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 총리 결정 때까지 현직은 유지…후임자 경쟁 본격화
청와대, 아베 사의에 “아쉽다...새 총리와 우호증진 협력”
[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병 악화를 이유로 13년여만에 또다시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정치적 유산을 남기지 못한 채 다시 건강문제로 퇴장하게 됐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에서 NHK로 생중계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의 악화로 더 이상 총리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며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신약 치료 예정이지만 병세 호전을 장담할 수 없어 퇴진을 결심했다는 것. 다만 즉각 사임하지 않고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직을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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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 |
그는 올해 6월 건강 검진에서 궤양성대장염 재발 징후가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고 이달 17일과 24일 게이오대(慶應大)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것을 계기로 24일 사임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26일 내각을 출범한 후 7년 8개월 넘게 연속 재임하며 무소불위의 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새로 썼다. 그의 총리 재임 기간은 1차 집권기까지 포함해 8년 8개월을 넘겼다.
아베 총리는 앞서 전후 최장 총리, 통산 최장 재임 기록을 새로 쓴 데 이어 지난 24일 연속 재임 최장 기록을 추가했다. 사임을 발표한 이날까지 재임기간은 280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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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아베 총리 집권기간. [그래픽= 연합뉴스] |
2012년 12월 26일 재집권해 내각을 발족한 이후 이날까지 2799일 동안 연속으로 총리로 재임, 1964년 11월 9일부터 1972년 7월 7일까지 2798일 동안 집권한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1901∼1975) 전 총리를 넘어 연속 재임 최장기록을 달성했다.
제1차 아베 내각(2006년 9월 26일∼2007년 9월 26일·366일)까지 합한 통산 재직 기간은 28일까지 3169일에 달한다.
그는 2006년 9월 만 52세의 나이에 전후 최연소 총리로 취임했다가 1년 만에 조기 퇴진했으나 5년 뒤 재집권한 뒤 '아베 1강'(强)이라고 불리는 독주 체제를 유지하며 무소불위의 정권을 지켜왔다. 하지만 또 다시 건강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중도에 좌초하는 모양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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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총리 정치 역정. [그래픽= 연합뉴스] |
아베 총리는 “13년 전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의 악화로 불과 1년 만에 돌연 총리직을 사임하게 돼 국민 여러분에게 큰 불편을 끼쳐드렸다. 그 후 다행히도, 새로운 약이 들어 컨디션에 만전을 기하고,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데다 총리의 중책까지 맡게 됐다”며 “지난 8년 가까이 지병을 다스리면서 아무런 지장 없이 총리직을 전력투구할 수 있었다”고 그동안을 상기했다.
이어 “그러나 올해 6월 정기검진에서 재발 징후가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 후에도 약을 사용하면서 전력을 다해 직무에 임해 왔지만, 지난달 중순부터 컨디션에 이변이 생겨 체력을 상당히 소모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8월 초순에는 궤양성 대장염의 재발이 확인됐다. 향후 치료로는 현재의 약에 더해 더 새로운 약물을 투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또 “이번 주 초 재검진에서는 투약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어느 정도 지속적인 처방이 필요해 예단하기 어렵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를 내는 것이다. 7년 8개월 성과를 내기 위해 혼신을 기울였다. 질병과 치료로 체력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고통 속에서 소중한 정치적 판단을 그르치고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며 “국민 여러분의 부름에 자신있게 부응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이상 총리직에 계속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총지직을 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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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도쿄의 총리 관저로 들어가고 있다. [도쿄 로이터=연합뉴스] |
아베 총리는 이 시기에 사임을 발표한 이유에 대해서는 “최대 과제인 코로나19 대응에 방해가 되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한 달 정도 그 마음뿐이었다. 고민을 거듭했지만 4월 이후 감염확산이 감소 추세로 돌아섰고, 겨울을 대비한 대응책을 정리할 수 있어서 새로운 체제로 이행한다면 이 타이밍밖에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2기 집권 기간에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도록 안보법제를 변경했고 개헌을 필생의 과업으로 꼽고 전쟁을 원하지 않는 많은 국민들과 주변국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추진해왔다. 하지만 여론 악화와 코로나19 확산 등의 영향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납치문제 해결, 러일 평화조약 체결, 헌법 개정 등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통한(痛恨)의 극치’ ‘단장(斷腸·장이 끊어짐)의 심정’으로 표현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의 지지를 받았음에도 임기를 1년 남겨두고 각종 정책이 실천 중이고, 코로나19 재난 속에서 물러나게 된 데 대해 국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납치문제를 이 손으로 해결하지 못한 것은 통한의 극치다, 러시아와의 평화조약 체결과 헌법개정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직을 떠나게 된 것은 ‘단장(斷腸)의 심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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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일본 총리 재임기간. [그래픽= 연합뉴스] |
마지막으로 아베 총리는 “다음 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끝까지 확실히 그 책임을 다하겠다”며 당장 사임하지 않고 후임 총리가 정해질 때까지는 현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치료를 통해 어떻게든 컨디션에 만전을 기하고, 새로운 체제를 한 명의 의원으로서 떠받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끝을 맺었다.
재집권 후 7년 8개월이나 이어진 장기 정권치고는 아베 정권의 성과는 빈약하게 느껴진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정권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 총리가 재집권한 최근 수년 사이에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빠르게 진행됐다.
그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직접 참배해 국제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한국 법원의 징용 판결에 반발하는 등 역사 문제에 관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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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17일 오후 도쿄 게이오대학 병원에서 검진을 마친 뒤 자택으로 돌아가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
징용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대(對)한국 수출규제도 전격 실시했으나 성과는커녕 오히려 한국내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한국의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경제면에서는 '아베노믹스'를 앞세워 디플레이션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최근 일본의 성장률은 더욱 급전직하다.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연율 기준 27.8% 감소해 전후 최악을 기록했다.
일본의 영광을 재현하는 무대로 삼으려던 도쿄올림픽의 개최도 코로나19로 올해 불발되면서 끝내 지켜보지 못하고 사임하게 됐다. 도쿄올림픽은 내년으로 1년 연기됐지만 현재로서는 그마저도 개체가 불투명한 상태다.
올해들어 아베 정권은 코로나19 확산에 갈팡질팡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내각의 지지율은 재집권 후 두 번째로 낮은 36.0%(교도통신)까지 하락했다. 마이니치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건강 이상설과 관련해 아베 총리가 즉시 또는 연내에 퇴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50%에 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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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후임 총리 후보군. [그래픽= 연합뉴스] |
아베 총리의 사임 표명으로 8년만에 집권 자민당 총재 교체가 기정사실화하면서 후임 총리 후보군에 대한 관심과 향후 한일 양국에 어떤 변화를 미칠지 주목된다.
후임 총리 후보군으로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상,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등이 꼽힌다.
의원 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전체 의석의 과반을 점한 자민당 총재가 사실상 일본 총리가 된다.
아베 총리가 물러나고 새로운 총리가 취임하면 한일 양국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주목된다. 하지만 후임 총리 후보군으로 꼽히는 인물들 역시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인물들인데다 한국 내 강제동원 배상 판결 등 입장차가 여전해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청와대는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건강 문제로 전격 사의를 표명한 것과 관련해 "아베 총리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는 입장을 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로서 여러 의미있는 성과를 남겼고, 특히 오랫동안 한일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 온 아베 총리의 급작스러운 사임 발표를 아쉽게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강 대변인은 이어 "우리 정부는 새로 선출될 일본 총리 및 새 내각과도 한일 간 우호 협력관계 증진을 위해 계속해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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