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엔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자신의 ‘전두환 옹호 발언’을 사과하기 위해 광주 5·18민주묘지를 방문했으나 항의하는 5·18 단체·대학생 등에 가로막혀 참배단이 있는 추모탑 먼발치에서 고개를 숙이고 사과문을 낭독한 채 돌아서야 했다.
윤 후보는 10일 오후 4시 20분께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에도 우산을 쓰지 않은 채 검은색 정장 차림에 마스크를 쓰고 5·18민주묘지 ‘민주의 문’ 앞에 도착했다. 방명록에는 ‘민주와 인권의 5월 정신 반듯이 세우겠다’고 적었다.
이날 광주 방문은 논란이 된 지난달 19일 해당 ‘전두환 옹호 발언’ 이후 22일 만에 이뤄졌다.
![]() |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5·18 민주묘지 추모탑에 헌화·분향하려 했으나 반대하는 시민들에 가로막혀 추모탑 입구에서 묵념으로 참배를 대신했다. [광주=공동취재/연합뉴스] |
윤 후보는 항의하는 시민들에 둘러싸여 제 속도로 진행하지 못하면서 민주의 문에서 약 170m정도 걷는데 20여분이나 걸려야했다. 결국 분향과 헌화를 하는 추모탑을 40여m 가량 앞두고 참배광장에서 걸음을 멈춰야 했다.
윤 후보의 방문 소식을 접한 5·18단체 관련 시민들은 이날 오전부터 우비를 입고 추모탑을 둘러싸며 윤 후보의 방문에 격렬히 항의했다. 분향소 앞에는 오월어머니회 유족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시민들의 일부는 ‘욕하지 맙시다. 계란을 던지지 맙시다. 자작극에 말려들지 맙시다’ ‘가짜사과 필요없다. 광주에 오지마’ ‘학살자 비호 국민기만 광주를 더럽히지 말라’ ‘학살자 찬양 가짜사과 전두환과 다를 게 없다’ ‘5·18 부정 모욕은 민주주의 역사 부정’ 등 문구를 쓴 피켓을 들었고, 일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도 했다.
![]() |
▲ 오월어머니회 등 5·18단체가 10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단 앞을 지키며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참배를 막고 있다. [광주=공동취재/연합뉴스] |
앞서 광주지역 5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전날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정질서 파괴범 전두환을 옹호한 윤 후보의 광주 방문에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 단체는 “광주 학살자를 옹호한 세력이 국민적 비난에 처할 때마다 되풀이한 위기 수습용 행위극을 진절머리 나게 봐왔다”며 “병 주고 약 주는 정치쇼로 5·18정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비판했었다.
이날 5·18민주묘지를 찾은 윤 후보는 항의 시민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기 어렵자 참배광장에서 멈춘 채 추모탑을 향해 고개를 숙여 30여초 간 묵념한 뒤 양복 안쪽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한 흰색 A4용지 사과문을 꺼내 낭독했다.
윤 후보는 서두에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제 발언으로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저는 40여 년 전 5월의 광주 시민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눈물로 희생하신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광주의 아픈 역사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되었고 광주의 피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꽃피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러기에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5월 광주의 아들이고 딸”이라고 강조했다.
윤 후보는 또 “제가 대통령이 되면 슬프고 쓰라린 역사를 넘어 꿈과 희망이 넘치는 역동적인 광주와 호남을 만들겠다. 지켜봐 달라”며 “여러분께서 염원하시는 국민통합을 반드시 이뤄내고 여러분께서 쟁취하신 민주주의를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현장을 떠났다.
![]() |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10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해 자신의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해 사과문을 낭독하고 있다. |
윤 후보는 사과문을 읽은 후 기자들과 가진 질의응답에서 “상처받으신 국민들, 특히 우리 광주 시민 여러분께 이 마음을 계속 가지고 가겠다”고 밝혔다.
“항의하는 시민단체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는 질문에는 “저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며 “오월 영령들에게 분향도 하고 참배를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많은 분들이 협조해 주셔서 이 정도로 사과드리고 참배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주 방문을 두고 정치적 자작극 아니냐”고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심에 대해서는 “저는 쇼 안 한다”고 단호하게 답하며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마음을 계속 갖고 가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 후보는 “여태까지 발언 중에 후회되는 건 없다라고 말했는데 그 입장은 여전하냐”는 질문에는 “후회의 문제가 아니라 발언이 잘못됐으면 또 그 발언으로 다른 분에게 상처를 줬으면 거기에 대해서 질책을 받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지 후회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윤 후보는 민주묘지에 30여 분 머무른 뒤 자리를 떴다. 이때 대학생 단체 등으로부터 “윤석열 물러가라”는 항의 구호가 들리기도 했다.
![]() |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10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
앞서 윤 후보는 이날 5·18민주묘지를 방문하기 전, 전남 화순군 도곡면에 있는 고(故) 홍남순 변호사 생가를 방문해 차남인 홍기훈 전 의원 등 유족과 차담을 나눈 뒤 5·18자유공원을 찾았다.
판사 출신인 故 홍 변호사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희생을 막기 위한 이른바 ‘죽음의 행진’에 나섰다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년 7개월 간 복역한 뒤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홍 변호사는 이후 광주 동구에 사무실을 열고 양심수 변론을 맡아 ‘긴급조치 전문 변호사’라 불리며 인권 활동과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윤 후보는 홍 변호사와 고(故) 조비오 신부의 인연을 언급하면서 조비오 신부의 막내 여동생과 자신도 인연이 닿아있다며, 홍 변호사와 조비오 신부의 수감 중 대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윤 후보는 11일에는 전남 목포의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을 찾은 뒤 경남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할 예정이다. <사진=공동취재/연합뉴스>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