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단일대오 힘든 상황 반영해 美 독자제재…한국에 동참 요구 가능성
뉴욕유가 4월물 WTI 배럴당 123.70달러...2008년 이후 최고치
동참국 늘어날수록 국제유가 급등세 커질듯…수입물가·물류비용 상승 불가피
정유·화학·항공·전자 등 산업계 비용부담 커져...물가상승 압력 고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처로 마침내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카드를 꺼냈다.
영국 역시 연내 단계적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국의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 발표에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14년 여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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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금수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바이든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 연설을 통해 “러시아 경제의 주요 동맥을 목표로 하는 조치”라며 러시아산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 원유가 더 이상 미국 항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라며 “미국인들은 푸틴의 전쟁 기계(war machine)에 또 다른 강력한 타격(powerful blow)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조처가 유가 상승을 불러와 미국도 비용을 치른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자유에는 비용이 따른다”며 극약처방 결정 배경을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구했다.
다만, 미국의 이번 조처는 유럽연합(EU) 등 동맹과 보조를 맞춰온 기존 제재와 달리 미국이 독자적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동맹이 동참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압박한다는 목표에 있어서는 단합돼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참고자료(fact sheet)는 이번 조치에 대해 “푸틴 대통령이 불필요한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제적 자원(economic resources)을 더욱 박탈하는 중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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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원유 등 에너지 수입 금지조치를 내렸다. 사진은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전략물자관리원 국가별 제재 현황판에 러시아에 대한 제재 내용이 표시돼 있는 모습. [서울=연합뉴스] |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후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수입 금지 대상에는 러시아산 원유는 물론 액화천연가스, 석탄까지 포함된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미국은 하루 70만 배럴에 가까운 원유와 정제 석유제품을 러시아로 수입해왔다. 따라서 미국 운전자와 소비자로부터 얻는 연간 수십억 달러의 수입을 러시아로부터 박탈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러시아 에너지 분야에 대한 미국의 투자를 금지해, 미국 기업이나 투자자가 러시아 내에서 에너지 생산을 확대하려는 푸틴의 노력을 뒷받침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러시아에서 에너지 생산을 위해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미국인이 자금을 대거나 허용하는(financing or enabling) 것도 금지된다.
AP 통신은 원유와 가스가 러시아 정부 수입의 3분의 1이상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만큼 에너지 수입 중단은, 러시아의 수출에서 원유와 가스 등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 그동안 러시아의 외화 조달 수단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조처로 인식돼 왔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각종 경제 제재에 ‘찰떡 공조’를 하며 잇따라 고강도 조처를 러시아에 취했지만, 이번 에너지 분야를 두고서는 대응 수위에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미국과 달리 EU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매우 높은 현실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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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국가별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 비중. [그래픽=연합뉴스] |
러시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원유 수출국이며, 하루 450만 배럴가량의 원유와 250만 배럴가량의 원유 관련 상품을 수출한다. 러시아의 원유 수출량은 글로벌 원유 공급량의 5%를 약간 웃돈다.
지난해 미국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원유 및 정제 석유 제품은 전체 관련 수입품의 8%로 대략 67만2천 배럴에 달한다. 이는 미국 전체 원유 소비의 6% 수준이다.
미국의 수입 원유 중 러시아산 비중은 약 3%이고, 석유제품까지 포함할 경우 8%가량이다. 미국이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는 없다.
반면 유럽의 경우는 가스 40%, 원유 25% 가량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AFP,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영국은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에 맞춰 동맹국 중 유일하게 2022년 말까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미국과 달리 천연가스 수입 금지를 언급하는 내용은 없었다.
크와시 쿠르텡 영국 산업에너지부 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시장과 기업 등이 영국 수요의 8%를 차지하는 러시아산 석유를 대체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쿠르텡 장관은 영국의 원유는 대부분 미국, 네덜란드, 걸프만 국가들과 같이 “믿을만한 파트너들”에서 수입해온다며 “추가 공급이 가능하도록 이들 국가와 협력하겠다”고 설명했다.
미국, 영국과 달리 EU는 단기적 러시아산 예너지 금수 조치 대신에 앞으로 점차 러시아 의존도를 줄여나가겠다는 일종의 목표 제시에 그쳤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이날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제안했다.
올해 말까지 EU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 물량의 3분의 2를 줄이고, 2030년 이전까지 러시아의 화석연료에서 독립하겠다는 목표였다.
미국, 카타르 등 다른 나라를 통해 3분의 1 이상을 대체하고, 이밖에 재생 에너지 확대, 에너지 절약 등을 동원하겠다는 것이 EU 집행위의 구상이다. 결국 구속력은 없다.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뉴욕 유가는 120달러를 돌파하며 장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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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유가 추이. [그래픽=연합뉴스] |
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4.30달러(3.6%) 오른 배럴당 123.7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팩트셋 자료에 따르면 이는 종가 기준으로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다.
WTI 가격은 장중 8.4% 오른 배럴당 129.44달러까지 올랐다. 브렌트유 가격은 한때 8% 상승한 배럴당 133.13달러까지 치솟았다.
국제유가가 또다시 출렁이면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국제유가 상승효과는 해외에서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국내 기름값으로 전가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업계의 러시아산 원유 비중은 5% 남짓이다. 그러나 이미 고유가인 상황에서 이번 제재로 국제 유가가 더 오를 경우 피해가 가중될 전망이다.
수입물가 상승과 물류비 부담 증가로 정유·화학·항공·해운 등 국내 산업계에도 비용부담이 커지면서 전방위적인 피해로 이어질 전망이다.
여기에다 원/달러 환율도 들썩이며 1230원을 돌파한 상태다. 유가·환율 동반 상승은 국내 체감 유가를 비롯한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곡물 등 다른 원자재 가격도 상승 중이라 기업 비용 부담이 늘어 제조업 상품 전반의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도 크다. 이는 결국 국내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가계에도 압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2월 3.7%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조만간 4%대로 뛰어오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2011년 12월(4.2%) 이후 처음으로 4%대를 찍는다면 당장 국민들의 체감 어려움이 커지는 것은 물론, 소비 위축 등으로 이어져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미국과 영국의 러시아산 원유 금수조치에는 EU가 참여하지 않았다. EU의 러시아산 원유 의존도가 미국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에서 EU가 참여할 경우 국제유가는 더욱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조처가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한국에도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국제유가가 150달러를 넘어 ‘오일쇼크’ 수준이 되면 세계 경제 전체가 침체 국면에 들어서고, 이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료출처=연합뉴스 외신종합>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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