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은 AI로 달리는데 韓은 규제에 묶였다"…베이징모터쇼 다녀온 전문가들 '자동차 패권 쇼크'

경제정책 / 박제성 기자 / 2026-05-08 14:32:11
중국車, 전기차 넘어 AI·반도체·자율주행 내재화 가속…"현대차 800V 우위도 흔들"
"브랜드만 남고 부품은 중국산 될 수도"…"국내 생산촉진 세제 도입 촉구"

[메가경제=박제성 기자] “중국은 빗장을 걸어 잠그는데, 한국은 문을 열어둔 채 싸우고 있다.”

 

8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모빌리티학회와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세미나 현장에는 자동차·세제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행사장 분위기는 학술 토론회보다는 ‘자동차 산업 비상회의’에 가까웠다. 

 

▲(왼쪽부터) 정대진 KAMA 회장, 정구민 한국모빌리티학회장, 이종욱 서울여대 명예교수, 박정규 카이스트 겸임교수 등 주요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메가경제] 

 

발표자들의 입에서는 공통적으로 ‘생존’, ‘위기’, ‘내재화’, ‘중국 추격’ 같은 단어가 쏟아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차 전환’이 핵심 화두였다면 이제는 AI·자율주행·반도체·소프트웨어까지 결합된 새로운 패권 경쟁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이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공개적으로 분출되는 현장 모습이었다.

 

이날 한국모빌리티학회와 KAMA는 ‘미래차 산업전략 발전포럼’을 주제로 KAMA 자동차회관에서 포럼을 개최했다.

 

정대진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회장은 “중국은 밖에서 들어오는 빗장은 닫고 안에서는 기업들을 마음껏 뛰게 하고 있다”며 “반면 한국은 시장은 열려 있는데 규제는 많아 기업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구조라며, 자동차 산업의 갑과 을이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이날 세미나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했다. “중국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갔고, 한국은 지금 속도로는 늦다”는 공통된 지적이 제기됐다. 

 

◆ “전기차 다음은 AI 스마트카 전쟁”

 

정구민 국민대 교수 겸 한국모빌리티학회장은 인사말에서 올해 베이징모터쇼 현장을 직접 다녀온 뒤 느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작년까지가 전기차 경쟁이었다면 올해부터는 AI 스마트카 경쟁”이라고 말했다. 

 

실제 중국 완성차 기업들의 변화 속도는 한국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빨랐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어 정 학회장은 ‘2026 베이징 모터쇼 주요 동향 및 시사점’을 주제로 첫 번째 발표를 했다.

 

그는 “중국의 ▲BYD ▲지리 ▲샤오펑 ▲리오토 ▲니오 등 중국 업체들은 단순 전기차 제조를 넘어 자율주행 프로세서와 AI 모델까지 직접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는 과거 엔비디아·모빌아이 등 해외 칩을 사용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반도체 내재화’에 본격 돌입했다는 의미다. 

 

아울러 중국 자율주행 기업 관계자의 발언을 소개하며 “우리가 완성차 업체들의 구세주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완성차 업체보다 자율주행 솔루션 기업이 더 강한 협상력을 갖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게 정 학회장의 설명이다. 

 

세미나 현장에는 “자동차 산업이 더 이상 기계 산업이 아니다”라는 말도 반복됐다. 차량은 이제 반도체·메모리·디스플레이·AI·로봇 기술이 총집결되는 플랫폼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 중국서 현대차 ‘800V 우위’도 흔들렸다

 

현장 발표에서는 현대차그룹의 기존 경쟁력마저 빠르게 희석되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대표 사례가 800V 전기차 플랫폼이다. 현대차그룹은 E-GMP 기반 초고속 충전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확보해왔지만, 중국 업체들이 이미 800V를 넘어 900V·1000V급 플랫폼 경쟁에 진입했다는 게 정 학회장의 주장이다. 

 

정 교수는 “현대차가 갖고 있던 전기차 플랫폼 우위가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베이징모터쇼 현장 분위기도 과거와 달랐다. 소형차는 사실상 사라졌고 대형 SUV·프리미엄 중심 전시가 압도적이었다. 차량 가격은 1억원을 넘어섰고, AI 디스플레이·스마트 섀시·차량용 AI 에이전트 같은 고급 기능이 핵심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진단했다.

 

중국 전기차 산업이 더 이상 ‘저가 시장’이 아니라 프리미엄 시장까지 잠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 “브랜드만 남고 부품은 중국산 될 수도”

 

행사장에는 한국 자동차 부품 생태계 붕괴 가능성도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정 교수는 현대차의 중국 전략형 전기차에 중국산 부품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제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중국 부품을 써서 가격 경쟁력을 맞추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국 부품업체 관계자와의 대화도 소개했는데 “처음엔 중국 판매용 벤츠에 기술을 넣고, 다음엔 글로벌 차량으로 확대하고, 경쟁사가 사라지면 그때서야 가격을 올린다.”

 

세미나장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LCD 산업에서 벌어졌던 일이 자동차 부품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실제 업계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보조금을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잠식한 뒤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구조가 자동차 산업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 “한국은 생산 지원이 사실상 없다”


▲[그래픽=메가경제]

 

이날 또 다른 자동차 산업의 핵심 정책은 ‘국내 생산 촉진 세제’였다.

 

김성준 골든오크 세무법인 회계사는 전기차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생산세액공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제조업은 생산능력은 늘고 있는데 가동률은 떨어지고 있다”며 “투자 지원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 국내 생산을 유인할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유럽의 역내 생산 우대 정책, 일본의 전략산업 생산세제 등을 언급하며 “세계 주요국은 이미 자국 생산 유도 경쟁에 들어갔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반도체·배터리는 대규모 세액공제를 받지만, 자동차 산업은 국가 핵심 산업임에도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김 회계사는 국내 생산 촉진 세제가 단순 완성차 지원이 아니라 부품 생태계 유지와 고용 방어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차가 해외 생산을 늘리면 부품사도 함께 해외로 이동한다”며 “완성차 생산 기반 유지가 결국 국내 부품 생태계를 지키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 “지금은 산업정책 다시 짜야 할 시점”

 

세미나 전체를 관통한 공통 키워드는 ‘정부 주도 산업 전략’이었다.

 

발표자들은 테슬라 성장 과정에도 미국 정부 지원이 있었고, 중국 역시 국가 차원의 투자와 규제 완화를 통해 전기차 생태계를 키웠다고 입을 모았다. 

 

정 교수는 “지금 세계 산업은 정부 주도 성장 체제로 가고 있다”며 “한국도 훨씬 더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 말미에는 “브랜드만 남고 실제 기술과 부품은 모두 중국산이 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세미나 현장 공기는 단순한 학술 논의를 넘어, 자동차 산업 패권 전쟁에서 한국이 밀릴 수 있다는 집단적 위기 의식을 감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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