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View] 美 화웨이 봉쇄령과 '중국몽',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칼럼 / 류수근 기자 / 2019-05-25 01:27:37
국제정치학 이론으로 본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과 전망

‘통신패권, 과학기술전쟁, 기술전쟁....’


벼랑끝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미·중 무역갈등이 새로운 차원으로 급박하게 전개하며 전세계가 21세기형 ‘신냉전’ 체제의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렵게 봉합되는 듯했던 미·중 무역갈등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이 합의를 깼다. 속임수를 멈출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며 사실상 결렬을 선언한 뒤 보복관세 부과 조치를 내렸다. 그러자 중국은 협상 결렬 책임은 오히려 미국에 있다며 맞불 보복관세 조치를 내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중 양국이 협상테이블에 앉아 다시 한 번 막판 조율을 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전망이 흘러나왔다. 하나 미국이 중국의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 견제에 전격적인 차단 조치를 취하면서 무역갈등은 기술전쟁의 양상으로 급선회하며 글로벌 경제계를 패닉에 빠뜨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앤드루 공군기지에서 3박4일 일정으로 일본을 국빈방문하기 위해 멜라니 여사와 함께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 탑승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외국 기업의 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미국 상무부는 이튿날 곧바로 화웨이 및 68개 계열사를 거래제한 기업 명단(Entity List)에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경제안보가 곧 국가안보라는 확고한 지론을 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여러나라들과 국가안보를 명분 삼아 고율 과세를 부과하는 무역전쟁을 촉발했다. 특히 중국 수입품에 대해서는 고율 관세 부과를 넘어 중국 기업에 대한 핵심부품 수출을 제한하는 쪽으로 무역전쟁의 수위를 높였다.


미국 정부는 미·중 무역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을 계기로 장차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중국의 간판 핵심기술들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그 ‘기술전쟁'의 최전선에는 5G 이동통신 기술의 글로벌 리더인 화웨이가 있다.


화웨이가 세계 선두를 점하고 있는 5G이동통신 장비는 초고속·초연결·초지연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프라로 꼽히고 있다. 미래 산업의 주도권과 직결돼 있다.



지난 4월 7일 미국 텍사스 플래노에 위치한 미국 화웨이 북미본부 전경. 외부에 텍사스주기가 걸려있다. 도널드 트럼프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미국내 네트워크가 화웨이와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내밀한 관계를 의심하며 화웨이가 인증 없이 전산망에 침투해 정보를 빼돌리는 ’백도어‘를 자사의 통신장비에 은밀하게 설치해 기밀을 빼돌릴 수 있다며 동맹국들에게 5G 사업에서 화웨이를 퇴출하도록 촉구해왔다.


화웨이에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중국 반도체 거물인 푸젠진화를 제재대상에 올렸다. 푸젠진화는 중국이 기술 굴기의 ‘아킬레스건’이던 반도체를 자립 수준으로 강화하려던 업체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과 기술패권은 유일한 초강대국이던 미국의 위치에 중국이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던지면서 일찌감치 예견됐다.


소련의 해체로 미·소냉전이 끝난 이후 세계는 10여년 간 미국의 1강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90년대 말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든 반면 중국의 영향력은 커졌다. 이후 터진 9.11 사태로 국제정서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변한 데다, 21세기 들어 중국 경제가 눈부신 성공을 이루면서 1강체제는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스스로 강대국임을 자처하게 된 중국은 2010년대 들어 미국에 ‘신형대국관계’의 수립을 강조했다. 이는 양국 간의 대화와 상호 신뢰의 수준을 새로운 단계로 높인다는 전제 아래 서로의 핵심이익을 침해하지 않고 상호협력 관계로 발전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신형대국관계’는 전략적 중심을 기존의 서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기며 중국의 지역패권국가 부상을 경계하려는 미국의 ‘재균형전략’과 충돌하게 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르면서 중국민족의 부흥을 실현하겠다는 ‘중국몽’의 이념을 내세웠다. 중국이 G2(미국과 중국)를 넘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미국에 대한 사실상의 도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진핑 주석이 15일 베이징에서 개막된 아시아문명대화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22일 폐막된 이 대회는 아시아 협력을 전면에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연결해 중국 중심의 문명을 강조하며 미국을 향한 세력을 과시하는 자리였다는 해석이 잇따랐다. [사진= AP/연합뉴스]
시진핑 주석이 15일 베이징에서 개막된 아시아문명대화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22일 폐막된 이 대회는 아시아 협력을 전면에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연결해 중국 중심의 문명을 강조하며 미국을 향한 세력을 과시하는 자리였다는 해석이 잇따랐다. [사진= AP/연합뉴스]


