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지배구조 개편 의혹, '적자 폭탄 돌리기' 갈등
[메가경제=이동훈 기자] 두산그룹이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하고, 두산밥캣은 자진 상장 폐지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투자자 및 업계는 이를 두고 사업 시너지 추구가 아닌, 주주가치를 훼손시켜 두산로보틱스의 재무구조를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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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두산타워 [사진=연합뉴스] |
16일 두산그룹과 메가경제 취재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업회사와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회사로 인적분할된다. 신설회사(두산밥캣)는 이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한다. 그리고 두산밥캣은 상장 폐지된다. 두산에너빌리티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사업회사 75주와 두산로보틱스 3주를 갖게 된다. 두산밥캣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두산로보틱스 63주를 받게 된다.
두산은 그룹의 핵심 사업을 ‘클린에너지(Clean Energy)’, ‘스마트 머신(Smart Machine)’, ‘반도체 및 첨단소재(Advanced Materials)’ 등 3대 부문으로 정하고, 계열사들을 사업 성격에 맞는 부문 아래 위치하도록 조정하기 위함이다고 이번 사업 재편안을 설명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두산밥캣의 생산시설 자동화 확대에 따라, 해당 시설에 대한 협동로봇 제품 공급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캡티브 매출 증대도 긍정적 효과로 예상된다”며 “무인화, 자동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두산밥캣은 두산로보틱스의 로봇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어플리케이션을 보다 다양화할 수 있게 되고, 두 회사의 기술을 접목한 신개념 제품 개발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감을 나타냈다.
업종 구분 없이 혼재돼 있는 사업들을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사업끼리 모아서 클러스터화하는 게 이번 사업 재편의 목적이라는 의미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모션 제어 기술 개발, 비전 인식 기술 강화, 고성능 자율주행 기술 개발 등 양사가 개별적으로 진행해오던 R&D(연구개발) 과제를 공동수행함으로써 중복투자를 걷어내고 시너지를 내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KCGF)은 “자본시장법 최대치 악용”이라고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였던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 밑으로 옮긴 뒤 상장폐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소액주주 이익 침해 논란에 휩싸인 것.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는 두산밥캣이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되는 것에 두산밥캣 주주들이 합병비율 적정성을 내세우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두산밥캣이 지난해 매출 9조8000억원, 영업이익 1조4000억원을 낸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매출이 530억원에 불과하고 2015년 설립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산밥캣 주주들로선 하루아침에 흑자 회사 주주에서 적자 회사 주주로 신분이 바뀌게 된 격이다.
알짜 자회사를 내줘야 하는 두산에너빌리티의 주주가치 훼손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두산그룹은 사업 성격에 맞게 계열사 위치를 조정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두산로보틱스는 초고평가 상태”라며 “두산밥캣 주주들은 로봇 테마주 주주가 되거나 현금 청산을 해야 하는 양자 선택을 강요받게 됐다”고 주장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두산밥캣 상장 폐지는 투자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한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고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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