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신용 2019조 8000억 원 사상 최대…대출금리·한은 추가 인상 변수
[메가경제=박선영 기자]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글로벌 장기금리가 수십 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국내 채권시장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국내 장기·초장기 국고채 금리가 급등락하면서 금리 하락을 예상해 장기채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한 개인투자자의 평가손실 위험이 커졌다. 2분기 가계신용이 사상 처음 2000조 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7월 기준금리 인상에 이어 8월 시장금리까지 뛰면서 은행 대출금리와 기업 조달비용,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30년 만기 국채금리는 최근 장중 연 5.337%까지 올라 2007년 이후 19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 10년물 금리도 연 4.7%대로 올라서는 등 장기물을 중심으로 매도세가 거세졌다.
![]() |
| ▲ 기사 내용에 맞게 AI 이미지 제작 |
◊ 美 이어 日 국채도 급등…국내 초장기물까지 출렁
장기금리를 끌어올린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겹쳤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재확산 우려가 커진 가운데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확대 부담이 장기물 금리에 반영됐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를 위한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회사채 발행도 채권 공급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바이백 규모를 확대하기로 하면서 급등세는 일단 진정됐다. 장기물 바이백을 늘려 수급 불안을 완화하겠다는 조치다. 다만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 국채·회사채 공급 증가 등 장기금리를 밀어 올린 요인이 해소된 것은 아니어서 높은 변동성이 이어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장기금리 상승은 미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일본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최근 연 2.9%대로 올라 수십 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재정 확대에 따른 국채 공급 부담과 물가 상승,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 전망 등이 금리를 끌어올린 배경으로 꼽힌다.
일본 금리 상승은 글로벌 채권시장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일본 국채 수익률이 높아질수록 일본 기관투자가 입장에서는 환헤지 비용까지 감안한 미국 등 해외채권의 상대적인 투자 매력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실제 자금이 자국 채권으로 이동하면 미국 국채 수요를 약화시켜 글로벌 장기금리 상승 압력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국내 채권시장도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 18일 국고채 30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8.2bp(1bp=0.01%포인트) 오른 연 4.751%, 50년물은 8.1bp 상승한 연 4.661%를 기록했다. 10년물도 6.9bp 오른 연 4.382%로 상승했다.
단기물보다 장기·초장기물의 움직임이 컸다. 같은 날 국고채 3년물 상승 폭은 5.1bp였지만 20년물은 10.3bp 뛰었다. 국내 재정과 국채 공급 부담에 글로벌 장기금리 상승이 겹치면서 초장기물을 중심으로 매도 압력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미국 장기금리 급등세가 다소 진정되면서 국내 국고채 금리도 일부 되돌림을 나타냈다. 장기물이 연일 같은 방향으로 오르기보다 대외 변수에 따라 큰 폭으로 움직이면서 국내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하지만 기준금리와 장기 시장금리가 반드시 같은 방향과 폭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기준금리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단기 자금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출발점이라면 10년·30년 만기 국고채 금리에는 향후 기준금리 전망뿐 아니라 물가와 성장률, 정부 재정과 국채 공급, 미국·일본 등 주요국 장기금리까지 반영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리지 않더라도 글로벌 장기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국내 국채 공급 부담까지 이어지면 국내 시장금리가 쉽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 금리 하락 베팅한 ‘채권 개미’…장기채 ETF 평가손실 우려
장기금리 급등의 충격을 직접적으로 받는 곳은 장기채 시장이다. 특히 금리 하락을 예상해 장기채와 장기채 ETF를 사들인 개인투자자의 경우 예상과 반대로 금리가 상승하면 평가손실이 커질 수 있다.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만기가 길고 듀레이션이 긴 채권일수록 같은 폭의 금리 변화에도 가격 변동폭이 커진다. 장기금리가 예상보다 높은 수준에서 오래 머물거나 추가로 상승하면 장기채 ETF의 가격 하락폭도 확대될 수 있다.
최종수 삼성자산운용 책임은 메가경제에 “현시점 장기채 투자에서 유의해야 할 위험은 재정적자 확대와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추가 금리 상승 가능성”이라며 “장기채는 특히 듀레이션이 길어 가격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신규 투자자에게는 금리 상승으로 투자 매력이 높아진 측면도 있다. 채권을 새로 매수할 때 확보할 수 있는 만기수익률(YTM)이 높아졌고, 향후 금리가 고점을 찍고 내려가기 시작하면 장기채의 가격 상승폭도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책임은 “현재 금리 수준이 높아 신규 투자에 매력적인 구간으로 볼 여지는 있다”면서도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불확실성과 인플레이션 우려로 상승 압력 또한 남아 있어 투자 판단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는 현재 금리가 높은지만 보기보다 듀레이션과 YTM을 함께 따질 필요가 있다. 최 책임은 “듀레이션이 길수록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민감도가 커진다”며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연환산 수익률을 나타내는 YTM과 함께 살펴 손익을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적정 듀레이션이나 만기 구간은 투자자의 목적과 위험 성향 등에 따라 달라 특정 구간을 일률적으로 추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 가계신용 2019조 8000억 원…금리 상승 충격은 이제부터
장기금리 상승의 파장은 채권 투자자의 손익에 그치지 않는다. 시장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은행 조달비용과 대출금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난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추가로 상승했다는 점이 부담이다.
