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창업주 故 신격호 명예회장을 재조명하는 기념관을 열었다.
고인이 가장 애착을 가졌던 롯데월드타워에 마련됐고, 조만간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해 신 전 회장의 생애와 롯데그룹의 역사에 대한 좋은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롯데는 지난 1일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장녀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송용덕·이동우 롯데지주 대표 및 4개 부문 BU장 등 임직원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열었다.
기자가 기념관을 찾은 날은 11월 11일, 이 날은 롯데월드타워가 최종 건축허가를 취득한 날로 더 의미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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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초창기 집무실을 재현한 기념관 공간을 찾은 신동빈 롯데 회장 (사진 = 롯데그룹 제공) |
식민지 청년, 꿈을 안고 현해탄을 건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신격호 명예회장은 스물한 살이 되던 1941년 부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당시로 치면 월급쟁이 석달치 봉급을 들고 연고도 없이 건너간 식민지 청년은 고학을 계속한다.
경남 울주군의 그닥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10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보통학교를 거쳐 울산농업고등학교도 졸업했으니 당시로선 꽤 고등교육을 받은 셈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를 계속하려고 했던 것은, 개화된 세상문물에 조금 더 빨리 눈을 뜬 큰아버지의 지원 덕이었다고 한다.
1946년 와세다대학 화학과를 졸업하고, 청년 신격호는 일본에서 본격적인 창업 전선에 뛰어든다.
지금의 ‘롯데’가 처음 설립된 것은 1948년이다.
모국으로 돌아와 한국에 주식회사 롯데가 설립된 것은 1958년이고, 특히 1967년엔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식품산업부터 본격적인 모국투자가 시작된다.
롯데그룹은 이후 식품, 음료, 유통, 건설, 화학, 호텔·관광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 폭을 넓힌다. 기존 기업을 인수하기도 했고, 새 기업을 세우기도 하며 한국 경제사에 발자국을 남겨왔다.
지난 2020년 1월 19일 신격호 명예회장의 별세는 이 역시 한국 경제사, 기업사에 의미가 크다. 주요 기업집단 창업주 세대가 모두 역사 속으로 스러지고, 다음 세대의 역사가 쓰여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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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이 바라봤을 시점에서 집무실 책상 모습. 롯데월드 등 관관산업에 대한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다. |
한일 아우르는 경제 거인의 일상은 소박
롯데월드타워 5층에 약 680m² 규모로 마련된 ‘상전 신격호 기념관’은 다양한 콘텐츠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창업주와 롯데의 역사를 꼼꼼히 디지털 미디어 자료로 구비해 놓았다.
청년 고학생 시절 롯데를 창업하는 과정에서의 6가지 주요 일화를 일러스트 영상으로 구현했고, 김정기 작가의 라이브 드로잉으로 롯데의 발전상을 대형 스크린으로 감상할 수도 있다.
현장 경영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은 디지털 액자로 전시됐고, 롯데에 대한 옛 신문기사, 롯데가 제작한 다양한 광고, 사사와 사보 역시 키오스크로 열람할 수 있다.
기념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과거 초기 집무실을 재현한 공간이다. 신 명예회장의 발자취를 좀 더 가까이에서 느껴볼 수 있다.
벽에는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리를 추구한다’는 뜻의 사자성어 거화취실(去華就實)의 표구가 걸려 있다. 또 한 켠엔 한국 농촌의 풍경이 담긴 그림이 걸려 있다. 고인의 취향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집무실 책상 위에는 평소 사용하던 문구류 외에도 신 명예회장이 만년 가장 관심을 쏟았던 관광산업에 대한 당시 자료들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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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지 매입부터 완공·개관까지 30년 세월이 걸린 롯데월드타워는 디자인 계획만 해도 수 없이 바뀌었다. |
신격호 명예회장의 30년 꿈, 한국을 대표할 랜드마크 세우기
지난 2017년 123층, 554.5m 높이로 올라 선 롯데월드타워는 당분간 한국의 최고층 마천루기록을 보유할 것으로 보인다.
