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분석] 한·일 갈등 '슈퍼위크' 확전일까 실마리 보일까

글로벌경제 / 류수근 기자 / 2019-07-22 17:39:13

[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관계 정상화의 실마리를 찾을 것인가, 확전할 것인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대법원 배상 판결을 빌미 삼아 자행되고 있는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한·일 양국 관계가 더 악화될지 아니면 개선의 조짐을 보일지 ‘슈퍼위크’가 시작됐다.


우선 그동안 큰 분기점으로 여겨졌던 일본의 참의원 선거가 21일 끝난 데 이어, 이번주에는 한일 통상담당자가 격돌할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가 개최되고, 일본이 수출심사 우대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법령 개정을 위한 의견수렴 마감 시한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주 열리는 WTO이사회에서 일본 수출규제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철회 압박 분위기를 환기시킬 작정이다. [그래픽= 연합뉴스]
정부는 이번주 열리는 WTO이사회에서 일본 수출규제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철회 압박 분위기를 환기시킬 작정이다. [그래픽= 연합뉴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집권 자민당은 공명당과 함께 치른 이번 제25회 참의원 선거에서 전체 의석의 과반을 확보했다. 그러나 여당 등 개헌 세력은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이었던 개헌 발의선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 향후 3년간은 자위대를 헌법 9조에 담는 방향의 개헌 추진이 사실상 어려워지게 됐다.


자민당 총재인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의 승패 기준을 보수적으로 잡아 53석 이상만 얻으면 되는 여당 과반 의석 확보로 제시해 목표는 무난히 달성한 셈이 됐다. 하지만 압승을 거뒀던 6년 전에 비해서는 감소했다. 당시 선거에서 자민당은 66석을 얻어 단독으로 선거 대상 121개 의석의 과반을 확보했었다.


일본 정부가 오사카 G20정상회의 직후 전격적으로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들고나온 배경과 관련, 그동안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내 보수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전략이 상당 부분 숨어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1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의 자민당 당선자 이름에 꽃을 달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1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의 자민당 당선자 이름에 꽃을 달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과반은 확보했지만 단독으로 개언발의선 유지에 실패하면서 내부 비판여론을 잠재우고 개헌 동력을 이어갈 필요가 있고, 오는 10월 소비세 세율 인상 등 아베 정부에 악재가 될 만한 일본 내 요인들이 많아 한국에 대한 강경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아베 총리는 21일 일본의 민영방송 아사히TV의 참의원 개표방송에 출연해 “한국에 정상회담을 요청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한국이 청구권 협정 위반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안될 것"이라며 강경기조를 이었다.


그러면서 "한일 청구권협정은 한국과 일본이 전후 태세를 만들면서 서로 협력하고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구축하자는 협정"이라며 "이런 협정에 대해 위반하는 대응을 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와 관련해서는 "결코 보복적인 조치가 아니다"며 "안전보장과 관련된 무역 관리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3년간 무역 관리에 대한 협의를 하자고 요청했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이) 협의에 응하지 않았다"며 "제대로 된 신뢰 관계를 구축한 뒤 한국 측에 성실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일갈등 주요일지 [그래픽= 연합뉴스]
한일갈등 주요일지 [그래픽= 연합뉴스]


이같은 아베 총리의 발언에 청와대는 22일 입장을 밝혔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아베 총리의 언급에 대해 "지금까지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하면서 "한일 양국 간 미래 협력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선을 지키며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게 양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고 대변인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 등을 근거로, 대북 밀반출 주장에 대해서도 유엔 제재위원회 검토를 받자고 일본 측에 설명해왔다"며 "한일관계가 과거와 미래라는 투트랙으로 가자는 우리의 입장을 누차 말해왔고, 그에 대한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한국이 먼저 답을 가져와야 한다”며 강경 기조를 있는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오후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수보회의)에서 강력한 ‘극일’의 의지로 맞받아쳤다.


