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세 용의자 현장 체포...“특정 단체에 원한…아베와 연결돼 있다고 믿어”
용의자, 올해 5월 제조업체 퇴직 후 무직 상태…사제 총으로 범행
아베 신조(67) 전 일본 총리가 유세 도중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참의원 선거를 이틀 앞둔 가운데 벌어진 전직 총리 피격 사건에 일본 사회는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일본 최장기 총리를 지낸 아베 전 총리는 8일 오전 11시 30분께 일본 나라현 나라시 긴테쓰선 야마토사이다이지(大和西大寺)역 주변에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가두 유세를 하던 도중 40대 용의자가 쏜 총에 맞고 급히 구급차와 닥터헬기로 병원에 후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아베 전 총리는 두 차례(90대, 96~98대)에 걸쳐 총 8년 9개월 총리로 재임한 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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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우익의 상징적 인물이자 역대 최장기간 총리에 재임했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8일 일본 나라현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를 하던 중 한 남성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사진은 2012년 12월 26일 총리실에서 첫 기자회견을 하는 아베 전 총리의 모습. [도쿄 AP=연합뉴스] |
흰색 와이셔츠에 감색 자켓 차림의 아베 전 총리는 현장에 도착해 수백명의 청중앞에서 연설을 시작한지 10여분만에 용의자가 등뒤 7~8m 떨어진 거리에서 쏜 총에 맞고 쓰러진 뒤 심폐정지 상태에 빠졌다.
연설을 행한 곳은 나라 시내에 있는 터미널역 중 하나로, 선거 때면 자주 연설장소로 이용되는 곳이다.
일본 NHK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구급차와 닥터헬기를 이용해 낮 12시20분께 가시하라시에 위치한 나라현립의과대학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응급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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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운데)가 8일 서부 나라현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 도중 총격을 받고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 [교도통신 제공 영상 캡처=연합뉴스] |
나라현립의대병원 의료진은 오후 6시 넘어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베 전 총리가 오후 5시3분에 사망했다며 “병원 도착 시에 이미 심폐정지 상태였다”고 밝혔다.
의료진은 총상으로 인해 목 2곳과 심장, 가슴의 대혈관에 손상이 있었다면서 지혈과 대량 수혈을 통한 치료를 계속했지만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병원에서 부검을 실시해 사인 등을 자세히 조사할 예정이다.
현지 경찰은 총격사건 직후 현장에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41)를 체포해 조사 중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검은 테이프가 감겨 있는 총을 압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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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전 총리 피격 당시 상황. [그래픽=연합뉴스] |
나라현 경찰은 이날 밤 기자회견에서 용의자가 착용하고 있던 숄더백 외에 소지품으로 스마트폰과 지갑을 압수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건에 사용된 총을 이 가방에 넣어 전철로 현장까지 가져온 것으로 보고 자세한 상황을 수사하기로 했다.
경찰은 아베 전 총리가 총에 맞은 현장에서 여러 조각의 금속편을 발견했다며 앞으로 총탄 여부를 자세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나라현 경찰본부는 “경호를 책임지는 경찰로서 아베 전 총리가 유세 중 사망한 것을 중대하게 받아들이고, 경호·경비 태세에 문제가 있었는지 확인해 문제가 있으면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용의자로 보이는 남자는 차도를 사이에 두고 연설 현장에서 약 15m 떨어진 보도 위에 어깨띠가 있는 검은 가방을 하고 회색 반팔 셔츠차림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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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현지시간) 일본 나라현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총기로 저격한 남성이 범행 직후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를 사망케 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는 전직 해상자위대원으로 3년간 장교로 복무하다 2006년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 로이터=연합뉴스] |
청중이 촬영한 동영상에는 전직 총리를 향해 박수를 치는 그의 모습도 담겼다.연설이 시작된지 2분여 뒤 거무스름한 통 같은 것을 손에 쥔 용의자는 차도로 들어가 아베 전 총리의 배후 7~8미터까지 다가갔다. 그러나 그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갑자기 ‘탕!’ 하며 불꽃을 터뜨리는 듯한 소리와 충격이 전해졌고, 주위에 흰 연기가 퍼졌다.
