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논란 속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업장에서 안전보건 조치를 강화하고 안전투자를 늘려, 중대재해를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법률이다.
특히, 무엇보다도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게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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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제공 |
하지만 시행령 입법예고에 따라 의견서 제출이 마감되는 23일까지 노사 양쪽은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36개 경제단체는 23일 관계부처인 법무부, 고용노동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에 대한 공동건의서를 제출했다.
경제단체들은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 제정(안)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 모두 경영책임자 의무내용이 포괄적이고 불분명하여, 의무주체인 기업이 명확한 기준을 파악하기 어렵고, 정부의 자의적 판단만 우려된다“며 “이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될 경우 많은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직업성 질병자 기준에 중증도 마련 ▲공중이용시설 적용기준 개선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내용 명확화 ▲안전보건 관계법령 범위 구체적 명시 ▲안전보건교육 수강대상 기준 신설 ▲시행일 유예 특례규정 신설 등을 요구했다.
아울러 “법률상 모호한 경영책임자 개념과 의무내용을 구체화하고, 종사자 과실이 명백한 중대산업재해에 대해서는 기업과 경영자가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시행령에 관련규정의 신설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노총은 지난 7월 12일 법무부에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당연히, 경제단체의 의견과는 반대의 맥락에서 “원래 입법 취지에 따라서 종사자와 이용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직업성질병을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법인과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확실히 규정하는 시행령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경제단체서도 지적한 ▲직업성 질병의 경우 범위를 넓히는 것 ▲ 안전보건 의무의 확보를 보다 포괄적으로 포함 ▲ 안전보건 교육 의무 강화 ▲경영책임자 의무 위반에 대한 공표를 1심 결과 이후로 당길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대재해처벌법 모법에서 시행령으로 위임했던 내용들이 정부가 자의적으로 의미를 축소하거나 한정하여 시행령에서 모법의 입법 취지가 상당히 퇴색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복잡해진 환경에서 안전보건 관리자와 하청업체 담당자 일부가 떠맡았던 극히 일부의 책임을 기업 시스템의 최종 책임자인 최고 경영자에게 제대로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경영책임자 책임을 전체 종사자, 사업장 대상으로 명기 ▲2인 1조 작업, 과로사 예방을 위한 적정인력과 예산 확보 의무 명시 ▲직업성 질병 전면 적용 ▲안전보건 관리를 외주화하는 '법령 점검 민간위탁' 조항 삭제 및 노동자·시민 참여 실질적 보장 ▲근로기준법 등을 안전보건관계 법령에 명시 등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에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시행령은 경영책임자 의무가 축소돼 있고, 안전보건관리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을 외주화할 수 있도록 해 노동계안에서 한참 후퇴했다”며 “안전보건 관리 의무 점검을 외부 민간기관에 위탁한다면 위탁받은 업체는 갑의 눈치를 볼 것이고, 제대로 점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이처럼 법제도의 영향을 받는 실질적 양 당사자들 누구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방향은 맞은 편에 서 있지만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라는 책임은 도대체 무엇인지 ▲형사처벌이란 책임을 부과받게 되는 기준은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지난 18일부터 정부가 이틀에 걸쳐 노사정이 참여한 토론회를 열고 막바지 의견수렴에 들어갔지만 오히려 기존 논란의 지점을 재확인한 꼴이었다.
시행령안 검토 과정에 참가했던 이시원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안타깝지만 현재 법률상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며 “고용노동부가 가이드라인을 내놓더라도 법원의 판단을 예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누가’ 책임이 있는지를 묻는 첫 질문부터 매건 사법 판결을 기다려야 될 판국.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 역시 “안전보건인력이 업무를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하라”고 규정하지만, ‘충실하게’ 하는 게 어떤 건지 알 도리가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충실하다는 표현이 법률에 쓰인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처럼 불명확한 표현은 위헌 소지 등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첫 사례부터 곧바로 헌법재판소로 향할 것이란 비아냥도 나오는 까닭이다.
중대산업재해는 사고와 질병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겠는데, 후자의 경우 과연 업무상 인과관계인과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가령, 노동계는 과로사나 심혈관계 질환, 직업성 암을 질병 목록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19일 토론회에 참석했던 김인아 한양대 의과대학 교수처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고, 사업주들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제정 1년 후인 2022년 1월 27일부터 즉시 시행된다. 경영계는 이에 유예기간 특례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령 50~299인 중소규모 기업의 경우 1년, 300인 이상 사업장은 최소 6개월 유예기간 부여가 필요하다는 의미.
아울러, “중소규모 사업장은 인력과 자금 상황이 열악하여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영책임자 의무준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고용 및 경영유지가 한계에 다다른 만큼, 기업의 책임만 규정할 것이 아니라 정부의 구체적 지원규정도 시행령에 담을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한다.
특히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내용엔 ▲업종과 기업규모를 고려한 가이드라인 마련, ▲중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현장컨설팅 및 지도,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관리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 시 지원 등을 담을 것을 촉구했다.
[메가경제=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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