근대화·산업화가 시작된 이후 한국 땅에 처음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고층빌딩들은 ‘나름’ 치열한 높이 경쟁을 벌여왔는데, 의외로 최고층 빌딩 타이틀을 수성하는 기간들이 짧았다.
그동안 최장 1위 기록은 대표적인 마천루이자 여의도의 상징이기도 했던 63빌딩으로 1985년부터 2003년까지 18년간 타이틀을 유지했다.
250m에 조금 못 미치는 63빌딩보다 더 높은, 300~400m 수준의 초고층 빌딩 건립 계획이 1990년대 연이어 수립됐지만,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백지화됐다.
2000년대 들어 초고층 주상복합건물들이 들어서며 63빌딩이 누리던 기록은 깨지지만 역시 300m 수준. 롯데월드타워가 당분간 한국 최고층 빌딩 자리에서 물러나기 어려울 거란 예상의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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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모형과 함께 벽면을 가득 메운 이름들은 100일 이상 타워 건설에 참여했던 모든 노동자들의 이름이다. |
롯데월드타워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30년 기대가 녹아 있다.
롯데그룹이 인근 부지 8만7603제곱미터를 사들인 건 지난 1988년이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 고궁만 보게 할 것인가”라며 “한국에도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필요하다”고 생전 외쳤다.
하지만 롯데월드타워를 짓는 건 녹록지 않은 과정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롯데물산이 최종 건축허가를 취득한 건 지난 2010년 11월 11일, 완공 후 오프닝한 시점은 2017년 4월이다.
롯데월드타워가 한창 공사 중이던 당시, 신격호 명예회장은 구순을 지나 망백도 넘긴 고령이었다. 하지만 수시로 현장을 찾아 휠체어에 앉은 채 공사 진행에 대한 보고를 받는 모습이 기록 사진으로 남아 있다.
이와 함께 또 눈에 띄는 전시물은 기념관 한 쪽 벽을 꽉 채운 수많은 이름들이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롯데월드타워와 인근의 스카이라인 풍경이 음영으로 뚜렷하다.
8000여명에 달하는 이름은 타워를 만든 사람들이다. 롯데물산과 롯데건설 임직원은 물론, 타워 공사 현장에서 100일 이상 근무한 노동자 7500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외국인 노동자 45명의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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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신격호 명예회장은 90대 중반 고령에도 수시로 롯데월드타워 건설 현장을 찾았다. |
기업의 사회적 역할, 다양한 방면에서 꽃 피우다
기념관의 말미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뜻을 이어 롯데가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들에 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우수한 자질이 있음에도 어려운 환경으로 고학하는 학생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을 돕기 위한 롯데장학재단, 롯데복지재단을 설립하는가 하면, 고향인 울산·울주 지역 발전과 복지사업에 기여하기 위해 사재를 출연해 롯데삼동복지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개관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신동빈 롯데 회장 (사진 = 롯데그룹 제공) |
신동빈 롯데 회장은 개관 행사의 기념사에서 “신격호 명예회장님께서는 대한민국이 부강해지고 우리 국민이 잘 살아야 한다는 굳은 신념으로, 사회와 이웃에 도움이 되는 기업을 만들고자 노력하셨다”며 “롯데는 더 많은 고객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기업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롯데그룹은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롯데벤처스는 ‘1세대 글로벌 청년 창업가’라고 할 수 있는 창업주의 도전 정신을 잇고자, 우수한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3일에는 선발된 스타트업 13개사를 대상으로 총 5억원 규모의 지원금을 수여하는 행사를 열었다.
롯데벤처스는 최대 25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
또한 3일 사단법인 한국유통학회는 ‘제3회 상전유통학술상’ 시상식을 열고, 유통학 관련 연구를 통해 유통정책과 산업 발전에 공헌한 학자들을 선발해 상금을 수여했다.
이 학술상은 지난 2019년 12월, 한국 유통산업의 선구자인 신격호 창업주의 공적을 기리고, 우수한 유통학 연구자를 발굴 및 양성하기 위해 제정됐으며 롯데그룹이 후원한다.
롯데장학재단은 간호사 자녀 110명에게 총 1억2000만원 규모의 나라사랑 장학금을 수여했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간호사들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취지다.
[메가경제=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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