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인의 산업보안이야기]⑯ 가상인간 앞에서 인간을 돌아보며 인간의 룰은 인간이 결정해야

박정인의 산업보안이야기 / 박정인 / 2022-10-24 23:30:12

최근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과 다름없다며 인간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보호받고자 하는 것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메타버스 산업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그 안에서 활동하는 가상인간, 아바타의 법적 지위에 대한 고민도 대두하고 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단순히 가상, 컴퓨터를 활용한다는 의미이므로 오프라인과 동일한 지위로 보아도 무방한 것인지, 가상인간·가상현실·가상자산 등 가상에 대한 개념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컴퓨터를 이용하는 경우 형법은 314조 업무방해나 347조의2 컴퓨터 등 사용사기에서 일반 업무방해나 일반 사기죄보다 더 강한 처벌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컴퓨터라는 도구를 활용한 범죄에 대해 우리 법은 더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
 

▲ [사진=픽사베이 제공]

특히 정보통신망법에 근거하여 명예훼손 분쟁조정부에 해당 정보를 빠르게 삭제조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형법 제307조의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5년 이하의 징역인데 비해 벌칙이 더 강하다.

한편 아바타로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히는 경우 민법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경우에 책임을 지는 방식, 즉 주인이 통제범위가 가능할 때에만 책임을 묻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민법 759조에 규정된 ‘동물 점유자의 책임’과 같이 컴퓨터도 물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사업자는 아바타가 자신의 저작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임대차 계약의 법리상 이용자는 이용약관에 동의하고 그에 따라 아바타를 사용한 뒤 두고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바타의 주인에게 권리는 사용권에 지나지 않고 사이버 공간 내에서 손해나 권리 침해사실이 발생하면 책임은 오프라인보다 무겁게 인정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용약관의 동의조항 등을 통해 가상공간에서 가상인간이 저지르는 일체의 행위에 대해 IT사업자의 책임면책을 하고 있는 약관이 증가하고 있다.

이용자는 해당 영역에서 불공정을 논하기에 앞서 아예 해당 플랫폼에서 사용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이원적 선택을 할 수밖에 할 수 없다. 이의를 제기했다가는 계정 정지를 당하거나 쫓겨나기 일쑤이다. 즉,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정한 룰을 따를 수밖에 없어 스스로 로그아웃하거나 계정 정지, 탈퇴 등의 쫓아냄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같은 약관은 이용자 보호차원에서 보완돼야 한다. 계정을 탈취당하거나 여러 가지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가상인간, 아바타가 한 일에 대해 이용자에게 항변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자율영역이 확대되고 전문가 판단이 미흡한 이러한 분야는 약관승인제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법은 사업자가 자치를 갖는 영역을 최대한 존중하고자 하고 불공정약관심사를 통해 이를 대응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바타를 권리의 주체 인간으로 볼 것인가 안 볼 것인가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은 무엇이고 재난이나 불행으로 인한 손해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즉, 아바타가 겪는 재난이나 손해를 계정의 주인이 겪는 재난과 손해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지옥’이라는 넷플릭스 영화를 보면, 재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죄를 지어 그렇게 된 것으로 나오지만 결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현대사회에서 인간 세상의 룰은 결국 인간 스스로 정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즉, 아바타에 대한 법리도 플랫폼 사업자에게 결정하게 하고 입법자들의 손에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간과 유사하게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자 하는 존재들에 대해 인간들이 토론을 거쳐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므로 아바타를 책임지게 할 때 인간과 같이 지게 할지, 그들이 산출하는 권리와 재산을 어디까지 인정할지 고민하는 것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인공지능(AI)의 권리를 인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도구를 가진 자들이 더 유리한 지위에서 창작 등을 하는 경우 인간이 도구없이 창작한 경우보다 더 많은 사회경제적 가치가 창출되더라도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권리를 주려는 우리의 시도는 옳은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가상인간이 일으킨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공포, 불안, 수치심과 같은 감정을 주거나 인간에게 실질적인 손해를 일으키게 한 경우 법은 플랫폼 사업자와 이용자에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가 적극적으로 보호조치 의무를 다했는지를 문제삼을 필요가 있고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범죄자를 다 잡기 어렵다고 손놓고 있기보다는 한 명의 피해자라도 더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아이린과 관광공사 가상인간 홍보대사 ‘여리지’가 꼭 닮았다는 초상권 침해 논란이 국감에서까지 제기됐다. 이는 기술이 할 수 있는 창작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카카오톡 사태에서는 주파수와 망을 가져다쓰는 직접적인 기간통신사업자만 재난관리기본계획을 세우게 하고 빌려쓰는 부가통신사업자들에 대해선 대비하지 않아서 복구가 늦어진 부분이 지적되고 있다.

아바타와 같은 가상인간의 권리의 의무에 대한 논의를 더는 미루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인간은 IT기술 앞에서도 모두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이다. 인간이 아닌 가상인간을 IT법이 제대로 통제할 수 있도록 법리를 세워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와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산업보안의 관점에서도 관리해야 하는 지식재산의 증가는 보안비용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모두 국가와 이용자의 부담으로 돌아가는 만큼 모두의 이해관계가 달려 있다.

[박정인 단국대 연구교수·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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