로 내각 지지율이 급락한 가운데 스가 총리가 입후보를 포기한 채 치러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본 내 여론은 차기 총리로 가장 적합한 인물로 고노를 꼽았다.

고노는 비록 기시다에 패했지만 1차 하지만 여론의 반영이 쉽지 않은 자민당 총재 선거의 독특한 구조로 인해 결국 고노가 아닌 기시다는 1차 투표에 이어 결선투표까지 모두 이기며 차기 총리의 대권을 거머졌다.

반면 고노는 1차 당원표와 2차 도도부현표에서는 기시다를 크게 앞섰으나 그를 경계하며 결집한 파벌과 보수 의원표의 벽은 넘지 못했다.

유권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뿌리 깊은 파벌 정치의 양상이 재확인된 셈이다.

고노는 당내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지를 받았고 지자체(도도부현) 대표들에게도 폭넓은 지지를 받았으나 고노의 등장에 위기를 느낀 자민당 주요 노장파의 선택을 받는데 실패했다.

▲ 차기 일본 총리로 선출된 기시다 후미오. [그래픽=연합뉴스]

기시다는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뒤 “총재 선거는 끝났다. 노사이드(네편 내편이 없다)다”라며 “‘전원야구'로 똘똘 뭉쳐 중의원 선거와 참의원 선거에 임해야 한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한 “발밑에서는 계속 ’국난‘이 이어진다. 코로나 대책은 필사의 각오로 노력을 계속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십조엔 규모의 경제대책이 연말까지 확실하게 나와야 한다. 그 앞에는 새로운 자본주의, 자유롭게 열린 인도 태평양의 실현, 또 저출산 대책 등 일본의 미래에 관련되는 중대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라고 지적했다.

▲ 2015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외교장관 합의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왼쪽). [사진=연합뉴스]

1957년 도쿄도 시부야 구에서 출생(본적지 히로시마)한 기시다는 와세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일본장기신용은행에 입사해 5년 동안 근무했다.

기시다는 일본의 대표적인 세습 정치인이며 자민당 파벌인 고치카이(宏池會·국회의원 46명) 회장이다. 조부인 기시다 마사키(1895∼1961) 전 중의원 의원, 아버지 기시다 후미타케(1926∼1992) 전 중의원 의원에 이어 3대째 정치인이다.

1987년 아버지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히로시마 제1구에 자민당 후보로 출마해 처음 당선됐으며 이후 9선을 했다.

아베 정권에서 일본 헌정사상 처음으로 외무상과 함께 방위상을 겸임한 적이 있으며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도 지냈다.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국제파이기도 한 기시다는 보수·우파 성향이 강한 자민당 내에서 소프트파워를 활용한 외교 정책을 옹호하는 등 온건 개혁을 지향하는 인물로 꼽혀왔다.

하지만 역사 문제에서 강경론으로 치달은 아베 정권 시절 4년 8개월여 동안 외무상으로 재직했고 2015년 12월28일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외교장관 합의를 주도했다.

이같은 이력에 비춰보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아베·스가 정권의 노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한일 간 경색국면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다만 기시다는 한국과의 안보 협력 등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인물이다. 그런 만큼 한국과의 갈등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지도 관심사다.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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