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인터뷰] 음악인문학의 지평을 여는 박정은 성악가 "알고 보고 들으면 더 매력적인 음악의 잠재력을 느낄 수 있죠"

파워인터뷰 / 박정인 객원 / 2022-09-30 13:14:23

지난 9월 23일 저녁 7시 30분, 송파의 지역서점 송파문고에 ‘지금 이순간’ 노래가 울려퍼졌다. 박정은 교수(바리톤)의 음성이었다. 이내 작은 서점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환호와 손뼉소리가 “와!” 하고 들려왔다.

이날 음악감상의 이해 ‘클래식에서 뮤지컬까지’ 특강을 위해 이곳을 찾은 박 성악가는 직접 가슴을 울리는 바리톤 음색을 들려주며 음악의 진면목을 전했다.
 

▲ 박정은 성악가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순간’ 한 소절을 부르며 단어의 의미에 따라 달라지는 호흡법을 설명하고 있다.


박정은 성악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신일고등학교를 마치고 이탈리아에서 성악과 지휘 공부를 하였다. 그는 다양한 무대에서 실력있는 성악가로서 대중을 만나기도 하지만 백석예술대학교와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상한 스승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음악을 향유하는 대중에게 음악인문학을 널리 알리려는 음악계의 아웃사이더이기도 하다. 비싼 지식인 전문음악가들만의 이야기를 대중에게도 가감없이 나누어주기 위해 자주 무대에 내려온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입체적으로 보게 하기 위함이다.

이날 특강에서는 발달장애를 가진 분들이 대거 참석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경계없이 음악 앞에 하나가 되는 감동적인 시간을 가졌다.

 

박정은 성악가는 무대 계단 아래로 내려와서 가사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그에 따라 곡의 의미를 해석하고 노래를 들려주며 장르와 역사를 쉽게 설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같은 박 교수의 노력에 영향력을 준 분은 지휘자 금난새라고 한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클래식을 대중에게 설명하며 직접 노래를 불러주니 대중은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날도 박 성악가는 이날 지휘자가 오른손으로 주는 포인트와 왼손으로 주는 포인트를 알려주며 베토벤 ‘운명’의 지휘내용을 설명했다. 그간 신기하게만 바라봤던 지휘자 정명훈의 행동들이 어떤 의미인지 해석되자 참석자들은 “와!” 하고 소리쳤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순간’이라는 곡의 내용과 아리아의 한 소절 한 소절을 가사를 해석하며 불러주기도 했다. 오페라 가수와 뮤지컬 배우가 어떻게 호흡을 조절하며 노래를 부르는지를 이해시킨 뒤 음악을 부분적으로 감상하도록 했다. 가을 밤에 그 뜻과 멜로디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 음악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박정은 성악가. [박정은 제공]

박정은 성악가는 소리로 일으키는 감동이라고 하더라도 무대에서 음악가들이 어떻게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하고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지 섬세하게 인문학적으로 설명해준다. 그러면 우리는 작곡가의 의도를 입체적으로 잘 경청할 수 있게 되고 실연자가 부여한 의미도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음악을 통해 함께 울고 웃으며 관객의 마음 속 고름들도 닦아준다.

세월이 흐를수록 음악은 더욱 더 대중의 마음과 이해를 갈구한다. 이때 음악가의 역할도 변모되어야 한다. 음악가가 세상을 살펴서 곡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제대로 전달되는 몫은 실연자들의 노력에 달려있다.

보다 깊은 이해와 감상을 위해서는 실연자들의 인문학적인 해석을 전달하는 박정은 성악가와 같은 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청중 누구나가 쉬운 곡은 물론 어려운 곡에도 감동적으로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은 성악가는 음악을 듣는 팁으로 세 가지 정도를 설명해 주었다.

첫째, 교향곡은 오케스트라의 편성 구조를 이해하고 지휘자의 동선(지휘 방향)을 따라 가면 각각의 악기들의 테마를 들을 수 있다. 둘째, 오페라는 관람 전 줄거리를 읽어보고 등장인물들의 성격들을 알고 감상하면 극 전개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셋째, 뮤지컬 또한 오페라처럼 줄거리와 등장인물의 성격을 이해하고 각 넘버를 들을 때 인칭, 시제, 위치 등의 관계를 가사와 접목하면 감상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 참석자들이 특강을 듣고 난 뒤 만족스러워하며 박정은 성악가와 즐거움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정은 성악가는 악기와의 연계를 설명하며 음악이 인간의 장벽 없는 소통을 지향하는 목적도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든 음악이 장르와 상관없이 평등하게 아름답다고 말했다.

악기는 종과 북과 같이 신호와 의미를 전달하기도 하고 불행과 악귀로부터 보호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러시아나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마녀나 트롤(야산에 사는 신)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썰매에 벨을 달고 다녔다. 아기들에게 벨이나 래틀 종류를 주는 것은 아기가 그 소리를 즐기며 놀 수 있도록 하는 목적 외에 요정이 아기를 훔쳐가지 못하게 하는 믿음도 있었다.

악기는 인간의 본능적인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추구의 결과다. 축제나 감상의 목적으로 음악이 사용되기 위해 목소리로 다 나타낼 수 없는 빈 공백을 채우는 대상이 되기도 하고 신과의 소통을 통한 치유용으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집단 노동이나 개인의 일을 할 때 리듬에 맞춰 작업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면 능률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배계층에 대한 존경과 복종을 표현하기 위한 기회로 의식과 축제를 행하거나 권력자 자신의 권위를 위하여 악기를 동원하거나 충성의 상징적 대상으로 악기를 모시기도 하였다.

인간은 유일하게 리듬을 의식하는 동물로, 발 구르기나 손뼉치기로도 음악을 하고자 하는 본능을 발휘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악기라고 하면 클래식 악기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여 왔다. 그러나 전세계는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다양한 악기를 가지고 있으며 악기마다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박정은 성악가는 스스로 목을 악기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여러 악기를 이해하고 조율할 수 있는 지휘자로서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대중들에게 음악감상의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사랑하게 해주는 진정한 이야기꾼이다.

 

“정말로 음악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작곡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우선 중요합니다. ‘이 사람이 말하려던 게 뭐였을까. 이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이 음악을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는 거지요. 그리고 저와 같이 실연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서 표현할까 하는 고민을 들으면 좀 더 무대가 잘 보일 겁니다.”

박 성악가가 조언하는 한 단계 높은 음악 듣기 요령이다.

“모든 음악의 매력은 연주자마다 이해하는 게 다르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관객들도 연주자들의 음악을 비교하면서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더 좋아하는 걸 찾는 과정에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음악의 취향과 맛을 찾아갈 수도 있죠. 알고 보고 들으면 더 매력적인 음악의 세계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

과연 박정은 성악가의 강연 이후 다시 듣는 ‘돈 조반니’는 예전과 다르게 해학적으로 잘 들린다.
 

[메가경제=글·사진 박정인 객원기자·단국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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