아베 전 총리는 연설 무대에서 선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다시 ‘탕!’, 간발의 차이로 두 번째 총성이 울렸다. 아베 전 총리는 순식간에 무대 위에서 사라졌다. 쓰러진 것이었다.
한 중년남성이 쓰러진 아베 전 총리의 심장을 힘껏 마사지했고, 용의자는 바로 근처의 노상에서 수명의 경호원들에 의해 도로 바닥에 제압당했다. 용의자가 저항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살인미수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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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전 총리 총격 용의자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수제 총의 모습. [NHK 영상 캡처] |
용의자는 조사관의 조사에 대해 담담하게 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현 경찰은 기자회견에서 총격 용의자는 “내가 한 일이 틀림 없다”며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용의자가 “특정 단체에 원한이 있는데 아베 전 총리와 그 단체가 연결돼 있다고 믿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용의자는 또 아베 전 총리가 사건 현장에서 연설한다는 사실은 자택 등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파악했으며 전철로 사건 현장에 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NHK에 따르면 야마가미는 경찰 조사에서 “아베 전 총리에게 불만이 있어서 죽이려고 했다”면서도 “정치 신조에 대한 원한은 아니다”라고 말했다.나라현 경찰본부의 수사 1과장은 “야마가미 용의자가 특정 단체에 원한이 있어 아베 전 총리 가 이와 연관이 있다고 믿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등의 진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의 보도와 나라현 경찰의 발표를 종합해보면 야마가미 용의자는 특정 종교 단체에 원한이 있었고 아베 전 총리가 이 단체와 관계가 있다는 믿음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나라현 경찰은 총격범이 사용한 총에 대해 “외형으로 보면 분명히 사제 총으로 길이 40㎝, 높이 20㎝였다”며 “용의자의 자택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사건에 사용된 것과 유사한 사제 총을 몇 정 압수했다”고 밝혔다.
용의자는 “권총과 폭발물을 지금까지 여러 개 제조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라현 경찰은 형사부장을 수석으로 하는 90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일본 방위성 관계자에 따르면 용의자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3년간 해상자위대에서 근무했다.
교도통신은 오사카부의 인력 회사 관계자를 인용해 야마가미가 2020년 가을부터 간사이 지방에 있는 제조업체에 근무했지만, 올해 4월 ‘힘들다’며 퇴직을 신청해 5월에 그만뒀다고 보도했다. 나라현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는 현재 무직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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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전 총리 약력과 피격 위치. [그래픽=연합뉴스] |
이날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전 총리는 집권 자민당 내 대표적 강경파 인사로,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이끌었다.
아베 신조는 아베 신타로 전 일본 외상의 차남으로 1954년 9월에 태어났다. 그의 외조부는 정치 명문 가문의 기시 노부스케로, 패전 후 전범 용의자였다가 총리를 지내기도 한 인물이다.
아베 전 총리는 2006년 52세에 전후 최연소 총리로 취임했다가 1년 만에 조기 퇴진했지만 2012년 재집권에 성공해 ‘아베 1강’(强)이라고 불리는 독주 체제를 유지하다 2020년 9월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악화로 사임했다.
퇴임 후에도 자민당 내 최다 파벌인 아베파를 이끌며 후임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며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그의 동생 기시 노부오는 방위상이다.
일본 보수·우익 세력의 구심점이었던 그는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개헌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고 총리 재임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했으나 여론 악화와 2020년 초 코로나19 확산 등의 영향으로 뜻을 이루진 못했다.
경제 측면에서는 잃어버린 20년을 회복하겠다면서 막대한 돈풀기를 특징으로 하는 ‘아베노믹스’를 앞세웠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베 전 총리의 집권 기간 한일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역사교과서 왜곡에 나선 것은 물론, 2019년 6월엔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노동자 피해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돌연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가해 한일 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몰아가기도 했다.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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