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 보장, 안정적 고수익 제공 금융상품 없어
[메가경제=송현섭 기자] 홍콩증시 폭락으로 인해 발생한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투자손실 문제가 금융권 '뜨거운 감자'로 자리잡고 있다.
투자원금의 50%를 넘는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해당 상품을 판매하도록 허용한 금융당국의 책임을 거론하며 감사원에 기관 감사를 청구한 상태다. 더불어 감사원 청사 앞에서 진을 치고 금융당국을 규탄하는 투자자들의 시위도 연일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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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열린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금융당국은 이 문제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올해 중점 과제로 H-지수 ELS 배상을 추진하고 있다. 관건은 글로벌 파생금융상품 투자손실을 과연 누가 어디까지 배상해야 하는 것이냐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부터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의 주요 판매사 12곳에 대한 현장점검을 진행 중이다. 일단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과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키움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7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미 금융당국은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사에 대해 불완전 판매 사례 등을 거론하며 투자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압박하고 있다. 심지어 판매사들이 투자손실 부분을 선제 배상할 경우 최대 수조원에 이를 수 있는 과징금을 깎아주는 등 선처할 계획이라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앞서 DLS·DLF 사태 당시를 생각해보면 금융사들이 투자손실 피해를 일정 부분 배상하는 자율적인 화해 형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이 같은 전례가 남았기에 금융당국도 금융사의 투자손실 배상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부 불완전 판매 사례를 제외하면 이번 ELS 사태의 근본적 책임은 홍콩증시 전망을 낙관하고 위험한 글롭벌 파생금융상품 투자를 스스로 결정한 투자자의 몫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의 말을 전하자면 “ELS 투자를 할 정도라면 평범한 일반인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선량한 피해자라며 배상을 요구하는 이들은 ELS 투자손실은 온전히 상품을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에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자신의 경제적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건전한 시민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어쨌든 해당 상품 판매사들이 선제적 배상에 나서더라도 역시 복잡한 법적 문제를 촉발할 수 있다. 법적 근거 없는 파생상품 투자손실 배상은 현행법상 업무상 배임에 해당하고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금융사 경영진의 자의적 결정이라면 자칫 매서운 역풍도 몰고 올 수 있다.
투자손실에 대한 금융사의 책임을 십분 고려하더라도 투자의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따른 것인 만큼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것이다. 금융투자상품 투자로 인한 손실을 모두 판매사에서 배상해야 한다면 기존 자본시장 매커니즘은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시장에서는 무엇보다 ‘High Risk High Return’이 기본원칙이다. 원금을 모두 날려버릴 수 있을 높은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투자를 결정하면서 최소한 원금까지는 보상해줘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
금융당국의 고위 인사도 지적하듯 원금을 보장해주고 안정적인 고수익을 제공하는 파생금융상품은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매년 5%씩 지속적인 수익을 받는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법적 근거 없는 투자손실 배상을 요구하는 투자자들과 판매사들의 배상만 압박하며 천문학적 과징금을 들먹이는 금융당국의 행태도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투자계약은 당사자 사이의 사안인데 불법이 아닌 이상 금융당국 등 제3자의 개입이 꼭 필요한가.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투자 결정 역시 원금손실의 위험을 무릅쓰고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 자신의 책임과 판단을 전제로 한다. 자유롭게 계약하고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몰고 가려는 것은 시장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그런 위험한 파생금융상품 투자를 통해 큰 수익을 냈을 때 투자자는 자신의 판단력을 자랑하며 원금을 까먹는 투자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개념 자체를 외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별 투자계약으로 발생한 문제를 집합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금융당국이 투자자들의 떼쓰기에 떠밀려 이들 대신 개입해 금융사들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기에 앞서 자본시장 질서는 무엇인지 왜 지켜야 하는지 잘 따져봐야 할 것이다. 개별 계약에 따라 자율적 화해로 해결할 사안이지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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