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화 추진 속 서민·사회적 약자 지원 '약자복지' 추구”
“반도체‧AI 등 미래 성장기반 구축…원자력 생태계 복원 시급”
“안보 현실도 매우 엄중…北, 7차 핵실험 준비도 이미 마무리”
尹시정연설 역대 최단 ‘18분28초’…169석 민주 불참에 참석자 최소
약자 7번·경제 13번‧투자 9번‧산업 5번…尹 '협치' 대신 '협력' 키워드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민생·경제 입법 과제에 대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 국회를 찾아 시정연설을 했다. 하지만 제1 야당이 보이콧하는 헌정사에 유례없는 일이 벌어지며 의석의 절반 이상이 텅 빈 상태에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취임 1주일 뒤인 지난 5월 16일 추경 연설에 이어 두 번째이고, 본예산 기준으로는 취임 후 처음이다.
추경 연설에선 코로나19 피해 보상 등 민생안정에 중점을 뒀다면 이번 본예산 연설에선 초유의 경제·안보위기 극복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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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윤 대통령은 “경제와 안보의 엄중한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국회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한 “예산안은 우리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은 지도이고 국정 운영의 설계도”라며 “정부가 치열한 고민 끝에 내놓은 예산안은 국회와 함께 머리를 맞댈 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총리가 대독하지 않고 대통령이 국회에서 직접 예산안(본예산) 시정연설을 한 것은 윤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여섯 번째다.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매년 직접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은 약자복지와 성장동력으로 압축된다. 복합 위기에 가장 취약한 사회적 약자 중심의 복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 처리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는 우리 정부가 글로벌 복합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며 어떻게 민생현안을 해결 할 것인지 그 총체적인 고민과 방안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우리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다”며 “그동안 정치적 목적이 앞선 방만한 재정 운용이 결국 재정수지 적자를 빠르게 확대시켰고, 나라 빚은 GDP의 절반 수준인 1000조 원을 이미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 성장과 약자 복지의 지속 가능한 선순환을 위해서는 국가재정이 건전하게 버텨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내년도 총지출 규모는 639조 원으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예산을 축소 편성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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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주요 내용. [그래픽=연합뉴스] |
윤 대통령은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면서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두텁게 지원하는 ‘약자 복지’를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생계급여 최대 지급액 인상 ▲사회보험 지원 확대 ▲소규모 사업장 근로환경 개선 ▲장애인·한부모가족 지원 강화 ▲장애수당·장애인 고용장려금 인상 ▲장애인 이동권 보장 강화 ▲반지하·쪽방 거주자 지원 ▲청년주택 확대 ▲기초연금 인상 등을 설명했다.사병봉급 인상과 관련해서는 “현재 82만원에서 내년 130만원까지 인상하겠다”며 ‘2025년 205만원 목표’를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반도체, 원자력,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기술 등 미래 성장기반 구축에도 힘쓰겠다고 강조했다.우선 “메모리 반도체의 초격차 유지와 시스템 반도체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문 인력양성과 연구개발, 인프라 구축 등에 1조원 이상을 집중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무너진 원자력 생태계 복원이 시급하다. 원전 수출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전임 정부의 ‘탈원전’에 쐐기를 박았다.
윤 대통령은 아울러 ▲핵심 전략기술과 미래 기술시장 선점 위한 투자 ▲민간투자 주도형 창업지원 ▲소상공인 채무조정 및 재기 지원 ▲청년농업인 지원 ▲수도권 GTX 기존 노선의 적기 완공 및 신규노선 지원 ▲도심항공교통(UAM)·개인형 이동수단(PM) 등 미래교통수단 조기 상용화 ▲스마트 예보 시스템 구축 등 내년에 중점적으로 추진할 정책을 설명했다.윤 대통령은 또 “안보 현실 또한 매우 엄중하다”며 “북한은 최근 유례없는 빈도로 탄도미사일 발사를 비롯한 위협적인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자 국제사회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나아가 (북한은) 핵 선제사용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뿐 아니라 7차 핵실험 준비도 이미 마무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미 연합방위태세와 한미일 안보협력을 통해 압도적 역량으로 대북 억제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북한이 비핵화 결단을 내려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면 이미 취임사와 8·15 경축사에서 밝혔듯 ‘담대한 구상’을 통한 정치·경제적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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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에 들어서자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취임 첫해인 올해 윤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은 역대 '최단 시간'인 18분 28초로 기록됐다. 역대 최단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26분(2008년 10월)보다 훨씬 짧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최단 33분(2019년 11월)·최장 39분(2020년 10월)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단 29분(2013년 11월)·최장 42분(2015년 10월) 시정연설을 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 대통령의 연설 동안 19차례 박수를 보내며 호응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경제는 13번, 투자는 9번, 산업은 5번을 언급했고, ‘지원’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은 32차례 사용했다.
‘약자’라는 단어는 7번, ‘취약계층’이라는 단어는 2번 등장했고, 청년도 6차례 사용하며 주택, 자산 등 다방면에 걸쳐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내 정치와 관련해 ‘협조’는 1번, ‘협력은 2번 나왔고, ’국회‘는 6차례 언급했다. 통상적으로 정치권에서 많이 거론되는 ’협치‘라는 키워드 없이 ’협력‘을 부각한 것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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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뒤 텅 빈 야당 의원석을 지나 퇴장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이날 시정연설은 제1야당이자 169석의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불참해 의석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진행됐다. 헌정사상 초유의 '시정연설 보이콧'이었다.
민주당이 불참한 것은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 야당 비하 발언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수사와 관련한 검찰의 민주당사 압수수색 때문이었다.
보이콧을 선언한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 모여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등에 항의하는 시위로 맞섰다.
윤 대통령 도착 전후에는 “민생탄압 야당탄압 윤석열 정권 규탄한다”, “국회 모욕 막말 욕설 대통령은 사과하라” 등 구호를 외쳤고 윤 대통령 도착해 이동할 때는 침묵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곳곳에서 “사과하세요”라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이날 윤 대통령이 국회를 찾은 것은 새해 예산안과 관련해 국민과 국회에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자리였지만 거야인 민주당이 불참하면서 헌정사상 초유의 파행을 겪었다.
여야 간 강대강 대치국면이 격화하면서 휑한 본회의장은 ‘정치실종’의 극단면을 보여줬다. 국내외적으로 예측불허의 거친 파고가 몰려오는 경제 위기 시국에 정치복원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현장이기도 했다.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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