한국은행이 19일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6월 말 가계신용 잔액은 2019조 8000억 원으로 사상 처음 2000조 원을 넘어섰다. 전분기보다 25조 9000억 원 증가했다.
가계신용은 금융기관의 가계대출에 신용카드 할부 등 판매신용을 더한 것으로, 가계가 짊어진 전체 신용 규모를 보여주는 지표다.
2분기에는 주택 관련 대출과 기타대출이 함께 늘었다. 한은은 기타대출 증가에는 주식 투자 수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했다. 주택 구입을 위한 자금뿐 아니라 증시로 향한 차입 수요까지 가계빚 증가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중요한 점은 이번 통계가 6월 말 기준이라는 것이다. 7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과 8월 글로벌 장기금리 급등의 영향은 아직 가계신용 통계에 반영되지 않았다. 앞으로 발표되는 대출 지표에서 금리 상승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
시장금리 상승세가 이어지면 신규 대출금리에도 상승 압력이 나타날 수 있다. 고정·주기형 주택담보대출은 금융채 등 시장금리를 준거금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시장금리 움직임이 신규 취급금리에 비교적 빠르게 반영될 수 있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를 준거금리로 사용하는 상품이 많다. 은행의 예·적금과 은행채 등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면 코픽스를 거쳐 시차를 두고 대출금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금리가 올랐다고 가계대출 총량이 곧바로 감소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미 체결된 주택매매에 따른 잔금대출이나 집단대출 등은 금리가 상승하더라도 일정 기간 실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주식 투자와 관련된 차입 수요는 주택대출보다 금리와 자산가격 변화에 상대적으로 민감할 가능성이 있다. 2분기 기타대출 증가에 주식 투자 수요가 영향을 미친 만큼 대출금리 상승과 증시 변동성 확대가 맞물릴 경우 관련 차입 수요가 먼저 둔화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은행·기업도 조달비용 부담…시장금리 장기화가 관건
시장금리 상승은 은행과 기업에도 부담이다. 국고채 금리는 은행채와 회사채 등 민간 채권 발행금리를 형성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다.
국고채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은행채 발행금리에도 상승 압력이 생길 수 있다.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면 신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금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국고채 금리가 상승하면 회사채 발행금리의 기준이 되는 무위험금리 자체가 높아진다. 여기에 시장 불안으로 신용스프레드까지 확대될 경우 신용도가 낮은 기업을 중심으로 자금조달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금리가 함께 상승하면 카드·캐피털사의 조달비용 증가로도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장기금리 상승이 장기화하면 채권 투자자의 평가손실에서 시작해 은행과 기업의 조달비용, 가계 대출금리로 충격이 확산할 수 있는 구조다.
◊ 시장금리 올랐다고 한은 멈추나…2000조 가계빚·고유가 변수
시장금리 급등이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2000조 원을 넘어선 가계신용과 고유가에 따른 물가 불안은 반대 방향의 압력이다. 장기 시장금리가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시장금리 상승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리지 않더라도 가계와 기업의 금융비용을 높여 사실상의 긴축 효과를 낼 수 있다. 8월 시장금리 상승 이후 실제 대출금리가 오르고 가계대출 증가세와 소비·투자가 둔화한다면 추가 기준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가 올랐는데도 주택 관련 대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증시로 향하는 차입 수요까지 유지된다면 금융안정 측면에서 추가 긴축 필요성이 커질 수 있다.
국제유가도 변수다. 고유가가 국내 소비자물가를 다시 밀어 올리면 한은으로서는 물가 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를 유지할 필요성이 커진다. 반면 글로벌 장기금리 상승으로 국내 시장금리와 대출금리가 빠르게 올라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를 압박한다면 추가 금리 인상에 따른 실물경제 부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결국 한은의 향후 판단에서는 장기금리가 얼마나 올랐느냐 자체보다 7월 기준금리 인상과 8월 시장금리 상승이 실제 가계대출과 주택시장, 소비·투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미국 재무부의 국채 바이백 확대 등으로 글로벌 장기금리 급등세는 일단 진정됐지만 재정 불안과 인플레이션, 주요국 국채 공급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다. 7월 기준금리 인상과 8월 시장금리 상승이 실제 가계대출 증가세를 꺾는지가 하반기 국내 금융시장과 한국은행의 다음 선택을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