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메이 이어 세 번째 여성, 캐머론 이후 12년 만에 40대 총리
리시 수낵 전 재무부장관 꺾어...2010년 하원 입성 후 통상·외무장관 역임
옥스퍼드대 재학 땐 '군주제 폐지' 주장…브렉시트 반대하다 노선 변경
물가 급등, 파운드화 하락 등 과제 산적...에너지 위기 대책부터 내놓을 듯
현대 보수당의 아이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추앙해온 40대 리즈 트러스 외무부 장관이 예정대로 영국을 이끌 신임 총리로 결정됐다.
영국 보수당은 5일(현지시간) 리즈 트러스(47) 장관이 8만1326표(57.4%)를 얻어 6만399표(42.6%)를 받은 리시 수낵(42) 전 재무부 장관을 꺾고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이번 투표는 8월 초부터 9월 2일까지 우편 또는 온라인으로 치러졌으며, 투표 자격을 가진 보수당원 17만2437명 중 82.6%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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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즈 트러스 영국 차기 총리 내정자가 5일(현지시간) 당선 발표 후 의회 보수당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런던 AP=연합뉴스] |
트러스 총리 내정자는 보수당 대표로서 총리직을 자동 승계하게 된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에선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되며, 다수당이 대표를 교체하면 총리도 바뀐다.
이로써 세계 5위 경제대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에 세 번째 여성 총리가 탄생한다. 그는 6일(현지시간) 여왕 알현 후 영국 총리로 정식 취임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재위 70년간 거쳐 간 총리는 15명으로 늘어난다.
대처, 테리사 메이에 이어 세 번째 여성이자, 2016년 물러난 데이비드 캐머런에 이어 다시 40대 총리 시대를 연다.
리즈 트러스 외무부 장관이 총리를 겸하게 되는 보수당 대표로 선출됨에 따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승부수로 영국 총리 자리에 올랐던 보리스 존슨 총리는 파티게이트와 측근 인사 문제 등으로 결국 3년 만에 불명예 하차하게 됐다.
존슨 총리는 6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사임을 전한 뒤 공식적으로 물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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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영국 총리 리즈 트러스 약력과 역대 영국 총리. [그래픽=연합뉴스] |
트러스 총리 내정자는 러시아·유럽연합(EU) 등에 강경대응하며 강성 이미지를 쌓아왔지만 한편으로는 변신에 능한 정치인이며 경험 많고 성과를 내는 각료라는 평가도 받는 인물이다.
또, 일을 해내는 각료와 홍보에 열중하는 정치인이라는 평이 엇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트러스 내정자는 잉글랜드 리즈 지역에서 공립학교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 머튼칼리지에서 철학·정치·경제(PPE)를 전공했다.
1975년생인 트러스 내정자는 30대 중반이던 2010년 런던에서 동북쪽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노퍽 지역을 지역구로 하원에 처음 입성했다. 당시 캐머런 총리가 백인 남성 위주 의회에 다양성을 확대하려고 노력할 때였다.
2000년까지 셸에서 일한 뒤 두 차례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이 과정을 자양분 삼아 2006년 런던 그리니치 지역 구의원에 당선됐고 4년 뒤 바로 하원으로 가는 데 성공했다.
이후 2012년부터 캐머런과 메이 내각에 등용돼 두루 경험을 쌓았다. 교육부 정무차관으로 출발해서 2014년 환경부 장관, 2016년 법무부 장관을 거쳐 2017년엔 재무부 차관에 이르기까지 내각 주요직을 역임했다.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만나 2000년 결혼한 회계사 남편 휴 오리어리와도 슬하에 10대 두 딸을 두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트러스 총리 내정자는 작년 9월 각료 중 최고 요직으로 불리는 외무장관으로 깜짝 승진했다. 여성으로는 역대 두 번째였다.
외무장관 시절에도 야망은 있지만 아직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곤 했지만 결국은 영국 총리라는 정점에 도달했다.
7월 초 각료들이 줄사표를 던질 당시 존슨 총리 곁을 지키기로 하면서 정치 인생 중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린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는 평가다.