시진핑 주석은 2017년 전당대회에서도 중국몽을 수십 차례 언급하며 건국 100주년(2049년)이 되는 2050년까지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서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앞서 중국은 경제모델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바꾸겠다는 ‘중국 제조 2025’를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제조업 기반 육성과 기술 혁신, 녹색 성장 등을 통해 2025년까지 10대 핵심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을 실천했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 실천 로드맵에는 신경제구상 한 가지가 더 있다. 세계를 새로운 실크로드로 연결하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다. 이를 통해 중국은 아프리카까지 그 영향력을 넓혔다.


중국은 자국의 위상을 강화하는데 기술혁신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혁신역량 강화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해왔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의 실현을 위해 산업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는 첨단기술에서의 기술강국을 목표로 반도체 굴기를 필두로 한 ’기술 굴기(?起)‘를 펼쳐왔다.


국제정치학에 ‘세력전이이론(Power Transition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1958년 오르갠스키가 주창한 이 동태적 이론은 기존의 국제질서에 불만을 품은 제2인자인 도전국가가 산업화를 통해 국력이 커져 패권국가에 대한 도전세력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국제질서 내 위기가 시작되고, 도전국가의 국력이 패전국가를 따라잡는 세력 전이현상이 일어날 때 국가 간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시진핑 시대가 추구해온 ‘중국몽(中國夢)’이 그동안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미국에게 어떤 위협으로 여겨졌을지 짐작할 만하다.


국제정치학에는 ‘리더십 장주기(Leadership Long Cycle)’ 이론도 있다. 1996년 모델스키가 주창한 이 패러다임은 1500년 이후 세계질서에서 리더십은 약 100년의 긴 주기로 교체되었으며, 이는 약 50년 주기로 진행된 기술혁신의 콘드라티예프 파동(K-Wave, 50년 주기를 가진 경제의 장기순환)과 공진화(共進化)해왔다는 이론이다. 패권국 교체를 기술혁신 중심으로 본 이론이어서 흥미롭다.



5G를 홍보하고 있는 화웨이의 홈페이지. '5G는 진행중(5G is ON)'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사진= 화웨이 홈페이지 캡처]


미국과 중국은 자국의 위상을 지키고 강화하는데 기술혁신을 우선정책으로 삼고 있다. 현재 치열하게 진행중인 미·중 무역전쟁은 기술혁신의 측면에서 중국의 패권 도전에 미국이 힘으로 응수하는 형국이다. 그런 만큼 미국이나 중국이나 쉽사리 물러설 리 없다.


중국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에 애국심을 부추기고 반미 의식을 고취하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일고 있다는 외신이 전해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미국이 자국과 협상을 계속하기를 원한다면 '잘못된 행동'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강대국의 지위를 인정하려는 미국과, 이를 넘어서려는 중국 간 팽팽한 긴장 관계는 동맹국들에 대한 영향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국에 줄을 서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려는 움직임이 이는 이유다.


이미 미국은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에 동참할 것을 유도하고 있다. 이미 유럽, 영국, 일본, 호주 등 동맹국들의 기업들은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에 나서고 있다.


작금의 사태는 자칫 우리나라에 불똥이 튈 수 있어 우려된다. 우리나라는 다른 동맹국들과 달리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고, LG유플러스는 화웨이로부타 5G 통신장비도 공급받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원만하게 풀리지 않고 화웨이 문제가 이대로 계속 꼬인다면 미국은 우리 정부나 관련 기업에 유형무형으로 화웨이와의 거래제한을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제2의 사드 사태’에 대한 악몽이 재현될까 두렵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부에게는 냉정한 상황 인식 아래 신중하고 철저한 상황관리가 요구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한미동맹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극단적인 변수의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고 국익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차제에 미·중에 대한 수출의존도를 분산하기 위한 총체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하고, 미래 산업의 핵심기술의 개발과 지적재선권의 보호 등 기술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수립과 실행력이 요구된다. 설사 이번 미중 무역협상과 화웨이 봉쇄령이 조기에 원만히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중국몽'이 나래를 펴는 한 유사한 사태는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필자 편집인 류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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