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 4곳 뻉뻉이, 근로계약서만 3번 갱신...정치권·노동부 '촉각'
[메가경제=정호 기자] "휴게시간이 잘 지켜지고 있나"라고 질문을 건넨 순간, 대답 대신 직원 출입구 문이 닫히는 소리만 들렸다. 입구에는 남녀 직원 네 명이 고객을 맞았다. 맞은편 창문에서는 트레이에 막 구워진 베이글을 옮기는 직원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직원들의 손목과 어깨 위로 조명이 비췄다. 과로사 의혹은 매장 안의 고요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최근 인천 미추홀구 롯데백화점 지하에 입점한 런던베이글뮤지엄(이하 런베뮤) 지점에서 한 직원이 과로로 사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보도 이후 블라인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불매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지자체의 근로 실태 조사와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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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백화점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 전경.[사진=메가경제] |
정의당은 27일 성명을 통해 "20대 청년이 지난해 5월 입사 후 14개월 만에 주당 80시간에 달하는 과로에 시달리다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사망 전날 아침 9시에 출근해 자정 직전 퇴근했고, 사망 닷새 전에는 21시간 일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로계약서가 주 14시간 이상 초과근로를 기준으로 작성돼 주 52시간 상한제를 위반했으며, 실제 근무시간은 이보다 훨씬 길었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운영사 엘비엠(LBM)은 약 3개월 만에 입장문을 내고 유족 측 주장을 전면 부정했다. 회사 측은 "언론에 보도된 '일 21시간·주 80시간 근무'는 사실이 아니며, 직원들의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은 43.5시간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 "모든 직원은 월 8회 휴무를 보장받는다"며, "일부 매장 오픈 준비 과정에서 연장근로가 있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주 80시간 근무 주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고인은 입사 후 약 13개월 동안 총 7회(9시간)의 연장근로를 신청했고,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44.1시간으로 확인됐다"며 "이는 전체 직원 평균과 유사한 수준으로, '주 80시간 근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족 측에 근로 기록을 은폐하거나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는 일부 보도도 부인했다. 회사는 "산재 신청을 위해 근무 스케줄표와 급여명세서, 근로계약서 등 모든 관련 자료를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일부 언론이 근태관리 프로그램으로 지목한 해당 앱에 대해서도 "원재료 입고와 매장 점검용 앱일 뿐 출퇴근 관리용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은 '원티드스페이스' 시스템을 통해 연장근로를 신청하는 구조로, 고인은 사망 전날 해당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사측은 "보안업체의 지문인식기 설치가 7월 초 완료됐으나, 매장 오픈 당일 오류로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며 "8월 초부터 가동됐지만, 고인의 근무기록은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산재방지과는 27일 오후 해당 사건에 대한 기초 조사에 착수했다. 관계자는 "본사 담당자 연락처를 확보해 자료를 요청한 상태"라며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있어 관련 부서로 인계했다"고 밝혔다. 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라 런베뮤 측의 해명이 사실로 입증될지, 유족의 주장이 인정될지가 향후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해당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제빵 프랜차이즈 지점이라 사건 경위나 관련 내용을 알고 있는 점원들이 없었다"며 "본사 담당자 연락처만 겨우 알아내 자료를 요청해 둔 상황"이라고 말했다.
◆ 3개월간 가려진 진실, 런베뮤 과로사 의혹 재점화
엘비엠이 그간 사안에 대해 해명했지만, 3개월 만에 뒤늦은 수습은 의문을 키운다. 업계에서는 런던베이글뮤지엄 측이 사모펀드 JKL파트너스 매각을 앞두고 이 의혹을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관측이 나왔다.
매각 당시 유족 측과 산업재해 여부를 두고 갈등이 있었지만, "잘 해결됐다"는 말로 일축하며 브랜드 가치 훼손을 막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결국 엘비엠과 JKL파트너스는 올해 7월 약 2000억원 규모의 매각 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묻혔던 사안은 3개월 만에 노동자 과로사 사망 의혹 조사로 다시 불거졌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20대 청년 과로사 의혹'을 두고 불매 움직임이 포착됐다. "20대 젊은 청년이 과로사했다는 의혹에 불매 시작한다", "불매해야 할 빵집이 한 곳 더 생겼다", "베이글 대체할 곳이 많다" 등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직접 찾아간 런베뮤 인천점은 웨이팅 없이 고객이 입장하고 있었다. 동시에 매장 내부에서는 고객보다 직원이 더 많은 기현상까지 관찰됐다. 엘비엠 측에 해당 현장에 더 많은 직원을 투입한 정황에 대해 질의를 남겼지만 답변 받지 못했다.
노동부는 문제가 된 인천점뿐 아니라 안국본점·잠실점·수원점 등을 대상으로 휴가·휴일, 임금체불 여부 등을 집중 점검할 예정이다. 강도 높은 전방위 조사가 이뤄지면서 출점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높은 연매출을 자랑하던 유명 베이글 카페에서 미래를 꿈꾸며 일하던 20대 청년이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해 감독을 통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법 위반이 확인되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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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통해 게재된 게시글이 일부 사라지고 있다.[사진=메가경제] |
◆ 공격적 확장, 지점 신뢰도에 '역풍'
이번 직원 과로사 의혹의 시발점은 공격적인 지점 확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런베뮤는 2021년 안국본점 출범 이후 지점을 빠르게 늘려왔다. 28일 저녁 강관구 엘비엠 대표는 SNS를 통해 "신규 지점 오픈 업무는 그 특성상 준비 과정에서 업무 강도가 일시적으로 집중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고인은 입사 후 14개월간 총 4개 지점을 옮겨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을 시작으로 수원, 인천까지 근로계약서만 세 번 갱신했다. 사망 전날에도 아침 9시에 출근해 자정에 퇴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사망 시기는 7월 16일로, 오픈 준비로 바빴던 시기였다.
런베뮤는 지난 한 해 6개 매장에서 매출 800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특히 매출 796억원, 영업이익 243억원으로 각각 121.1%, 91.3% 증가했다. 이례적인 성장 속도에 신세계프라퍼티와 롯데백화점 등이 '모셔오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현재 근로자 과로사 사망 의혹이 불거지며 매출과 브랜드 이미지가 타격을 입은 가운데, 신세계프라퍼티와 롯데백화점 모두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두 관계자는 모두 "입점 업체에서 발생한 일이고, 우리는 임대사업을 영위하는 입장이기에 답변드리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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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베이글 뮤지엄 인천점 전경.[사진=메가경제] |
◆ 은폐 의혹이 관건, 소비자 신뢰 회복 '흔들'
해당 사건의 쟁점은 3개월간 은폐됐던 직원 사망 사고의 원인 규명으로 모인다. 유족 측은 산재를 신청했지만, 엘비엠은 근로 시간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 과정에서도 런던베이글뮤지엄 관련 게시글이 삭제되는 사례가 있었다.
앞서 취재에서는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를 입증할 자료, 근로자 휴게시간 보장 여부, 유족에 대한 보상 및 재발방지 노력 등을 질의했다. 엘비엠 측은 이에 대해 직접적인 답변 대신 형식적인 입장문만 전달했다.
노동부 조사 결과에 따라 향후 여론의 향방이 갈릴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회사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런던베이글뮤지엄이 대중적 인기를 가진 만큼 이번 사안에 대한 관심도 매우 크다"며 "정부와 대통령까지 관련 산업의 근로 환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안전위원회 설치 검토 및 직원 근무시간, 건강 상태 점검 등 재발 방지를 위한 선제적 조치가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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