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 무색케 하는 탈원전 정책

칼럼 / 이동구 / 2019-03-01 13:34:38

탈원전 정책의 중단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정부 관련 부처나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최근(지난 달 23일) 서울대를 비롯해, 포항공대, 카이스트 등 전국 12개 대학 학생들은 전국 주요 KTX역에서 탈원전 정책을 반대하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촉구하는 ‘원자력 살리기 범국민 서명운동’을 펼쳤다. 하루 동안 전국에서 8000여명의 국민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지금까지 탈원전 정책을 반대하는 서명인 수는 40만명선을 훌쩍 넘어 50만명을 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의 불편과 억울함을 해소하고 국민들의 생각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며 국민청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탈원전 정책에서는 작동이 멈춰있는 듯하다.


탈원전은 미국의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1979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2011년) 등 대형 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하면서 생겨난 세계적인 추세다. 현재 우리나라뿐 아니라 독일, 벨기에,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탈원전 정책이 힘을 얻고 있다. 상당수 유럽 국가들은 원전을 건설하지 않고 있다.


월성 원전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월성 원전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우리에서는 지난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주요 공약 사항이 되면서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노후 원전 수명 연장 중단, 월성 1호기 폐쇄,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등을 통해 향후 60년 동안 원자력 제로를 목표로 하겠다는 것이 탈원전 정책의 골자다. 위험한 원전 대신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력과 태양광·풍력 등으로 전력을 생산해내겠다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의 최대 명분은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국민과 국가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인·통치자로서 당연히 고려해야 할 사항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사고의 가능성만으로 인류가 오랜 기간 발전시켜온 각종 기술과 문명의 혜택을 도외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고의 위험이 어디 원전뿐인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가 그렇고 미사일이나 각종 무기들, 우리 주변의 화학 공장이며 가스시설, 정유시설 등 위험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한순간 실수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자연 경관이 파괴되고 깊은 후유증을 남길 수 있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우리가 편리하게 이용하는 휴대폰이나 먹고 마시는 음식물이나 생활용품들 또한 각종 부작용으로 반사회적인 문제점을 노출하기 일쑤다. 그 때마다 인류는 기술을 좀 더 발전시키고, 개선점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원전처럼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돌이킬 수 없는 자연재해를 유발하는 위험천만한 것이니 언제까지 모두 없애버리자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에너지 정책을 특정 정권의 입맛에 따라 하루 아침에 변경한다는 것은 더 큰 부작용과 함께 국가 경제와 국민의 미래를 불안케 하기에 충분하다.


이같은 불안과 우려는 단지 기우(杞憂)가 아니라는 것이 벌써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원전 가동률이 71.2%에서 65.9%로 낮아진 결과 한국전력은 6년여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원전 가동률 1%포인트 당 1900억원 정도 영업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탈원전 정책이 계속 유지될 경우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해진다. 우리보다 앞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벨기에에서 지난해에만 전기 요금이 6배나 폭등한 현상이 우리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탈원전으로 전기료와 미세먼지가 증가해 국민들은 죽어납니다”라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청원인들의 우려는 국회입법조사처의 전망과도 다르지 않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자유한국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탈원전 추진으로 2029년 기준 발전용 LNG 수요는 817만t, 초미세먼지는 5276t, 온실가스는 2255만t 증가하고,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2조4000억원 늘어난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이미 전력 공급에 1조2821억원의 추가비용이 지불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황일순 서울대 교수는 원전을 대신해 석탄과 LNG로 발전할 경우 미세먼지는 급속도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다 전력사용이 급증하는 여름철 등의 대정전 위험 또한 간과할 수 없다. 2016년부터 탈원전 정책을 도입했던 타이완의 경우 1년 뒤인 2017년 8월 사상 최악의 정전사태를 경험하는 등 큰 혼란을 겪었다. 이 같은 부작용 등으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던 차이잉원 총통의 민진당은 2018년 11월 선거에서 참패했고, 결국 탈원전 정책을 포기했다.


탈원전 정책의 불합리성은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달(2월 27일) 국빈방문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라하얀 왕세자에게 “원전사업은 앞으로 100년을 바라보고 같이 가자”고 말했다. UAE에 원전을 수출한 데다 추가 원전 건설에 우리 기업이 참여하길 바란다는 뜻을 전달한 것이다. 자국에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탈원전 정책을 펼치면서 UAE, 인도 등 다른 나라에는 “우리 기술이 우수해 세계 최고로 안전하다”며 원전을 수출하겠다니 이보다 더 이율배반적인 게 있을까 싶다.


탈원전 정책으로 이미 대학에서는 관련 학과가 축소되고, 기업들이 경영난을 겪는 등 관련 산업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세계 최고라는 원전 기술력 또한 사장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원전의 안전성이 걱정된다면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산업 전체를 뒤흔들 게 아니라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난관에 봉착한 인류가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더욱 안전한 원전 기술을 개발하고 완벽히 운영되도록 노력하면 될 것이다. 국내 1세대 원전 과학자로 한국형 원자로 개발에 앞장선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KAIST 석좌교수)은 “원전 안전성이 걱정된다면 해상원전 등 대안을 찾으면 된다”고 최근 열린 한 포럼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우려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동구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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