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으로 열린 송파문고 심야책방에 소개된 책은 필립 예나윈의 ‘알기 쉬운 현대미술 감상의 길잡이’(원제 How To Look At Modern Art)다.
“미술 이해의 결정권을 타인에게만 맡길 수는 없지요.”
이번 행사의 강연자로 나선 최용석 연구원(중앙대 문화예술경영연구소)은 자칫 어렵다고 느낄 수 있는 현대미술에 대해 저자의 말을 이렇게 인용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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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석 연구원(중앙대 문화예술경영연구소)이 송파문고 심야책방에서 필립 예나윈의 ‘알기 쉬운 현대미술 감상의 길잡이’를 통해 현대 미술감상법을 설명하고 있다. |
현대미술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술이나 노력을 좀 더 향상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썼다는 예나윈의 책도 사실 마냥 쉽지만은 않다. 약간의 사전 지식이 뒷받침돼야 저자의 말이 분명해진다.
강연자인 최 연구원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미술작품을 보며 상상해 보듯이, 저자가 왜 이렇게 얘기했을까를 함께 생각해 보는 거지요.”
미술작품 앞에 선 우리는 때때로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그만큼 현대미술은 가까이 하고 싶지만 한편 어렵기도 하다. 최소한 그렇다고 느낀다.
“사각형의 캔버스나 정형화된 조각품들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그 이유에 대해 최 연구원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미술품을 언급하게 될 때 대체로 캔버스의 그림이나 다비드 동상 같은 조각을 쉽게 떠올리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현대 미술작품의 범위는 상당히 넓어졌다. 형태, 재료, 심지어 주제까지도 파격적으로 다양해졌다. 난해한 내용의 회화, 무엇을 표현했는지 선뜻 알기 어려운 설치물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당황스러움, 그리고 저절로 동반되는 침묵은 흔한 감상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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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감상법을 설명하는 최용석 연구원. |
그렇다면 언제부터 미술의 표현 영역이 이렇게 확대된 걸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개념미술의 거장 마르셀 뒤샹이 언급된다.
뒤샹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어느 날 소변기-당시 작품명은 ‘샘(Fountain)’-를 전시장에 몰래 들여놓았는데, 이는 예술계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던 것 같다. ‘회화는 죽었다’는 그의 말을 새삼 반복하지 않더라도 캔버스가 없는 작품을 당시 흔쾌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익숙한 ‘사각형’을 포기하고 바라봐야 해요.” 최 연구원의 설명과 함께 이날 행사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최 연구원은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언어, 기호, 그리고 도로 표지판 등은 이미 우리가 약속한 거죠. 해석의 방향을 정해 놓았다는 것이지요.”
그의 말을 미술에 대입해 보면 미술은 사전에 약속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저 보여주고 기다릴 뿐이다.
그렇다면 캔버스를 포기하고 불쑥 우리 앞에 뛰쳐나온 작품을 대할 때,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할까.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예나윈은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작품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가가 경험하거나 듣게 된 전쟁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점과 함께 작가의 아이디어, 개인의 심리적 갈등을 2D 차원의 캔버스 위에 표현하지 않고 3D 공간에 가져다 놓았다는 점을 떠올려 보는 것은 작품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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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파문고 심야책방 참가자들과 함께한 최용석 연구원. |
동일한 사물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생각이 서로 다르듯, 현대미술 감상자의 해석도 제각각일 수 있다. 어찌보면 그것이 당연한 듯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정답’을 찾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 보게 된다.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작가가 아닌 관객’이라는 뒤샹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행사 막바지에 최 연구원이 제시해 보인 몇 컷의 작품에 대해 이날 참석자들은 각각의 재미있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때가 이날 행사의 유쾌한 분위기가 가장 고조된 시점이다. 이것이 현대미술의 매력이 아닌가!
예술과의 때로는 낯설고 새로운 만남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한 힘이 클수록 좋은 작품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컴퓨터,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등에 완전히 둘러싸인 현대인의 소위 ‘디지털 치매(Digital Dementia)’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독서, 미술감상 등이 추천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최 연구원은 이날 행사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어쩌면 미술은 우리에게 자연과 같아요. 돈을 내라고 하면 망설이죠. 하지만 정신적, 심리적 건강을 위해 가까이 가고 싶은 대상이기도 해요. 옆에 두면 좋은 친구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친구를 이해하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최용석 연구원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기획과 연구를 수행하는 것과 동시에 예술의 매력을 쉽게 풀어내기 위해 이날과 같은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예정이다.
송파문고 심야책방은 책 읽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이진표 사장의 열정으로 탄생한 문화행사로, 지식과 문화를 전파하는 독특한 콘셉트로 행사를 지속하고 있다.
[메가경제=글·사진 박정인 객원기자·단국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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