문 대통령은 "국제분업 체계에서 평등하고 호혜적인 무역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산업 경쟁력 우위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됐다"며 "우리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는 가전·전자·반도체·조선 등 많은 산업 분야에서 일본의 절대우위를 하나씩 극복하며 추월해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자유무역 질서를 훼손하는 기술 패권이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신기술의 혁신 창업이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며 "특히 부품·소재 분야 혁신 산업과 기존 부품·소재 기업의 과감한 혁신을 더욱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의 강화도 당부했다. 그는 "지금까지 중소기업이 국산화 기술을 갖추거나 제품 개발에 성공해도 공급망에 참여하지 못해 사장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우리 부품·소재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와 대·중소기업이 함께 비상한 지원 협력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세계 경제 여건이 악화하고 일본의 수출규제까지 더해져 우리 경제에 대해 국민께서 걱정이 많으실 것"이라며 "성장동력에서 수출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길은 국내 소비와 관광을 활성화하는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작년 해외로 나간 우리 국민 관광객 수는 3천만명에 가까웠지만, 방한 관광객 수는 절반 수준으로 관광수지 적자가 132억 달러에 달했다"고 숫자를 들어 지적하기도 했다.


소재·부품 산업의 국산화와 수입처 다변화라는 정부·기업이 추진하는 대책과 별도로 소비와 관광은 국민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전 국민이 현재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동참해달라는 호소로 풀이됐다.


한일 관계가 전혀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2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 WTO 일반이사회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통상 수석대표가 격돌한다.


WTO 이사회는 164개 전체 회원국 대표가 중요 현안을 논의·처리하는 자리다. 최고 결정 권한을 가진 WTO 각료회의는 2년마다 열리기 때문에 각료회의 기간이 아닐 때에는 일반이사회가 최고 결정기관으로 기능한다.


일반적으로 WTO회의에는 각 회원국의 제네바 주재 대사가 수석대표로 참여하지만 이번 회의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WTO 업무를 담당하는 고위급 책임자가 현장에서 직접 대응한다.


한국은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일본에서는 야마가미 신고 외무성 경제국장이 참석할 예정이다. 김 실장은 WTO 한일 수산물 분쟁 상소기구 심리에서 최종 승소라는 쾌거를 끌어낸 이른바 '통상통'이다.



김승호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 [사진= 연합뉴스]
김승호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 [사진= 연합뉴스]


김 실장은 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WTO 규범에 합치하지 않는 부당한 조치임을 지적하고, 현 상황에 대한 WTO 회원국들의 이해를 높여 조치 철회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할 계획이다.


WTO에서 바로 결의를 한다든지 어떤 형태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조치의 심각성을 회원국들에 인식시키고 일본 측의 조기 철회를 촉구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일반이사회가 WTO 공론의 장인만큼 향후 WTO 분쟁 해결기구에 제소하기 전 충분한 명분을 쌓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


24일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기 위한 의견수렴 절차를 마감하는 날이어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일본은 이달 초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 데 이어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법령 개정을 추진 중이며, 추가 보복까지 시사한 상황이다.


일본은 의견수렴을 마치는 대로 각의를 거쳐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 사이에 개정안을 공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일본의 보복성 조치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지난 19일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문제를 다룰 중재위원회 설치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으며 남관표 주일한국대사를 초치한 뒤 담화를 발표하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일본의 잇단 강경조치에 청와대 내부에서도 강경 대응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다음달 24일까지 연장 여부를 정해야 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경제 보복 조치의 맞대응 카드로 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고노 외무상의 담화 발표 이후 기자들과 만나 '협정 파기 가능성이 검토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아직 아무 결정이 내려진 적이 없다"면서도 "우리는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주에는 악화일로를 걷는 한일 관계에 변수가 될 중요한 인물의 양국 순차 방문이 예정돼 있다. 백악관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사진=AFP/연합뉴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사진=AFP/연합뉴스]


볼턴 보좌관의 이번 한일 양국 방문은 한일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어서 시기적으로 더욱 주목된다.


볼턴 보좌관은 21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일본으로 가는 길에 알래스카에서 급유하는 동안 설리번 상원의원을 만났다"며 "우리는 핵심적인 국가 안보 이익 및 곧 있을 도쿄 및 서울 방문에 대해 논의할 기회를 가졌다"고 적었다. 알래스카가 지역구인 댄 설리번 상원의원은 상원 외교위 소속이다.


볼턴 보좌관의 방한 일정과 관련, 청와대는 23일부터 24일까지 1박2일 일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볼턴 보좌관은 방한 기간 한국 카운터파트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과 만날 예정이다.


볼턴 보좌관의 한일 연쇄 방문을 통해 현재 한일 갈등 상황과 관련해 모종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지난 19일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갈등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관여 요청이 있었다면서 한일 양쪽에서 요청이 있으면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벼랑 끝에 마주한 한일관계가 당장 개선될 조짐은 낮아보인다. 하지만 이번주 전개될 일련의 상황을 통해 향후 한일관계의 방향성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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