경쟁자인 리시 수낵 전 재무부 장관은 존슨 총리 사임을 촉발했다며 ‘배신자’ 프레임이 찍히는 바람에 표를 많이 잃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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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즈 트러스(오른쪽)와 그의 경쟁자였던 리시 수낵(오른쪽)이 8월 31일 런던의 웸블리 아레나에서 열린 보수당 대표 선거 유세 후 무대에 오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
트러스 내정자는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을 내세워 보수당의 메시지를 강조했는데 이것이 당원들의 마음을 샀다는 분석이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거나 고소득자에 혜택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트러스 총리 내정자는 외무장관을 지내면서 강경하고 단호한 발언을 많이 내놨다.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 회의에서 의장국으로서 중국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강경 대응에 앞장섰다.
유럽연합(EU)에도 브렉시트와 관련해 북아일랜드 협약 파기 카드까지 꺼내 들고 몰아붙였다.
한국과는 브렉시트 후 통상관계 유지를 위한 한-영 자유무역협정(FTA) 협정 체결, 외무장관 회담 등의 인연이 있다.
트러스 내정자는 그동안 몇 차례 신념을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스퍼드대 재학 땐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중도좌파 정당인 자유민주당의 학생회장을 맡아 ‘군주제 폐지’ 등을 외쳤으나 졸업 후 1996년에 보수당에 입당했다.
어릴 때는 좌파 성향의 리즈대 수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를 따라서 핵무기 반대와 대처 전 총리 반대 집회 등에 가곤 했다.
또, 브렉시트 때는 잔류파로 적극 활동했으나 투표 후에는 브렉시트 지지로 돌아섰다.
존슨 총리 때는 경선부터 지지해서 초기 멤버로 입각했다. 이 덕에 수낵 전 장관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경험 많은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하지만 트러스 내정자로서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어 보인다. 전임 보리스 존슨 총리로부터 넘겨받은 과제가 워낙 엄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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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티게이트와 측근 인사 문제 등으로 결국 3년 만에 불명예 하차하게 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AP 연합뉴스] |
현재 영국의 상황은 파업이 계속되고 민심이 흉흉했던 1970년대 후반 '불만의 겨울'에 비유될 정도다.
가계 에너지 요금 급등 대응은 ‘발등의 불’이다. 이에 당장 며칠 내에 기계 에너지 요금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면서 국제 가스 가격이 크게 올랐는데 영국은 발전에서 가스 의존도가 45%에 달할 정도로 높기 때문에 충격이 크다.영국은 물가 상승률이 7월에 이미 10%가 넘었고 내년 초에는 20%대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4분기부터 경기침체 진입을 예고하면서도 금리인상을 계속하고 있다.
실질임금 하락으로 철도, 우편 등 공공부문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잇따라서 사회 기반 서비스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고 있다.
파운드화 가치는 내년 중반엔 달러화와 1대 1 가까이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이다.
트러스 내정자의 대표 공약은 감세를 통한 경제 성장이다.
경쟁자인 리시 수낵 전 재무부 장관이 올린 세율을 도로 낮추고 앞으로 계획도 취소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공공지출은 줄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트러스 내정자는 지난 20년간 정부의 경제 정책이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자신은 급진적인 변화를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러스 내정자의 경제정책 ‘트러스노믹스’는 결국 대규모 차입으로 이어져서 가뜩이나 높은 물가 상승세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브렉시트와 관련해선 기존 대응방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트러스 내정자는 국방비를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3%로 확대하고 우크라이나 재건에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후 첫 통화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브렉시트 관련 북아일랜드 협약 문제로 EU와 대치하는 상황을 풀기 위해 몇 주 내 미국을 방문해 지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난제를 앞에 두고 있지만 트러스 내정자에겐 이를 풀어낼 동력이 큰 상황은 아니다. 보수당원의 선택을 받았지만 이는 전체 유권자의 약 0.3%에 불과하다.
온라인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달 약 3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트러스 내정자가 좋은 총리가 될 것이라는 답변이 12%에 그쳤다.
트러스 내정자가 국내외 난제들을 해결하고 자신이 추앙하던 대처 전 총리 같은 힘있고 성과를 만드는 강력한 리더십의 총리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합뉴스·외신 종합>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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