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적응증 확대 좌절…기술적 성과보다 상업화 역량 중요성 부각
[메가경제=김민준 기자] 국산 신약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해외 시장 진출까지 추진했던 동화약품의 항생제 '자보란테정'이 판매 부진 끝에 시장에서 퇴장한다. 적응증 확대와 글로벌 사업화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면서 결국 품목허가 자진취하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신약 개발의 기술적 성공이 반드시 상업적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현실 속에서 국내 제약업계의 연구개발(R&D) 전략과 사업성 평가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 |
| ▲ 동화약품의 '자보란테정'이 2027년 5월을 끝으로 국내에서 사라진다. [사진=AI] |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동화약품이 퀴놀론계 항생제 ‘자보란테정(자보플록사신D-아스파르트산염수화물)’의 공급 중단을 보고했다.
공급 중단 사유는 판매 부진으로 인한 생산 중단이며, 오는 2027년 5월 자진 취하를 계획 중이다. 자보란테정은 2015년 3월 만성폐쇄성폐질환의 세균성 급성 악화(ABE-COPD) 치료제로 품목허가 획득했으며, 2016년 국내 출시됐다.
계획대로 품목허가 자진취하가 이뤄질 경우 허가 획득 약 12년 2개월 만에 국내 시장에서 공식적으로 철수하게 된다.
자보란테정은 ABE-COPD 호전 지표에서 기존 치료제 7일 요법 대비 신속한 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등 기존 퀴놀론계 항생제 대비 우수한 항균력과 안전성을 인정받아 보건복지부가 인증하는 ‘보건 신기술’로 선정되고 ‘대한민국신약개발상’을 수상한 바 있다.
동화약품이 자보란테정의 공급 중단 및 품목허가 취하를 결정한 주요 요인으로는 ‘사업성 부족’이다. 국내외 사업화와 적응증 확대 등을 추진했으나, 사업성 저조를 사유로 중간에 연구를 중단하거나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화약품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자보란테정의 적응증 확대는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지역사회획득성 폐렴 환자 대상 임상 3상 계획 허가를 받아 추진했으나, 2019년 8월 시장성 부족을 사유로 중단했다.
해외 진출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중국, 멕시코, 중동·북아프리카 등으로 활발히 이뤄졌으나, 2019년 9월 사업성 미약을 이유로 북경인턴림스와의 계약을 해지한 것을 시작으로 2020년 2월 판매허가의 지연으로 수익성 미흡을 사유로 Novosci Healthcare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앞서 동화약품은 2016~2018년 동안 오스텔 레버토리즈社와 남아공 지역 대상 라이센싱 아웃 MOU, Novosci Healthcare社와 중동·북아프리카 12개국 라이선스 및 공급계약, 북경 인터림스와 중국 라이선스 및 공급(판매)계약, Laboratorios Silanes社와 멕시코 라이선스 및 공급계약 등을 체결했다.
2026년 반기보고서 기준 남아있는 주요 자보란테정 해외계약은 Laboratorios Silanes社와 체결한 멕시코 라이선스 및 공급계약이 유일하다. 다만, 동화약품은 자보란테정 해외 계약과 관련해 사업성과 계약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혀 지켜볼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자보란테정의 생산실적은 2020년 14억원대를 기록한 이후 2023년까지 2억~4억원대에 머물렀으며, 2024년부터는 생산실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생산실적은 실제 판매액과는 구분되는 지표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자보란테정 출시 이후 적응증 확대와 국내외 사업화를 통해 시장성을 확대하고자 했으나, 추가 적응증 개발 및 해외 사업이 당초 기대한 수준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장기적인 사업 지속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게 됐다”며 “판매 실적과 향후 사업성, 생산 효율성 등을 고려해 생산 중단 및 품목허가 자진취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약업계 일각에서는 자보란테정의 시장 철수를 단순한 판매 부진이나 신약 개발 실패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나온다. 신약 개발 당시 인정받은 기술적 성과와 실제 시장에서의 사업성은 별개로 평가할 필요가 있으며, 수익성에 따른 연구개발 및 사업 전략의 조정 역시 기업의 경영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여재천 YJC컨설팅코리아 대표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적 성과가 반드시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임상시험을 통해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하고 품목허가까지 획득하더라도 실제 시장에서 충분한 처방 수요와 매출을 확보하지 못하면 장기적인 사업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자보란테정처럼 기술력을 인정받은 국산 신약이 판매 부진으로 시장에서 철수하는 사례를 단순한 신약 개발 실패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 신약 개발 당시의 기술적 성과와 이후의 사업화 성과는 구분해서 평가해야 하며, 시장환경 변화에 따른 사업 철수 역시 기업의 연구개발 및 경영전략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여 대표는 과거 금성사가 생산했던 냉장고를 예로 들며 산업과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기존 제품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기술 발전과 소비자 수요 변화에 따라 더 나은 제품이 등장하는 만큼, 특정 제품의 생산 중단 자체보다 기업이 변화된 시장환경에 어떻게 대응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취지다.
여 대표는 "기업은 R&D 경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영을 하는 것"이라며 신약 개발 자체가 기업 경영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약 개발도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수단인 만큼, 연구개발의 지속 여부 역시 사업성과 향후 성장 가능성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신약의 사업성을 평가할 때 임상적 가치와 기술적 차별성뿐 아니라 시장 규모, 경쟁 의약품, 추가 개발비, 상업화 투자 부담, 실제 현금창출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적응증 확대와 해외 라이선스 계약도 시장 확대 가능성만으로 판단하기보다 추가 투자 대비 기대 수익과 실질적인 현금 유입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러한 사업성 중심의 판단은 개별 신약의 개발 지속 여부를 넘어 제약사의 연구개발 투자와 주력 사업을 재편하는 문제로도 이어진다.
여 대표는 “기업들이 기존 연구개발 과제를 재검토하거나 사업 방향을 조정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반드시 실패나 후퇴로 평가할 문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경영적 선택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약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과 임상·사업화 경험은 개별 제품의 판매 지속 여부와 별개로 평가할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의 개발 성과에만 머무르기보다 시장환경에 맞는 새로운 연구개발 전략과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여 대표는 “결국 자보란테정의 시장 철수는 신약 개발의 기술적 성공이 기업의 사업적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며, 국내 제약업계에 신약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를 남겼다”고 밝혔다.
동화약품 역시 자보란테정의 개발 및 사업화 경험을 향후 연구개발 전략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품목허가 자진취하로 사업을 마무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새로운 연구개발 과제의 선정과 사업성 평가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신약은 연구개발 성과가 실제 상업적 성과로 이어지기까지 임상적 가치뿐 아니라 시장 규모와 경쟁환경, 개발 비용, 허가 및 유통 여건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는 자보란테정 출시 이후 적응증 확대 연구와 해외 라이선스·공급계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품의 시장 확대를 추진해 왔다”며 “자보란테의 개발 및 사업화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을 향후 연구개발 과제 선정과 사업성 평가에 반영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